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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의미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신 후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40일 후에 승천하셨고, 그로부터 약 10일 후 제자들이 한 곳에 모였을 때 그들은 강력한 성령의 강림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이 역사를 그들을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성령강림이라는 큰 세 과정을 통해 변화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제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성경 안에서 제자들이 경험한 부활은 그들로 하여금 어떤 큰 일을 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 앞에서 당황해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반응은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어부 출신의 제자들은 다시 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이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본문이지만, 부활의 사건 앞에서 당황하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랐던 제자들의 마음을 생각할 때 이해할 수 있는 면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은 그들로 하여금 어떤 판단을 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떤 면에서 영적 공황 상태에 직면하게 되었고, 영적 공황 상태는 그들의 마음을 완전히 열어놓게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100% 들을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고기를 잡다가 예수님으로부터 새로운 사역을 위해 다시 부름 받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치라.” 이것이 베드로에게 주신 주님의 명령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바울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두 가지 질문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주여 누구십니까?”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두 번째 질문은 역시 영적 공황 상태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에게 ‘이방인의 사도’가 될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부활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부활 사건 자체로 제자들은 어떤 능력을 받거나 전도자가 된 것은 아니지만, 부활을 통해 그들은 마음을 열고 비로서 주님의 명령을 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부활의 역사성

그로부터 약 25년 정도 후에 고린도교회는 많은 성장을 했지만, 문제 또한 많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부활의 문제였습니다. 활이 없다’(12절)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딤후2:18)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부활의 역사성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는 가끔 이런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 자체가 더 중요한가? 아니면 부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가?’

이런 질문은 이미 다른 문제를 배태하고 있습니다. 즉 이미 오래 교회를 다니면서 믿는다고 하는 교회의 지도자들 중에 부활을 믿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질문들입니다. 부활의 역사성과 부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균형을 요구합니다. 어느 한쪽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다른 한쪽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이런 교회적 상황을 전제로 주시는 말씀입니다.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여기서 ‘알게 한다’는 말은 ‘기억나게 한다’ 혹은 ‘일깨워 준다’는 뜻입니다. 이미 전한 복음, 즉 부활의 복음을 다시 생각나게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에 대한 말씀을 전체적으로 다시 정리하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본문(1-11절)은 부활의 역사성에 대해 말씀하고, 12-18절은 ‘만약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도 불가능하고, 기독교 자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음에 대해’ 그만큼 부활은 교회가 놓여 있는 분명한 기초임을 말씀합니다. 19절부터 34절까지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마지막으로 35절 이하는 우리의 부활은 단순한 영적(혹은 상징적) 부활이 아니라, 육적인 부활을 포함한다는 점을 말씀합니다.


부활의 근거

본문은 부활의 근거로서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부활의 첫 번째 근거는 성경적 근거입니다.

3-4절입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이 본문에는 구약성경을 의미하는 ‘성경대로’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구약 성경에 이미 예언된대로 성취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구약에서 300회 이상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예언하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 오래 전부터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성경의 예언(증거)이 중요합니까? 이것은 부활신앙이 어떻게 가능한 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하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인격의 신실하심을 믿을 때 부활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은 다른 질문과 비교함으로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어머니가 친 어머니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믿기 때문에 아는 것입니까? 아니면 알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까? 당연히 믿기 때문에 아는 것입니다. 아는 것 이전에 먼저 믿는 단계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다음에 나오는 목적자들의 증거보다 먼저 성경의 증거를 제시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준비하심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증거를 찾기 전에 우리는 먼저 그 부활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을 성경 안에서 만나야 합니다. 그럴 때 성경 안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그분의 행하시는 일을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이미 오래 전부터 계획해 놓으시고, 선지자들을 통해 이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확실한 부활의 증거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의 인생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의 역사를 맛볼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총체적으로 준비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의 길을 준비하신 주님의 은혜를 누리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두 번째 근거는 목격자들의 증거입니다.

이것은 부활의 객관적 증거입니다. 5-8절 말씀입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여기에 목격자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정도의 수가 예수의 부활을 보았다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바울이 이러한 목격자들을 언급할 때는 구약적인 배경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본래 구약 시대에는 재판을 할 때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동일한 증거를 제시할 때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여서 판결하도록 했습니다. 한 사람이 보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증거 채택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 면에서 바울이 제시하는 증인 채택은 어머어마한 숫자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일하게 예수님의 부활을 볼 수는 없었다는 것이 성경의 주장입니다.

역사는 예수님의 출생을 중심으로 BC와 AD로 나눕니다. 주전과 주후로 나눕니다. 즉 주님 오시기 전과 오신 후로 나누는 것입니다. 물론 그거야 서구적 세계관에서 이루어진 일이고, 지금 서구 문화가 세계를 한동안 지배한 결과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증거란 본래 내가 본 것이 아닙니다. 증인을 채택할 때는 당사자가 아닌 다른 증인의 진술을 들음으로써, 그것의 객관성,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증인, 서구문화가 만들어 놓은 역사의 구분 방법 등은 우리에게도 실효성 있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확실한 증거를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느냐고 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지도 않고 안 믿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믿음의 삶을 유지하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이 부활주일 아침 우리에게도 부활의 확실한 확증과 확신을 가지고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부활의 세 번째 근거는 바울의 개인적인 증거입니다.

이것은 부활의 주관적 증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관적이라는 말은 보는 이마다 틀릴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의 내면적인, 자신의 삶의 변화를 통한 증거라는 뜻에서 주관적 증거라는 말입니다. 9-10절 말씀입니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헤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적적인 방법으로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은 아주 급진적인,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는 완전한 삶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는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한 사람에게 이토록 획기적인, 근본적인 변화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 그의 삶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또 어떻게 변화된 삶의 방향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일생을 살아갈 수 있었겠습니까?

물론 세상에는 이런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이 바울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꼭 믿는 사람만 이런 변화를 경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외적으로 볼 때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의 삶에서 뭔가 다른 변화에서 발견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발견할 수 없는 놀라운 생명력 있는 변화가 일어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 삶을 온전히 주님을 위해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드려진 삶 속에서 한없는 만족과 기쁨을 누렸습니다. 이 기쁨과 만족은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할 때 느끼는 자기 만족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는 그런 자기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만족이 아니라는 것입ˆ•나. 이것은 아주 비성경적인 만족입니다.

바울이 누리는 만족과 기쁨은 자기를 부정하고, 주님을 높이고, 그분을 경배함으로 얻는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쁨이고, 만족입니다. 이런 만족을 그는 증거하면서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확실한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 앞에서 자신의 삶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그것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확신은 지극히 개인적인 확신이지만, 이것만큼 큰 영향력을 갖는 증거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 즉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이러한 확신을 보기 원합니다. 그 사람이 정말 자신이 믿는 바를 확신하고 그 확신에 기초해서 살아가는지를 알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그런 믿음을 가지고 그러한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나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나 동일하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만약 우리가 믿는다고 하는 모양을 가졌으나, 내면에서 실질적으로 부활의 확신이 없다면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우는 악을 범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부활은 우리의 마음을 열게 합니다. 부활의 확신은 말씀과 증인들과 우리 자신의 삶으로부터 나옵니다.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은, 마음을 열게 되고, 마음을 연 사람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의 체험을 통해 놀랍고 강력한 삶을 살아갔습니다. 오늘 우리교회도, 우리 개인도, 이 시대의 기독교도 그런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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