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샬롯츠빌한인교회

주일설교

조회 수 6358 추천 수 20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으로 산 사람들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믿음으로 승리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연약한 사람들이었지만, 믿음으로 의를 행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었고, 전쟁에서 승리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심한 고문을 받고, 조롱과 채찍질을 견뎠으며,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을 받았지만, 세상은 그들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은 그들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드려다 보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믿음의 세계는 우리를 늘 놀라게 합니다. 믿음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안에 엄청난 역동성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바로에게 맞섰고, 목숨을 걸고 죽음의 바다 홍해를 건넜으며, 그들은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면서 무려 120년 동안 방주를 짓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들 중에는 예배를 드리다고 형(가인)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 때마다 놀라운 방법으로 구원의 역사를 맛보았습니다. 애굽의 모든 장자의 죽음을 보았고, 바로가 항복을 했으며,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를 바라보라

히브리서 12장은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한 것에 이어서 히브리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산 사람들입니다. 본문 2절에서 예수를 바라보라는 말을 다른 성경에서는 우리의 눈을 그분께 고정시키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의 눈을 그분으로부터 떨어지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세파가 있어도 우리의 눈을 항상 그분에게 고정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합니까?

1. 죄를 벗어버리라.

본문은 두 가지로 말씀합니다. 그 첫 번째는 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가장 먼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을 때 가장 먼저 경험하는 것은 죄의 회개입니다.

1절입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죄에 대해 아주 실제적인 면에서 말씀하십니다. 마치 운동 선수가 운동을 하기 위해 부담스러운 옷을 벗어버리고 간편한 옷을 입듯이 성도들은 무거운 죄의 옷을 벗어버리리고 말씀합니다.

죄는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행동을 부자연스럽게 하며 순발력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죄는 우리로 하여금 빨리, 자유롭게, 힘입게 달려갈 수 없게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막아 버리고, 사랑해야 할 때 사랑할 수 있는 힘을 막아버리고, 용서해야 할 때 용서할 힘을 빼앗아갑니다. 죄는 생명을 잃게 합니다(약1:15). 죄는 우리를 실패하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오늘날 사람들이 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모든 불행이 바로 인간의 죄로 인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범죄 사건은 이를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인간의 불행은 죄로 인해 시작되었고, 또한 죄로 인해 계속 되고 있습니다.

이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인간의 불행은 계속 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영광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그 영광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게 하셨고, 그 영광을 회복하고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죄로 인해 애통해 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 않습니다. 죄에 무관심하고, 무지합니다. 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죄를 외면합니다. 죄는 현대인에게 불편한 진실입니다.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지 못하고, 죄를 피하고 부인하고 부정하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죄는 우리의 삶을 구속합니다. 죄는 우리에게 무거운 짐과 같으며 얽매이게 하고 열심히 달려갈 수 없게 하는 거추장스러운 것입니다. 죄는 우리의 삶을 옭아맵니다. 죄는 우리의 삶을 구속하고 고통스럽게 합니다. 죄는 우리를 불행하게 하고, 분별력을 잃게 하며, 내적, 영적 힘을 제거합니다. 그래서 본문은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고 말씀합니다.

이 죄를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죄가 그렇게 무시해서 무시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죄를 그런 식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죄가 더 이상 우리에게 영향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죄를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을수록 죄는 우리 안에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을 갈아 먹어 버립니다. 우리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하며 우리가 왜 이런 어려움을 겪는지 모르는 사이에 죄는 우리의 골수를(뼈속까지) 병들게 합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후에 회개하며 고백하는 시를 보십시오. 그가 얼마나 자신의 죄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지 모릅니다.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51:9-12).  

또한 시편 32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시32:5-6).

다윗은 죄를 범했을 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죄로 인해 기쁨도 잃어버렸고, 삶의 의욕과 자원하는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죄는 우리의 마음과 중심을 변질시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바르게 살려고 해도 죄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는 한 우리는 온전한 삶, 온전한 방향을 향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판단과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명 바르게 판단하고 내 인생을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잘못된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이 자기 죄를 고백한 후에 하는 고백을 보십시오. 시32편 5-7절을 보면, 그는 죄를 자복하고 자기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자기 죄를 용서하셨을뿐만 아니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죄의 고백을 통해 담대함을 얻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해지는 것입니다. 죄의 눌림에서 자유를 얻기 위하고 죄를 지은 후에 고통스런 회개를 통해 하나님 앞에 다시 서는 다윗의 모습을 실로 위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윗의 지혜, 능력, 탁월함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다윗은 선천적 탁월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도 인정하지 않았고, 형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삶을 살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 정직했습니다. 죄의 문제에 대해 정직했습니다. 자신을 합리화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해서 보려고 했습니다.


죄는 우리를 세상의 다른 것들에 의해 얽매이게 합니다. 세상에서 능력도 많고, 탁월하기도 하고, 재능도 많고, 비전도 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인생이 나락으로 빠져버립니다.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전혀 엉뚱한 것이 그들의 길을 막아버립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일들이 진로를 막습니다. 대부분 죄의 문제가 그를 잡습니다.

죄를 인정하지 않고 숨기면 더 어려움을 겪습니다. 왜냐하면 나도 모르는 죄가 나의 인생을 막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내가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소홀히 여긴다. 누구도 말할 수 없는, 어쩌면 숨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어쩌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졌던 것들,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볼 때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던 문제들, 그런 문제들이 내 안에 있는 것을 보면서, 나에게도 그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덮어 놓았던 일들이 나의 진로와 장래의 길을 막아 버린다. 왜냐하면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늘 깨어서 자기 죄를 고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죄에 대한 민감성을 가져야 합니다. 다윗만큼 민감해져야 합니다.



2. 기쁨을 기대하라.

2절을 보십시오.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참으시고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셨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하실 수 있으셨던 것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기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 의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십자가를 지게 한 장본인들은 바로 히브리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십자가와 그들의 거역함을 묵묵히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인내는 장래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기쁨 때문에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 기쁨은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고, 사역을 완수하심에 대한 기쁨이며 현재의 고난에 대한 상급으로 주시는 기쁨입니다. 장래에 대한 기대는 오늘의 고난과 어려움을 이기게 합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실 것을 믿는 사람은 낮아짐에 대해 결코 주눅들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게 했습니다. 부끄러움은 우리를 한없이 움추리게 하고, 약하게 하며, 삶의 의욕과 동기부여, 목적의식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이런 부끄러움, 고통은 인간을 완전히 내려앉게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것들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바라보는 것, 즉 ‘그 앞에 있는 기쁨’, 그리고 ‘인간을 구원하심에 대한 강렬한 목적’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러한 소망이 필요합니다. 이런 확신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고난을 받지만, 오늘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부끄러움을 받지만, 반드시 기쁨으로 회복시키실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기쁨, 그 믿음으로 오늘을 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다고 하셨는데, 사실 그 기쁨은 꼭 장래에 가서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린아이가 생일이 되었습니다. 아빠가 밖에서 좋은 선물을 사 오실 것이라고 약속을 하시고 가셨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아직 그 선물을 받지 않았지만, 하루 종일 그 선물을 생각하면서 기뻐할 것입니다. 그것은 선물을 받았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물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물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기뻐하는 것은 그 선물을 받았을 때의 기쁨보다 결코 적지 않습니다.

이런 기대로 하루를 살아가는 어린아이와 부모가 없어서 생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쓸쓸하고 슬퍼하는 아이와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비록 십자가를 지는 상황에서도 이런 기쁨을 기대하고, 그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았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기쁨을 기대하게 되면 우리의 삶에 닥쳐오는 모든 시련과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나쁜 것, 부정적인 것을 묵상합니다. 때로는 기도하면서도 나쁜 것을 묵상하고, 없는 것까지 만들어서 상상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서로 피차 상처를 주고 받습니다. 우리는 주로 상처 받는 것만 생각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상처 받은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삶에게 다시 상처를 주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몸에 난 상처, 가시를 보지 못할뿐입니다.

상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기쁨을 기대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참으신 것은 그분이 상처를 받지 않으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상처를 받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앞에 있는 기쁨을 기대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여러 종류의 상처가 있습니다. 남편에게 받은 상처가 있고, 아내에게 받은 상처가 있습니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도 있고, 자식에세 받은 상처도 있습니다. 때로는 교회에서 받은 상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장 좋은 것, 더 기쁜 것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편 혹은 아내에게 상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행복한 가정을 꿈꿀 수 있고 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는 부부, 더 이상 기쁠 수 없는 가정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에게 상처를 받고, 자녀가 부모의 뜻대로 따라주지 못해서 그 자녀를 향해 최고의 것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어려워도, 교회에서 상처를 혹 받는다고 하더라도 가장 건강한 교회, 가장 행복한 교회를 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의 십자가를 보면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또한 자앨의 소망을 기대해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아빠를 기다리듯이 우리가 그렇게 주님을 기대하고 기다릴 때 우리는 세상의 고난을 이기고 승리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다 보면 우리를 낙심하게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관계의 문제 때문에 낙심하고, 삶의 목적을 잃어버릴 때 절망합니다. 이유 없이 당하는 어려움이 얼마나 많은가요? 예수님께서 바로 그런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이유 없이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그런 고통을 받을 때 우리는 낙심합니다 .

오늘 우리들도 때때로 자존심을 구기고 부끄러움을 당할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때로는 남모르는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때로는 자녀로 인해 겪는 아픔을 감당해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인간의 기본적인 자존감조차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을 맞기도 합니다. 그럴 때조차 주님께서는 낙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바로 그 앞에 있는 기쁨을 바라보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이 그냥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믿음도 있어야 하고, 훈련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안에 있을 때 반드시 그런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이기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누가 짓밟고 눌러도 전혀 요동하지 않습니다. 부끄럽지 않습니다. 주눅들지 않습니다. 고난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강해지고 더 영광스럽고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갑니다. 믿음의 선조들처럼 죄를 벗어버리고, 기쁨을 기대하며 살아서 주님께서 주시는 참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일자 설교 제목 성경
249 영문 밖의 길 (히13:7-16) 2011. 8. 7 주일예배
248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히13:1-6) 2011. 7. 31 주일예배
247 십자가의 능력(갈2:20) 2011. 7. 24 주일예배 (권오국 목사 설교)
246 흔들리지 않는 나라 (히12:18-29) 2011. 7. 17 주일예배
245 모든 사람과 화평하라 (히12:14-17) 2011. 7. 10 주일예배
244 징계-사랑의 증거 (히12:4-13) 2011. 7. 3 주일예배
» 예수를 바라보자 (히12:1-3) 2011. 6. 26 주일예배
242 믿음의 용사들 (히11:32-40) 2011. 6. 19 주일예배
241 주님의 말씀을 믿을 때 (히11:30-31) 2011. 6. 12 주일예배
240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11:23-29) 2011. 6. 5 주일예배
239 삶을 부요하게 하는 믿음 (히11:17-22) 2011. 5. 29 주일예배
238 순례자의 길 (히11:13-16) 2011. 5. 22 주일예배
237 믿음의 길 (히11:8-12) 2011. 5. 15 주일예배
236 네 부모를 공경하라 (엡6:1-4) 2011. 5. 8 어버이주일예배
235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 (막10:13-16) 2011. 5. 1 어린이주일예배
234 부활 신앙의 회복 (요한복음 21:1-14) 2011. 4. 24 부활주일예배
233 성도는 믿음으로 삽니다 (히11:1-3) 2011. 4. 3 주일예배
232 위기 속에서 주시는 약속 (히10:32-39) 2011. 3. 27 주일예배
231 식어진 믿음을 회복하라 (히10:26-31) 2011. 3. 20 주일예배
230 왜 세상에 재난이 닥치는가? (히10:19-25) 2011. 3. 13 주일예배
Board Pagination Prev 1 ...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 41 Next
/ 41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