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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야고보서는 흔히 행함을 강조하는 말씀이라고 하지만, 뒤집으면 믿음을 강조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야고보서는 진짜 믿음이 무엇이냐를 질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야고보서는 이에 대해 행함이 있는 믿음이 진짜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삶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적용되어야 그 믿음이 진짜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은 또 다른 면에서 믿음에 대해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그냥 믿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참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믿음을 매우 경직된 삶의 양식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간주하곤 합니다. 그런 선입견이 있기 때문에 말씀을 볼 때 말씀을 잘못 해석하고나, 말씀이 주는 놀라운 은혜의 충격을 받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그런 말씀들 중에 하나입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의외의 말씀, 의외의 시각을 갖게 합니다.


1. 인간의 헛된 계획

본문 13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이 말씀은 ‘들으라’로 시작해서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로 끝납니다. 이 말씀은 일단 이 첫 구절만 봐도 무엇인가 책망의 의도를 가진 말씀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잘 보면, 이 말씀은 지극히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어떤 사람이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그 일을 시작할 구체적인 날짜와 도시를 정했습니다. 구체적인 목표 - 이익을 남기리라 –도 정했습니다. 아주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삶의 모델입니다. 누구나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무엇인가 하려고 하면서 아무런 계획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는 무책임한 사람입니다. 세상을 산다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아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성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즉 계획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획조차 하지 않고 사업을 시작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오늘 이 사람을 책망합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2. 안개 같은 인생

1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고 없어지는 안개니라.” 성경은 우리가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또 우리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 인간이 세우는 계획의 헛점이 있습니다.

2001년 12월 28일 토요일이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섬기던 교회를 바로 다음날 사임하고,         2002년 1월 9일에 미국에 오려고 준비하던 때였습니다. 당시 섬기던 교회는 새벽기도회를 부목사들이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담당했습니다. 제 순서가 바로 그 주간이었습니다. 마지막 주간이었기 때문에 다른 목사님께 부탁할 수도 있었고, 또 대신 맡아주겠다고 하는 목사님도 있었지만, 끝까지 제가 할 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새벽기도회를 토요일까지 마쳤습니다. 토요일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피곤한 몸에 잠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잠이 들었는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 때 전화소리가 울렸고, 받고 보니 큰 형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제 어머님이 밤새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도 놀랐습니다. 연세가 많긴 하셨지만, 그렇게 돌아가실만큼 쇠약하진 않으셨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틀 전 저녁에 어머님이 전화를 하셨는데, 새벽기도와 출국준비 등 여러 가지 일로 분주하게 보내던 때라 길게 통화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은 생각이 났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머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좋아하셔서 한 번 전화를 하시면 보통 30분씩 통화하셨었는데, 그날 따라 빨리 끊은 생각이 났습니다. 만약 저의 어머님이 그렇게 돌아가실 것을 알았더라면 저는 그렇게 빨리 전화를 끊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화를 더 성의있게 받았을 것이고, 어쩌면 그렇게 바쁜 주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밤 늦게라도 찾아가서 뵈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문제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저의 어머님의 전화를 성의 없게 받은 것은 제가 내일 일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내일 일을 모른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내일 일을 모르면서 내일에 대한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면 내일을 위한 계획을 세우지 말아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이 내일을 위한 계획을 세우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가 우리의 인생에 대해 아주 치명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두 단계로 계획하고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보통 two step으로 계획합니다.

즉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젊을 때 이런 계획을 세웁니다. ‘내가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나중에 행복하게 살아야지’라고 계획을 세웁니다. 여기에 우리 인생이 두 단계로 준비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는 인생의 행복이라는 것이 고려되지 않습니다. 인생의 행복은 이 다음에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행복이라는 것은 잠시 내려놓고 유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땅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 13절을 다시 보십시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여기도 보면, 이 사람은 이렇게 인생을 계획합니다. 우선 장사를 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익을 남길 것을 계획합니다. 그리고는 아마도 부요함을 얻어서 인생의 행복을 꿈꾸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두 단계에서 한 단계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돈을 벌어서 아내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돈을 버는 것과 아내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같은 일이라면, 그래서 동시에 그 일이 행해질 수 있다면 그것은 옳은 일입니다(한단계). 그러나 만약 돈을 한참 벌고 난 후에 어느 정도 돈을 모은 후에 아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두 단계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왜 우리의 인생이 두 단계에 의해서 살아가면 안 되고, 한 단계에 의해서 살아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내일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이 안개와 같기 때문입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두 단계를 거쳐서 살아갈만큼 여유롭지 않습니다.


3. 주의 뜻이면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인생을 한 단계로 살 수 있겠습니까? 1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한 단계로 살기 위해서는 주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이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라고 말씀합니다. 삶의 기준이 주님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뭔가 조금 부족해도 그 자체로 즐겁고 기쁘게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비록 고난이 와도 그 안에서 우리는 즐겁고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지금 현재 믿음 안에서 즐기고 누리는 마음이 없다면 내일도 결코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립보서 3장 1절입니다.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사도 바울은 지금 이 편지를 감옥 안에서 쓰고 있습니다. 그는 감옥 안에 있었지만,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안에서의 삶을 충분히 누렸고, 기뻐했습니다.

더욱이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힘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힘써 전하게 되어서 자신의 감옥생활이 더 유익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런 말씀들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린 기쁨의 비결들입니다. 우리가 보통 알지 못하는 삶의 비결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살 때 그의 삶은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지지 않고, 하나로 통합되어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항상 충만한 기쁨을 누렸고, 또 언제든지 주의 나라로 갈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믿음 안에서 발견하고 살아가야 할 놀라운 신앙의 비밀입니다.


4.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라

16절을 보십시오.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여기서 말하는 ‘허탄한 자랑’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 자랑입니다. 왜 자기를 자랑합니까? 인생의 첫 번째 스텝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수고하는 것은 가족을 행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내가 수고함으로 가족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그것처럼 좋은 것은 없습니다. 내 배우자, 내 자녀가 기뻐하는 것은 곧 나의 기쁨이며 즐거움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내가 열심히 땀 흘려 일을 하는데도 내 가족들에게 기쁨이 없고, 만족이 없으며, 우리는 자연히 원망하고 불평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정당성을 주장하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가족들을 위해 살았는데, 가장의 수고를 몰라주는 것에 대해 원망하게 됩니다.

이 때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자기 자랑입니다. 이 때 가장은 자신의 수고를 주장하고 자랑하게 됩니다. 자랑은 인정받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자기 자랑은 결핍의 증거입니다. 남이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인정을 받으려는 시도입니다.
그냥 삶이 만족스러운 사람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교만은 심각한 내적 불안과 자격지심의 표시입니다. 자녀를 자랑하고, 자신의 부를 자랑하고, 학력을 자랑하는 것은 아직도 여전히 그런 것들로부터 만족을 누리지 못한다는 단적인 증거입니다. 자신의 지식과 신분과 학력과 부를 자랑하는 것은 아직도 여전히 그런 일들로부터 만족함을 얻지 못해서 결국 그렇게 자랑함으로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16절에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그렇습니다. 이것은 허탄한 자랑이고, 악한 것입니다. 소용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 얼마나 악한 것입니까? 그러면 우리 인생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사야 43장 21절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고린도전서 6장 19-20벌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진정한 의미에서 행복도 아니고, 인생의 즐거움도 아니고, 인생의 성공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의 영광 안에 거할 때 우리는 그 분의 영광 안에서 모든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과 감사와 능력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주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주셨습니다. 그래고 그 풍성한 삶을 누리라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팔복을 보십시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우리는 이런 말씀들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신기한 말씀입니까? 어떻게 가난한 자가 복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까? 이런 말씀을 붙들고 깊이 고민하며 기도하고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묻는 것입니다. 주님, 정말입니까? 주님, 거짓말 아닙니까?


결론

마지막 구절(17절)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두 단계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세상의 것을 얻고 난 후에 그것을 가지고 행복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위해 살아갈 때 그분의 영광 안에서 우리는 무한한 자비와 은혜, 풍성함과 부요함을 누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놀랍고도 신비로운 은혜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생을 두 단계로 살아가면, 즉 먼저 세상의 것을 구하려고 몸부림치고 애쓰게 되면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악한 것입니다. 그래서 17절은 본문의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알고 그분 안에서 누리는 참된 안식과 즐거움과 영광을 알고 믿고 고백하면서도 ‘만약 그대로 살지 않는다면,’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에서 만족을 구하지 않고 자꾸 세상적인 것을 구하면서 이렇게 하면 무엇인가 행복이 있을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산다면 그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몸부림친다고 우리에게 행복이 오고 만족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진정한 기쁨은 우리가 오직 그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때 얻어집니다. 우리의 창조주 되시며 구원자 되시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무한한 영광을 돌리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이 주시는 무한한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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