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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내려오신 날이고, 이를 기뻐하는 날입니다. 참으로 감격스럽고 기쁜 날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몸으로 오셨다는 이 사실이 그 자체로 얼마나 많은 질문과 설명, 그리고 이해가 필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신이 인간이 되는 것이 논리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왜 예수님은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셔야만 했는가? 인간을 구원하는 방법은 그것 밖에는 없으셨을까? 그리고 그 예수는 어른으로 오시지 않고, 왜 아기로 오셔야만 했는가? 이 외에도 수많은 질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문의 후반부(50-55절)는 서로 다른 두 개의 큰 메시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기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공의를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사랑도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심판이 없는 용서는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해 인간은 심판 받을 존재가 되었고, 그 심판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의 앞에 자신의 죄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십자가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인간을 향한 진노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아는 것을 불가능합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함께 드러내 줍니다. 먼저 51-53절은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어떻게 당신의 공의를 드러내시는지 보여줍니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51-53절). 본문은 모두 과거형(현재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마리아의 고백이며 확신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역사를 이렇게 움직이셨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하실 것에 대한 마리아의 확신이 담겨진 선포입니다.

이 말씀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힘을 주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그렇게 일하셨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일하실 것을 확신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운행자이심을 확신했습니다. 아무리 큰 고난과 아픔, 박해와 순교의 제물이 될 상황에서도 그들은 항상 하나님의 주권을 바라보았고 확신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총과 칼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 싸우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역사 속에서 많은 박해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두려워했던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손에 총과 칼이 들려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권세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의 권세는 앗수르와 바벨론, 페르시아와 헬라, 그리고 로마로 이어졌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힘과 권세를 가지고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권세가 악할수록 더 악한 방법으로 망했습니다. 더 강할수록 그들의 권세는 더 단명했습니다. 그들의 종말은 언제나 비참했고, 그들의 이름은 악명 높거나 세상에서 잊혀져 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역사 한 가운데서 당신의 사람을 통해 당신의 역사를 준비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긍휼을 통한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의 긍휼, 하나님의 자비,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께서 역사를 움직이시는 방법이었습니다.

본문에 50절과 54절, 55절은 하나님의 긍휼에 대해 말씀합니다. 놀랍게도 이 긍휼에 대한 말씀은 가운데 있는 세상의 권세를 내리치신다는 51-53절의 말씀을 앞 뒤에서 감싸고 있습니다. 세상의 권세가 커보이고 강력해 보이지만, 역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 안에서 조종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대상 중에 한 사람으로 아브라함을 언급합니다. 그는 아주 독특한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그는 75세에 새로운 인생을 출발한 사람입니다. 남들은 인생을 정리할 시점에서 그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75세에 아들에 대한 약속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아들을 얻기까지 두 번의 큰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한 번은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려다가 실패하고, 또 한 번은 이스마엘을 낳았으나 이로 인하여 가정에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나이 100세에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유명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권력을 구하지 않았고, 세상의 힘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에게 318명의 군사가 있었지만, 그러나 그는 그 군사로 세상을 호령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만약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의 길을 원했다면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가나안으로 오지 않고, 오히려 그의 고향, 갈대아 우르 지역에 있었을 것입니다.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의 문명지역에 머물면서 그는 세상의 영광과 힘을 꿈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길을 가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가나안이라는 외진 곳으로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로할 수밖에 없도록 하셨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새롭게 믿음의 사람으로 맞으셨다. 완전히 역사의 반대방향으로 간 것이다.

세상의 권력자들은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지만, 아브라함은 지금까지도 믿음의 조상으로 그의 삶의 자취를 좇아가려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는 확실히 믿음의 모델이었습니다. 그가 믿음의 모델이었다는 것은 그와 같이 살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불완전한 한 인간에 불과했지만, 그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사건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바로 그 역사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구원의 길, 내가 곧 길, 진리, 생명이신 오직 한 길이셨다.


마리아는 지금 그것을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도 선명하게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확실히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마리아가 살고 있는 당시 유대 땅, 팔레스틴도 역시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고, 권력을 탐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탐욕이 들끊던 곳이었지만, 마라아는 여전히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지금 자신의 인생에서 그렇게 역사하시는 주님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권력자를 통해 일하시지 않고 자기처럼 비천한 여인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을 구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물질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가 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50절에서 마리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의 긍휼하심을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그를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에 이르렀습니다. 오늘은 아기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성탄을 축하하는 성탄축하주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린 아이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기로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을 의존해야 했습니다. 누구의 돌봄이 없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아기 예수를 돌보고 지켜줄 수 있는 힘있는 군사를 보내주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아기 예수의 탄생에 맞춰 헤롯 왕에 의해 베들레헴에 기거하는 두 살 이하의 모든 아이들을 죽는 참극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예수께서 가는 곳마다 위험과 위기가 다가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통해 지극히 연약한 인간을 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지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호위군사가 되어 주셨고,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그를 인도하셨습니다.


마리아는 그런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했습니다. 마리아에게는 남 모르는 기쁨과 남이 이해할 수 없는 감사가 그의 삶을 지배했습니다. 어떤 삶의 위기와 위험도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지켜주셨습니다. 아주 위대한 삶이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삶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만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온전히 참여하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의 삶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우리를 몰아가시기도 합니다. 그것은 위기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그런 은혜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도록 이끄십니다. 그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세상은 힘으로 정복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정복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긍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긍휼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75세에 부름을 받고 100세에 아들을 낳은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긍휼이 있었습니다. 조카 롯이 더 좋은 땅을 얻고자 했을 때 아브라함은 긍휼로 그를 대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긍휼로 인해 공급하시는 것으로 살았습니다. 그것이 그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했습니다.

성탄의 계절에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묵상하면서 지극히 연약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당신의 긍휼로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경륜을 알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회복하시는 은혜를 맞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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