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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눈을 통해 어떠한 사물이나 대상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분명히 동일한 사물이나 동일한 대상을 바라본다 하더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그 대상은 확연히 다르게 비춰지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에 작은 핸드백이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아마도 저를 비롯한 많은 남자들의 눈에 그것은 단순한 가방의 한 종류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자들의 눈에 비치는 그 가방은 남자들이 보는 그것과는 너무나 다르게 해석된다고 합니다. 예를 들자면, 이 가방을 보면서 이것이 명품인지 아닌지, 한정판인지 아닌지, 어느 라인의 제품인지, 그리고 그 가방과 어울리는 자신의 옷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심지어 요즘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가방을 자신의 인격과 신분을 나타내는 분신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이렇게 작은 가방 하나를 보면서도 그것을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생각과 해석, 그리고 여러 가지의 느낌을 서로 다르게 갖게 된다는 말입니다.

저는 여행을 좋아해서 비교적 많은 교회나 수도원들을 방문해 보았습니다. 어느 교회나 수도원이든 방문할 때마다, 제가 마음을 가다듬고 찾아보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입니다. 설령 다른 모양의 십자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십자가'라는 단어가 표현해주듯, 그 모양은 거의 대동소이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똑같은 십자가를 보게 될 때에도, 그 십자가를 보면서 느끼게 되는 내용은 항상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어떠한 때에는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고난당하시는 예수님을 생각납니다. 때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두 팔을 벌려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모습이 보여집니다. 또 때로는 십자가를 바라봐도 아무 생각이 안드는 때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같은 것을 본다 하더라도, 사실은 같은 것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즉,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관심에 따라, 각자가 지니고 있는 가치관에 따라, 또한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에 따라, 그 내용은 전적으로 다르게 보여진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영어 단어 중에 "Sight"와 "Insight"라는 단어의 의미를 아실 것입니다. sight - 눈에 보이는 광경. insight - 통찰, 식견을 뜻합니다. 우리말 사전에서는 "통찰: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봄, 식견: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유학을 오게 된 목적도 바로 'insight' 즉, 통찰을 얻기 위한 것이고, 식견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저의 소망은 목회자로서, 말씀을 맡은 자로서 이 성경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다시금 말씀하려고 하는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을 올바로 깨닫고 그 말씀을 분명하게, 구체적으로 이 세상 속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정확한 통찰을 얻어내는 것!" 그것은 비단 목사인 저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분의 가르침과 말씀을 따르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의당, 적어도 예수께서 선포하신 말씀의 의미를, 그리고 그분이 왜, 무엇을 위해 이 땅에 오셨는지, 우리에게 오셨는지를 바로 알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분은 한 가지의 분명한 주제를 가지고 행동하셨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연약한 자들, 소외된 자들과 함께 계실 때에도, 가난한 자를 배불리 먹이실 때에도, 병든 자를 고치실 때에도, 그리고 말씀으로 무리들을 가르치실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단 한가지의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라는 주제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처음으로 하신 말씀은 마태복음 4장 17절을 보면,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느니라"였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공생애를 마치시며 하늘에 다시 올라가시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도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고 사도행전 1장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무엇 때문에 이 땅에 오셨는지 짐작이 되십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대해 말씀하려 오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란 어쩌면 상당히 추상적이고 비현세적인 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느껴집니다. 어쩌면 저 멀리, 우리가 죽은 후에나 가게 되는 곳으로 생각될지 모릅니다. 그런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적어도 예수님께는 당신이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당신의 눈에 비쳐지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특별히 천국비유장이라고 불리는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 가라지 비유, 겨자씨 비유, 누룩 비유,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 진주 비유, 그물 비유' 이렇게 7가지의 비유를 들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무리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물론 이 비유의 가르침을 예수님께서는 당시 갈릴리 지방의 촌부들의 일상적인 삶의 환경에 빗대어, 그 말씀을 듣는 무리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천국을 설명하셨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비유의 말씀들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예수님의 눈에는, 그분이 보시기에는, 논과 밭에서 씨를 뿌리는 농부를 볼 때에도, 곡식 가운데 자라고 있는 가라지를 볼 때에도, 작디작은 겨자씨를 볼 때에도, 빵과 술에 퍼져가는 누룩을 볼 때에도, 감추어졌다가 발견된 귀한 보화와 진주를 볼 때에도, 바닷가를 지나시다 그물을 깁고 있는 어부들을 볼 때에도 그분의 눈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그려졌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평범한 것들, 작은 것들을 통해서도 너무나 멀리 있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속에서 실제적으로 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인지를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모습을 바라보고 살고 있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이 그 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말씀은 "믿음으로" 세상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진리는 아니지만, 간혹 타종교로부터 귀중한 가르침을 얻기도 합니다. 한국 불교계에 큰 어른으로 인정받는 성철 스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참고로 이분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93년도에 이분이 열반하시는 날, 시골 산 속까지 그분의 장례에 참석한 사람이 하루에만 50만명이 넘었을 정도로 한국 불교계의 존경받는 큰 어른이었습니다. 성철 스님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2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10년간 '장좌불와'를 하셨다는 것 때문이고(장좌불와? 누워서 자지 않고, 등을 땅에 대지 않고 사는 것), 또 다른 한 가지는 그분이 남긴 책의 제목이자 유명한 어록 때문입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여러분은 이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스님께서 남기신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이렇게 저렇게 각기 해석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은 성철 스님 자신의 말이 아니고, 고려 말기 백운화상이라는 스님께서 참선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전했던 가르침을 인용한 것입니다.

백운화상이 제자들에게 묻기를,

노승이 삼십년 전 참선하지 아니할 때는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보았다.

나중에 선지식을 친견하고 깨우침에 이르러서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것으로 보았다.

지금 편안한 휴식처를 얻고 나니, 산은 다만 산으로 보이고 물은 다만 물로 보이더라.

그대들이여! 이 세 가지 견해가 같은 것이냐, 다른 것이냐?



참 어려운 말이지요? 이러한 설법을 듣느니 차라리 '교회 다니기를 잘했다' 싶으시지요? 쉽게 무슨 말인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어는 산 속에 있는 절의 주지 스님이 삼십년 동안 절간에서 산과 물을 봐왔는데, 그냥 산과 물, 단순히 아름답고 좋은 자연으로만 보였습니다. 그런데, 부처의 자비가 삼라만상에 흘러넘친다는 간단한 진리가 자신에게 깨달음으로 다가온 순간, 그동안 별다른 감흥 없이 보였던 산에서 부처의 자비가 보여지고, 늘 으레 보아왔던 물 속에서도 부처의 자비가 보여졌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바라보던 산은 산이 아니었고, 물도 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의 산과 물은 단순한 산과 물이 아닌, 부처의 자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의 자비가 그득히 담긴 산과 물에서 떠나기 싫어 그곳에 빠져있는데, 어느 순간 자신이 몸담고 있는 모든 삼라만상의 세계가 부처의 자비와 진배없다는 깨달음을 누리며, 단지 자신이 진리를 깨달았던 산과 물 뿐만이 아니라, 모든 세상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30년간 머물렀던 그 절간에도 부처의 자비가 흐르고 있음을 느끼게 되고, 그곳에서 산과 물을 바라보며 부처의 진리가 세상 모든 곳에 흐른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니라"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도 어록을 하나 만들어 볼까요? 교회는 교회요, 가정은 가정이라. 학교는 학교요, 직장은 직장이라. 성철 스님의 가르침과 깨달음은 사실 성경에서 증거하는 진리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있는 모든 곳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신학 용어 중에 최근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라틴어 표현이 있습니다. "유비쿼터스 데오스"! 이 말의 뜻은 "편만하시는 하나님"을 뜻합니다. 비단, 이런 표현들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삶의 경험, 신앙의 경험을 통해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동행하시는 분임을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제가 질문을 드립니다. 여러분은 정말 그렇게 믿으십니까? 정말로 그것을 경험하십니까?




창세기 33장 10절을 보면 형을 속이고 달아났던 야곱이 다시금 형 에서를 만나 형님과 화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많은 구절 가운데 재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 말은 실상, 큰 잘못을 저지르고 도망갔던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들지 모르는 형 에서를 향한 야곱의 아부성 발언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러한 야곱의 말은 우리에게 사실로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뜻하는 히브리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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