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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함이 없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로 인해 죽은 인간을 십자가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인간이 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우리를 위한 것임을 믿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은 후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자라가기 시작합니다. 사랑과 겸손, 기쁨과 감사의 열매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생기는 변화입니다.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은 우리 안에서 매우 역동적인 사건을 이루어 가게 되는데, 실제의 삶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이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역동성

본문은 믿음의 역동성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삶 속에서 그런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자기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유학을 보내 공부하게 하고, 자시의 뒤를 이어 목회의 길을 이어갈 꿈을 가지고 있었던 두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아들을 잃은 후, 그 아들을 죽인 청년을 자기 양자로 삼은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믿음의 역동성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사마리아 인의 모습 속에서 동일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 강도 만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사장이 보고 그냥 지나쳤고, 레위인이 지나가다가 역시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인이 그곳을 지나가다가 이 강도 만난 사람을 돌보아 주고, 그의 상처를 싸매어 주었습니다. 주막까지 데려가서, 그의 후속 치료까지 책임을 졌습니다. 그에게는 조금의 억지도 없었습니다. 그는 기꺼이 기쁨으로 감사히 그 일을 감당했습니다.

사마리아 인은 수 백년 동안 무시를 당해오며 살던 민족입니다. 그들은 자존감도 없었고, 늘 열등감으로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그런 에너지가 나올 수 있었을까요? 이것이 바로 믿음의 역동성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믿을 때 그 믿음 안에서 이루는 놀라운 능력이며 역사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런 믿음의 역동성이 있습니까? 나와 전혀 관계 없는 일에 이 사람처럼 다가가서 내 사랑과 열정, 시간과 마음을 쏟아줄 수 있는 힘이 있습니까? 무엇이 우리 자신을 움직이게 합니까? 사실 오늘 우리들은 이런 믿음의 역동성을 잃어버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나와서 그저 위로만을 받기 원합니다. 마음의 평안을 얻으면 그것을 된다고 생각합니다.

감성적인 믿음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이런 역동성을 잃어버리고 살아갈까요? 19절 말씀입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귀신들도 하나님을 알고 두려워했습니다. 감성적인 반응을 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 중에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감성적인 반응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음의 평안과 위로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감성적인 믿음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무런 능력을 갖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삼촌과 함께 가나안 땅에 왔습니다. 얼마 후 롯은 아브라함과 헤어져서 소돔과 고모라 성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 땅은 그 당시 에덴동산과 같고 애굽 땅처럼 기름진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롯은 그 타락한 도시에 머물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었고, 천사들의 말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도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믿기만 한 것입니다.

혹시 우리도 지금 그렇게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 중에 단지 예수 믿고 천국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롯을 보십시오. 그는 소돔 성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롯의 삶은 불행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긴 했지만,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음으로 불행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단지 믿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믿음에는 반드시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모델 – 아브라함과 라합

21절 이하에 보면 믿음의 모델 아브라함과 라합이 나옵니다.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그런데 그의 믿음이 완성된 것은 창세기 22장에서 이삭을 하나님께 받침으로 가능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9절 말씀대로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하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삭을 기꺼이 하나님께 받쳤습니다. 또한 라합은 여리고 성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나타나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정탐꾼으로 온 사자들을 숨겨주었습니다. 즉 라합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소문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믿는대로 행했습니다. 믿음은 그로 하여금 삶을, 역동적인 반응을 갖게 했습니다.

이런 믿음의 역동성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대로 행할 때 비로소 우리 안에는 진정한 능력과 주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지만, 우리의 삶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것은 너무도 억울한 일입니다. 신앙의 역동성은 그런 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역동성은 어떻게 성취되어야 얻을 수 있습니다. 몇 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첫째, 신앙의 역동성은 기도와 말씀에 힘쓸 때 얻게 됩니다. 왜 믿음의 역동성을 잃어버릴까요? 왜 우리의 믿음에 역동적인 역사, 행함이 따라오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마음이 둔감해졌기 때문입니다.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고집이 있고, 완악해진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믿음으로 인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역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주님 앞에 내어놓고 마음의 밭을 기경하며, 주님 앞에 설 때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신앙의 역동성은 순종할 때 얻게 됩니다. 말씀에의 순종이 필요합니다. 아들이 크면서 대화를 하다보면 때로는 아들이 저보다 더 성숙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도 아빠의 권위 때문에 반론을 제기하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아들은 마음 속으로 아빠의 생각이 옳지 않음을 알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저는 그냥 모르는 척하고 지나갑니다. 이 때 제가 기대하는 것은 제 아들이 꼭 자기 생각에 맞지 않더라도 따라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이처럼 하나님의 것이 다 이해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조차도 우리는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역동성을 갖게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처음부터 자기 아들을 죽인 청년을 사랑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먼저 단지 순종하려는 마음 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순종하려고 할 때 진짜 사랑할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런 순종이 신앙의 역동성을 가져 옵니다.

셋째, 신앙의 역동성은 사랑할 때 얻게 됩니다. 사랑 안에 모든 계명이 다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정직하게 그분의 사랑을 알면 사랑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3장 34-35절 말씀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드러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때 신앙의 역동성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누릴 믿음의 유익입니다.


결론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 새로운 일을 행하십니다. 그것은 우리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한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감성적인 믿음이 아니라, 역동적인 믿음입니다. 단지 마음의 위로를 위한 믿음이 아니라, 무엇인가 위대한 역사를 이루는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의 역사를 누리기 위해 우리는 말씀과 기도 생활에 전념해야 합니다.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이런 은혜가 성도님들께 가득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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