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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생명과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고 생명을 얻으며 그분의 영광에 참여합니다. 세상의 명예와 권력과 부를 잡는 것보다 더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흔히 예수를 믿으면 세상의 성공과 부, 건강이 온다고 주장하는 설교가 요즘 유행하지만, 그것은 생명과 영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생명과 영광이 물질과 건강과 성공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물질과 건강과 성공이 복음 자체는 아닙니다.

예수를 믿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적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건강도 잃고, 부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하나님의 생명과 영광이 있음을 우리는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아주 안타깝고 불행한 것은 세상의 부와 성공, 건강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과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더 좋은 것을 얻은 자는 덜 좋은 것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하니님께서 주시는 생명과 영광을 얻은 자는 더 좋은 것을 얻은 자들이기 때문에 덜 좋은 것으로 인해 마음이 상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도가 누리는 생명과 영광이 어떻게 우리에게 오는지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19절에서는 “그들이 믿지 아니함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결국 믿음의 문제입니다. 본문은 믿음에 대해서, 그리고 서로 믿음을 격려할 것에 대해 말씀합니다.


믿음 위에 세워지는 지식

7-8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너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히브리서 기자는 시편 95편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고대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해서 광야를 지나올 때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거역하고 시험하던 일을 언급합니다. 그래서 당신들은 너희 조상들처럼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즉 마음을 닫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계속해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테스트했습니다.

한 번도 처음부터 온전히 순종하여 믿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자기들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판단했고, 재단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하나님을 시험하여 증험하였고 사십년 동안 하나님의 행사를 (시험하여) 보았습니다.’(9절). 하나님을 알기 위해 테스트한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했습니다(10절).

이 말씀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들은 항상 그들 스스로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이 진짜 신인가? 하나님이 진짜 전능하신 분인가를 테스티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항상 미혹되어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정말 신인지 직접 확인해 보고 믿으려고 했는데, 실패했다는 뜻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아는 것이 먼저입니까? 믿는 것이 먼저입니까? 알아야 믿는 것입니까? 아니면 믿어야 하는 것입니까? 어거스틴이나 안셀무스 같은 사람들은 “나는 알기 위해 믿는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은 알려면 먼저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뢰가 선행되지 않으면 더 이상 하나님을 알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터툴리안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나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불합리해 보이는 것을 믿음으로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오해가 생깁니다. 이것은 성경의 역설을 말하는 것이고, 믿음의 신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믿음과 지식, 이 둘 중 어느 것을 더 근본적인 기초에 놓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주에 가보지 않았지만 우주가 어떻다는 것을 우주에 갔다 온 사람들의 말을 통해 압니다. 우리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압니다. 어떻게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까요? 비행기를 타고 한국과 미국을 수십번 날아다녔어도 우리가 지구가 둥글다고 가르쳐 준 교육이 없었다면 우리의 경험만으로는 알기 어렵습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먼저 들어서 아는 것이지, 조사하고 확인해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들어서 안다는 것은 앞서 연구한 학자들의 말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즉 신뢰와 믿음 위에 지식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지식은 믿음에 기초합니다. 만약 믿지 못하면 아무리 새로운 사실을 경험해도 그것은 지식이 될 수 없습니다. 믿어야 지식도 가능한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새로운 지식은 우리에게 온전한 지식이 되기 어렵습니다.

사무엘이 어렸을 때 성전에서 자랐습니다. 어느 날 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불렀습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지만 사무엘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인줄 모르고 엘리 제사장을 찾아갔습니다. 그가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3장 7절에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사무엘은 그 때까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이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 것인줄 알고 대답할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네 번째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실 때 사무엘은 비로서 하나님께 대답했습니다. 그 음성이 하나님의 소리인줄 믿은 것입니다. 그가 발견한 것이 아니라, 엘리 제사장의 가르침을 통해 받아들인 것입니다. 믿은 것이지요.

과학자들은 끊임없는 가설을 설정해 놓고 우주를 연구하고, 또 탐사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엄밀하게 말하면 어떤 가설을 믿는다는 전제로 실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믿음은 매우 중요합니다. 지식보다 믿음이 먼저입니다.


문제는 신앙의 영역입니다. 자연과학에서도 이렇게 믿음과 신뢰가 기초가 되어 지식을 세워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신앙의 영역에서는 끝까지 내가 알아야 믿겠다고 고집합니다. 본문의 말씀대로 마음을 완고하게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믿을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믿게 됩니다. 내가 보았기 때문에, 내가 알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려운 일을 당했습니다. 너무 낙심해 있습니다. 이 어려움을 빠져나갈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절망스런 마음으로 슬픔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니님을 믿는다면 상황이 변화되기 전이라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상황이 바뀌고 난 후에 기뻐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상황이 나아졌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은 상황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고,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상황이 호전되기 훨씬 전부터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삶의 위기와 불안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상황에 구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상황이 변화되기 전부터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서 기뻐하고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일이 해결될 조짐이 눈에 보이기 훨씬 전보다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전히 내 삶에 먹구름이 덮쳐도 그것과 상관없이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경험이나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사는 것입니다. 삶의 전제가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진짜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것은 이미 우리 인생의 엄청난 변화를 전제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믿음의 삶을 출발하는 것을 거듭난다고 표현합니다. 전혀 다른 삶의 원리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과 신뢰의 원리입니다. 세상이 믿음에 기초한 지식을 발전시켜 가듯이 우리의 삶도 그런 믿음 위에 하나님을 알아감으로 사는 것입니다. 즉 다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전혀 다른 인생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차원에서의 삶의 시작입니다.
이런 삶을 누리고 있습니까?



믿음은 격려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과 불신앙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불신앙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이것은 신앙인에게는 참으로 불리하고 어려운 환경입니다. 그래서 12절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우리는 자주 넘어지고, 때로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런 악한 세상에 내버려 두시는 이유는 이곳이 우리의 믿음이 발휘될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파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13절).”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은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오늘’은 여전히 고난의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날을 의미합니다. 여전히 우리에게 방황과 혼돈을 경험합니다. 삶의 어려움과 장애물로 인해 슬퍼하고 낙심해 하는 날들입니다. 그래서 절망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날들입니다.

바로 그런 날에 매일 피차 권면하라고 말씀합니다. 매일 권면하는 것입니다. 지체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매 어려움이 일어날 때마다 지체하지 말고, 기다리지 말고, 얼마나 잘 견디나 지켜보지 말고 그 즉시 서로를 권면하라고 말씀합니다. 교회가 바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에서 다시 이렇게 권면합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할 때의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많건 적건, 우리가 예수를 믿는 자들이라고 하면 동일하게 처음 예수를 믿을 때 잘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런 하나님을 향한 신뢰, 믿음의 진수를 느꼈습니다. 우리가 잘 모를 뿐입니다. 의식하지 못할 뿐이고, 잘 기억하지 못할 뿐입니다. 하지만 처음 주님을 만날 때 우리에게는 믿음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성경은 더 많이 알아가는 것 같은데, 그리고 교회 생활에 더 익숙해져 가는 것 같은데, 사실 믿음의 본질적인 신뢰에 대해서는 더 혼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뭔가 좀 더 알아가기 시작하니까 내가 뭔가 분별을 해야 할 것 같고, 내가 지식으로 좀 더 하나님을 알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이 아니라 지식으로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종교적 형식은 남아 있지만, 진짜 믿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시작할 때 가졌던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그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교회는 그런 그런 믿음을 격려하는 곳입니다. 이 세상은 신앙과 불신앙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본래 불신앙의 세계에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불신세계의 영향을 받고 살아갑니다. 이런 영향은 우리가 마땅히 누릴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빼앗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적으로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 격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필연적으로 모든 위험과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 믿음으로 승리하시고, 우리교회도 그렇게 서로를 격려하며 세워가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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