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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어떤 주제들은 처음부터 마음의 부담을 느끼게 합니다. 그중 하나는 ‘인내’라는 주제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잘 참고 견디는 성품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나쁘거나 바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예수 믿는 것을 조금 어둡게 보이게 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기쁘고 밝고 즐거워야 하는데, 왠지 심각함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내에 대해 아주 많이 강조합니다. 본문 7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갈라디이서 5장에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하나로 ‘오래 참음’에 대해 말씀합니다.

어느 사람은 ‘인내’를 ‘고난에 쉽게 압도되지 않는 기질’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런 인내는 현대인들에게 그리 인기 있는 성품은 아닙니다. 현대인들은 삶 속에서 굳이 참고 인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참는 것을 미덕으로 보았지만, 현대인들은 그냥 느낀대로 반응하고 사는 것을 더 낫게 여깁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인내하지 못하고, 쉽게 자기 목숨을 포기하거나 ‘묻지마 살인’ 혹은 ‘방화’같은 범죄에 노출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문제는 인내라는 말의 정의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내를 ‘고난에 쉽게 압도되지 않는 기질’이라고 할 때 이러한 정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것은 없지만, 성경이 말씀하는 인내는 단지 그런 기질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내를 항상 ‘소망’과 연결시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을 소망을 이루는줄 앎이로다”(롬5:3-4).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6:12). 이 말씀들은 오래 참는 것이 장래의 약속을 소망하며 살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즉 소망이 인내하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본문은 무슨 소망을 말씀할까요? 7-8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여기에 ‘길이 참으라’는 말씀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그리고 길이 참아야 할 이유로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란다고(소망한다고) 말씀합니다. 즉 성도의 인내는 그냥 막무가내로 고난을 버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도의 인내는 귀한 열매를 바라며 갖는 성품이며 삶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성도의 인내를 7절에서는 농부의 비유로 아주 잘 설명합니다.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팔레스틴 지역에는 가을에 이른 비가 내리고 봄에 늦은 비가 내리는데, 이 두 번의 비는 농사에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도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나라는 5-6월(모내기)과 8월 중에 많은 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추수를 끝내면 이 곡식을 사들입니다. 이 때 농부들은 곡식을 팔아 모처럼 목돈을 만져봅니다. 이것이 농부의 기쁨이고 소망입니다.

농부는 이 때의 기쁨을 기대하면서 많은 어려움과 힘든 일을 견디고 인내합니다. 그들의 인내는 그냥 참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힘든 일을 할 때조차도 소망을 가집니다. 그들은 어려운 일을 할 때조차도 즐거운 장래의 일에 대해 기대하면서 기뻐합니다. 성경은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참된 인내의 실체입니다. 즉 소망을 위한 인내입니다.

농부는 가을의 추수 때가 올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주께서 강림하신다고 본문에서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이 약속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언제가 오실 주님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고난을 이기고 인내하며 약속을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가 누리는 소망입니다. 그냥 인내하는 것은 어둡습니다. 그러나 소망을 가진 인내는 밝고 기쁘고 감사합니다. 이런 인내는 어렵지 않습니다. 성도는 이런 인내의 삶을 기꺼이 감당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9절입니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이 말씀은 앞의 7-8절의 말씀과 문맥상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입니다. 야고보서는 왜 소망을 위해 인내하라는 말씀을 하시고는 본절에서 원망하지 말 것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할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까? 심판을 말씀하는 것은 추수 때가 한편으로는 수확과 결실의 계절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농부가 열심히 일하지 않았을 때, 그래서 풍성한 추수의 결실을 얻지 못했을 경우는 심판과 고통의 계절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추수 때는 두 가지 양면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왜 ‘서로 원망하지 말라’고 말씀했을까요? 사람들은 예수를 믿고 난 후에도 원망하고 불평하는 일을 아주 사소한 일로 여기곤 합니다. 원망과 불평이 다른 사람과 자신에게 그리 심각한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야고보서 3장에서는 혀를 지극히 작은 지체이지만, 우리의 온 몸을 더럽히고 불사르기도 한다고 말씀합니다. 즉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도, 우리의 입술로 범하는 원망과 불평이 그 모든 은혜와 복을 없애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9절)

우리는 우리의 말 한 마디가 우리의 삶을 황폐하게 할 수 있다는 이 말씀을 깊이 새기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원망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의 여건과 상황에 대해 기쁨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에 대한 원망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작품으로 만들고 계신데, 중간에 자꾸 우리가 불평하고 원망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없습니다.

둘째 우리는 우리의 가까운 사람에 대해 원망합니다. 배우자일수도 있고, 자녀나 부모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불평은 우리의 삶을 역시 황폐하게 합니다. 셋째 우리는 교회와 교회의 지도자를 원망합니다. 목사를 원망하기도 하고, 장로나 구역장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이런 원망과 불평은 원망의 대상인 목사나 장로, 혹은 구역장을 힘들게 하지 않습니다. 이런 원망은 원망하는 그들 자신을 유익하게 하지 못합니다. 황폐하게 합니다.

모든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원망하는 본인의 인생을 망가지게 합니다. 본문은 그런 이유로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성도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자신에 대해 감사하고, 배우자에 대해 감사하고, 교회와 교회의 지도자들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원망은 모든 것을 무너뜨릴 뿐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우리 모두 깊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함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 입술의 불평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회개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을 원망과 불평으로부터 감사와 찬양으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참된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자신과 이웃, 그리고 교회에 대한 불평과 원망을 그치고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하실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가득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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