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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부한 자들을 향한 책망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야고보가 다시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19-20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성도님들께 하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질문은 ‘하나님께서는 부자들에 대해 부정적인가’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부자에 대해 기본적으로 부정적이지는 않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부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물질적인 부요함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사인으로 인식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이삭, 야곱, 요셉, 다윗, 솔로몬 등이 부자였습니다. 다니엘과 요셉은 남의 나라에서 총리가 되었고, 느헤미야도, 에스더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부요함을 누렸습니다. 심지어 야곱은 삼촌의 집에서 머슴처럼 살면서도 부유한 삶을 살았고, 이삭은 하나님의 은혜로 한 해 농사가 백배나 되는 수확을 거둬서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창26:15).


그러면 본문에는 왜 부자들에 대해 그렇게 가혹하게 말씀하는 것입니까? 그들의 재물을 썩었고, 옷은 좀먹었으며 금과 은은 녹이 슬었다고 말씀합니다. 녹이 슬지 않는 금속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을 일어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는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여기서 재물의 파괴성을 보여줍니다. 재물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인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매우 파괴적인 기질도 있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부자를 심판하시는 세 가지 이유를 말씀합니다.

첫째는, 부자들이 품꾼들에게 일한 삯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그들은 불의를 행했습니다. 그들은 가진 자로서 가난한 자에게 횡포를 일삼았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행위를 일삼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이 이런 행위를 일삼은 이유는 인간의 부요함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는 믿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언제나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면, 그는 애굽에 내려가서 애굽의 왕 바로에게 부인을 빼앗기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부족한 믿음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도 아브라함은 오히려 그의 삶이 더 부요해졌습니다.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바로로부터 받았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실수를 하고 어려운 일 가운데 빠질 때조차도 하나님을 의뢰했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니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부요케 하심을 누렸습니다.

다윗도 그런 점에서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딱 한 번 다윗이 하나님을 향한 이런 믿음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여유로울 때쯤 되었을 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사건이었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의 작은 목동에 불과한 한 어린아이였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밧세바를 범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니남의 공급하심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나단 선지자를 통해 하니님께서 다윗을 책망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사울 왕의 손에서 구원하였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었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었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삼하12:7-9)

다윗이 왜 남의 것을 빼앗았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부요케 하시는 분이심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왜 부정직하게 삽니까? 부자들이 왜 많은 불의에 미혹됩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모든 부요함의 원천이심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종교적 행위는 반복하지만, 진정한 믿음은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을 때, 그들의 종교적 행위는 단순한 위로와 마음의 안위를 구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고, 결국 삶의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삶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진짜 믿음이 필요합니다. 실제적인 믿음이 필요하고, 그 믿음에는 우리의 삶을 풍요하게 하심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본문에서 부자들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부자들이 육신의 즐거움만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5절입니다.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그들은 육신의 즐거움을 추구했습니다. 사치하고 방종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부요하신 분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기쁨을 주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시면서, 무한히 기뻐하신 분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고는 마치 부모가 자녀를 보면서 기뻐하시는 것처럼 기뻐하십니다. 스바냐 3장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이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맛보면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또한 이렇게 말씀합니다.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진정한 기쁨을 얻게 되면 세상의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게 됩니다. 믿음으로부터 얻는 기쁨을 얻게 되면 세상의 루이빙통 백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자기 삶에 만족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은혜를 누려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가 성도님들의 삶을 충만하게 다스리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부자들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부자들이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기 때문입니다. 6절입니다.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왜 부자들이 의인들을 정죄하고 죽였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불의함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알키비아데스(Alcibiades)라는 소크리테스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위대한 재능 때문에 때로는 방탕하고 무호했으며 퇴폐적인 삶을 살았었습니다. 그리고 가끔 소크라테스를 만나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크라테스여 나는 당신을 싫어하오. 왜냐하면 당신을 만날 때마다 내가 어떠한 사람인가를 당신이 일깨워주기 때문이오.” 그는 소크라테스를 만날 때마다 자신의 불의가 들어나는 수치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가 친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만날 때마다 불편하고 싫어하게 된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부자들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들도 의인을 보면 싫어하게 되고, 그래서 정죄하게 된 것입니다. 부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믿고 알 필요가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드러내시며 정결케 하심을 알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종교적 예배 행위 안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진정한 고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결핍은 그들의 삶을 더 큰 불의로 빠지게 했고, 악한 삶에서 돌이킬 수 없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이 없을 때, 아니 믿음이 온전하지 않을 때 그것을 우리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가져오는지를 알게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삶도 불가능해집니다. 믿음이 없으면 행함이 없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행함을 강조한다기보다는 진정한 믿음을 갖도록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진정한 믿음,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부요케 하시며, 믿음 안에서 즐거움을 누린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의롭다 하심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List of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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