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샬롯츠빌한인교회

주일설교

조회 수 2547 추천 수 22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오늘은 버지니아 대학이 졸업식을 하는 날입니다. 우리교회 성도들 중에도 졸업하는 이들이 많이 있어서, 오늘은 졸업의 의미를 성경적으로 함께 생각해 보며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졸업은 하나의 ‘매듭’과 같습니다. 매듭은 끝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을 끝내고 새로운 과정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서 매듭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매듭은 아주 영광스러운 것일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큰 긴장과 불안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제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밀레도라는 도시에서 에베소의 장로들을 불러 놓고 마지막 권면을 하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세 번에 걸쳐 전도여행을 했는데, 때마다 아주 어려운 고비를 이겨가며 전도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인데, 이제 다시 돌아올 기회가 없을 것을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고별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설교는 그의 선교 사역 중에서 아주 큰 하나의 매듭을 짓는 순간입니다. 그런 점에서 바울의 졸업식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런 순간을 어떻게 느끼고 고백하는지를 보면서 우리의 매듭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 바울의 송별(졸업)식은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전에 에베소에서 복음을 3년 간 전한 후 유럽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갈 때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서 고별 설교를 하는데, 이것은 그의 송별식과 같은 의미를 같습니다. 그런데 그의 송별식은 결코 화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에베소에서 능력 있는 선교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 치유를 받고, 마술사들이 회심하여 예수를 믿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마술하는 책을 전부 불살라 태웠는데, 그 책들을 돈으로 환산하며 은 오만이나 된다고 성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의 사역은 매우 역동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에베소에서 여전히 우상을 섬기던 사람들은 바울의 선교와 이로 인해 확장되어 가는 에베소 교회로 인해 불편을 느끼게 되었고, 결국 큰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바울 일행을 에베소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과정은 바울로 하여금 에베소 교회 성도들과 제대로 송별도 못하고 도망가듯이 다른 곳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에베소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빌립보에서도, 그리고 데살로니가에서도 그랬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는 그곳에 있는 유대인들이 경박한 사람들(조직 폭력배)을 동원해서 소동을 일으킴으로 바울은 한 밤중에 도망치듯이 빠져나와야만 했었습니다.

이처럼 바울의 사역은 늘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한 번도 제대로 사역의 열매를 맞보며 즐거운 마음으로 여유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나중에 자신의 육체의 가시를 위해 세 번 기도하였으나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를 듣지 않으시고, 오히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후12:7) 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의 약한 점, 그리고 바울이 가는 곳마다 어렵고 힘들었던 사역의 과정들은 오히려 바울의 사역을 더욱 힘있게 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대개 순간적인 화려함에 매혹됩니다. 그래서 연애인들이 레드카펫을 밟으며 사진 세례를 받는 짧은 순간을 동경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그런 짧은 화려함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삶에서 그런 순간들을 모두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그런 누림의 부족함이 바울을 더욱 바울의 삶이 되게 했음을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들도 졸업식이나 혹은 우리 인생에서 갖게 되는 매듭들이 그렇게 화려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한 번쯤은 멋지게 뽐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우리들에게 눈 앞에 어려움을 주시곤 합니다. 삶의 휴식보다는 늘 긴장함으로 기도하게 하십니다. 화려함보다는 훈련과 연단의 과정을 허락하십니다. 만약 현재의 삶에서 화려함을 간절히 원하지만 그런 화려함보다는 오히려 인내와 훈련이 필요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오히려 감사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도이며,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의 인생은 더욱 견고해지며 탄탄해집니다.


2. 성령에 이끌리는 삶

바울의 삶은 이렇게 어느 정도의 긴장과 고난이 계속되었습니다. 22-23절을 보면,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는데, 예루살렘에는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고 말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즉 그는 고난의 상황을 향해 기꺼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의 삶을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뭔가 만족스럽지 않은 삶을 앞에 놓고 있지만,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그곳을 향해 담대함과 사모함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는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령께서 몰아가시는대로 순종하여 갈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삶의 자리로 갈 때 성령께서 이끄시는대로 가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내 생각이 아니고 성령께서 이끄시는대로 가는 것은 쉽거나 간단하지 않습니다. 린치버그에 있는 리버티 신학교를 다닐 때, 저를 포함해서 함께 공부하던 목사님들이 두 종류의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부류는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가려는 분들과 또 한 부류는 미국에 남아 있으려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대부분 한국으로 가려고 하는 분들은 미국에 남아 있게 되고, 미국에 남아 있으려는 분들은 한국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그런 부류 중에 속해 있었습니다만,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이 다르게 가면 사는 것이 참 불행합니다. 그것이 목회라 하더라도 기쁘거나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하고 기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비록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있었지만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가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필연적으로 한령의 뜻을 좇아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뜻을 성령의 뜻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부득불 더 많이, 더 깊이 기도해야 하고,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에 더 민감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진정한 만족과 기쁨의 길입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3. 생명보다 귀한 가치를 좇아야 합니다.

2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지금 자신의 생명조차 내려놓을 수 있는 가치를 좇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을 좇아간다’는 말은 이해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을 위해 살아갑니다. 공부를 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도 자신이 행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남을 돕고 선한 일을 하는 것도 궁극적으로 살펴보면 자신의 기쁨과 만족을 위한 것이기가 참으로 쉽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조차도 결국은 자신을 위한 것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바울의 이 고백은 매우 충겨적인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일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을 위해 살아가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이렇게 살아감으로 우리가 평범한 상태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런 삶을 살았던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참으로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니 보통 이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갈릴리의 촌부들이었고, 무식한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한계를 뛰어넘는,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가치를 좇아가게 하심으로 가능해진 것입니다. 에스더(“죽으면 죽으리라.”)나 바울(“나는 날마다 죽노라”)와 같은 사람들도 같은 고백을 가지고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질문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너는 이 샬롯츠빌한인교회의 담임목사로서, 너의 사역, 너의 사명을 너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사역하느냐?” 저는 솔직히 하나님께서 열심히 사역하느냐고 질문하신다면 부족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열심히 한다고 답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너의 사명을 너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느냐고 질문한다면 쉽게 ‘예’이라고 대답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열심히 사역하는 것과 생명보다 그것을 더 귀하게 여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아주 열심히 사역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같은 교회의 어려움을 당한 다른 성도들을 섬길 때 그것이 아무리 작은 섬김이라도 우리는 어떤 반응을 기대하곤 합니다. 큰 대가를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내가 섬긴 것에 대한 피드백을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작은 피드백에 보람을 느낍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그런 반응이 아니라, 바로 섬김 자체에 기쁨을 느끼며 감사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결론

졸업을 하는 성도들, 그리고 인생의 매듭을 지으며 살아가는 성도님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에 화려함에 너무 마음을 쏟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인생의 화려함은 그것이 인생의 진짜인 것처럼 매우 자주 우리를 속이곤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이끌려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앞에 비록 불투명한 미래가 있어도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 행복합니다. 그래야 고민하지 않고 기꺼이 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인생의 열매나 결과보다 더 중요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내가 원하는 길이 다르면 우리는 계속해서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생명보다 더 귀한 가치를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결국 자신의 생명, 즉 자신을 위한 노력일 때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을 좇아갈 때만이 진정한 능력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큰 기대를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그 놀라운 꿈을 성취하는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일자 설교 제목 성경
289 성자 예수님의 사역: 구속(엡1:7-12) 2012. 7. 29 주일예배
288 교회의 정체성(엡1:1-2) 2012. 7. 8 주일예배
287 에베소 교회(엡1:1-2) 2012. 7. 1 주일예배
286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 (엡1:1-2) 2012. 6. 24 주일예배
285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약5:13-20) 2012. 6. 17 주일예배
284 믿음의 기도(약5:13-20) 2012. 6. 10 주일예배
283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하라(약5:7-12) 2012. 6. 3 주일예배
» 생명보다 귀한 것 (행20:17-27) 2012. 5. 20 주일예배
281 약속 있는 첫 계명(출20;12, 엡6:1-3) 2012. 5. 13 어비이주일
280 몸의 부활 (고전15:35-58) 2012. 4. 29 주일예배
279 부활의 삶(고전 15:20-34) 2012. 4. 22 주일예배
278 부활의 증거 (고전15:1-11) 2012. 4. 8 주일예배
277 성찬의 목적 (고전11:23-26) 2012. 4. 1 주일예배
276 하나님이 부요케 하시는 인생 (약5:1-6) 2012. 3. 25 주일예배
275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약4:13-17) 2012. 3. 18 주일예배
274 하나님의 부요함을 누리라 (약4:1-12) 2012. 3. 11 주일예배
273 말의 힘, 언어의 축복 (약3:1-12) 2012. 2. 26 주일예배
272 믿음의 역동성(약2:14-26) 2012. 2. 12 주일예배
271 자신을 속이지 말라 (약1:19-27) 2012. 1. 29 주일예배
270 유혹에서 승리하는 길(약1:13-18) 2012. 1. 22 주일예배
Board Pagination Prev 1 ...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41 Next
/ 41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