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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류의 시험

야고보서 1장은 시험에 대해 말씀합니다. 시험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시험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을 3절에서는 ‘믿음의 시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러한 시험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두 번째 시험은 사탄의 유혹입니다. 14절에서 사람들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된다”고 말씀하는데, 여기서 미혹된다는 말은 물고기가 미끼를 무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끼란 실물처럼 보이게 하여 고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가짜를 보여주면서 진짜처럼 속아서 마귀의 궤계에 넘어가게 하는 시험을 합니다.

하와는 뱀의 미혹을 받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보았을 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하와로 하여금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한 것입니다. 그것이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아니 하나님께서 진짜 좋은 것은 숨겨놓으셨는데, 마치 그것을 발견한 것처럼 느끼게 한 것입니다. 가치 판단의 기준을 잃어버렸습니다.

세 번째는, 자신의 시험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세상의 성공을 추구하면서도 그것이 다는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의 성공을 주실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성공보다 더 큰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성공과 하나님의 축복을 동일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세 가지 시험의 연속성

그런데 사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과 사탄이 주는 시험, 그리고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시험은 하나의 사건에서 연속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 예를 아브라함의 경우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그를 시험(훈련)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서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믿음의 길을 가도록 훈련받았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연단)입니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났을 때, 사탄이 아브라함과 사라를 미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는 약속은 꼭 사라를 통해 주시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고 미혹합니다.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지, 꼭 사라를 언급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사라의 권고를 받아 그의 여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이것은 미끼였습니다. 정말 똑같아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그렇게 성취되었구나 하고 감탄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사탄의 시험입니다.

그로부터 다시 14년이 지났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사라를 통해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입니다. 사라가 분노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피붙이 아들을 내쫓아야 한다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사라가 먼저 만든 것입니다. 사라가 먼저 제안해서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사라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합니다.

창세기 21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근심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스마엘을 내보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임져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질문은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그냥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듣고자 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부인 사라의 요청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실 사라의 요청은 인간적이지도 않고, 사랑도 없는 처사였습니다. 그래서 만약 아브라함이 끝까지 자기 생각을 고집했다면 그의 가정은 파탄이 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사라의 요구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들었습니다. 자기 생각의 정당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타당하다고 우기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사탄의 미혹에 의해 이스마엘을 낳았지만, 자신에게 속는, 즉 자신의 생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을 속이는 것

오늘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문제에 대해 나누고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 자신을 스스로 속게 합니까?

1. 만약 우리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속이지 않는 방법은 자기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21절 상반절에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자기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때 스스로 속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라마엘을 낳았았습니다. 이스마엘은 버릴 수도 없고, 거둘 수도 없는 존재였습니다. 버리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원리에 맞지 않습니다. 이스마엘을 거두는 것은 그가 불순종의 아들이기 때문에 옳지 않은 일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문제의 원인은 다분히 사라에게 있었습니다. 사라는 이 일을 만든 장본인이었고, 또 지금도 문제를 제공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응답을 통해 사라의 말에 동의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스스로 자신을 죄인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인됨의 고백이 막힌 담을 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스스로 속지 않을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2.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자신에게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21절 중반절에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무한한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믿고 감사하면 우리는 스스로 속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내보낼 수 있었던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그도 풍성하게 하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내일부터 특별새벽기도회를 합니다. 에베소서를 본문으로 보면서, “풍성한 교회, 풍성한 성도”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눕니다. 에베소서에 ‘풍성함’에 대한 말씀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은 감옥 안에서 기록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어떻게 감사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이런 고백이 없다면 우리는 자신에게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이 우리의 삶을 결코 그냥 내버리지 않고 더 풍성한 삶을 주신다는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3.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한 마음으로 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21절 하반절에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을 받으라”고 말씀했습니다. 온유함이란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과 ‘성내는 것’(19절)에 반대말입니다. 내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듣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를 잘 보십시오. 창세기 21장 10절에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고민했고, 기도했습니다. 12절에서 하나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근심하지 말고 사라의 말대로 하라’고 말씀합니다.

이럴 때 보통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 그것은 아닙니다. 사라는 자기가 그렇게 해 놓고 다시 자기가 내쫓으라고 합니다. 만약 그렇게 됨녀 사라의 행위가 정당화되기 때문에 그럴 수 없습니다.”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순종했습니다. 이것은 참 대단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지만, 또한 사라를 통해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에도 귀를 기울였습니다.

죄의 의미

죄는 “과녁을 빗나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항상 잘못된 방향이며, 항상 과녁을 빗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설득의 기술을 배우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설득할 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보다 설득 당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보여줍니다. 무엇에 설득되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예수를 믿을수록 더 고집스러워집니다. 스스로의 확신이 너무 강한 나머지 다른 사람의 말은 도무지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부인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부인의 말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년초마다 서리집사를 임명하면서 본인의 의사를 받기 위해 동의서를 받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사절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나름대로 들어보면 일리가 있습니다. 그럴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이렇게 사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아직 때가 안 됐다”고 말합니다. 자기가 자신을 판단합니다. 그렇다면 언제쯤 자신은 이제 때가 되었다고 답할 수 있겠습니까? 그 답은 자기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답입니까? 이것은 신앙적 모순입니다.

세례 문답을 할 때마다 꼭 이런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은 교회의 치리에 복종하고, 교회에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며, 교인으로서의 의무와 권리를 바르게 행사하기로 서약합니까?” 하나님께서 교회와 목사를 통해서 그리고 당회, 우리교회는 지금 당회를 대신하고 있는 운영위원회를 통해 질서있게 일하시는 것을 믿습니까 하는 질문입니다. 물론 목사도 부족하고, 당회원도 부족하고, 운영위원회 위원들도 부족합ㄴ디ㅏ. 그러나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내가 당신 말대로 하겠소.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당신 말대로 하라고 하시더구만.” 이것이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입니다.

결론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은 내가 기준이 되지 않고 하나님이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자신이 죄인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죄인은 과녁을 빗나간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잘 한다고 해도 우리의 계획은 항상 잘못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자신을 속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말대로 해도 이스마엘의 인생을 풍성하게 하셨습니다. 문제는 논리적인데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하시겠다고 하시는 약속에 근거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풍성하게 하신다는 약속을 믿지 못하면 우리는 결국 우리 자신의 생각을 의존하게 되고, 자신을 속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분께 설득 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듣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자신을 속이고 실패하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우리는 항상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겸손함으로 주님 앞에 엎드림으로, 그분께서 주시는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이것이 최고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길입니다. 이런 은혜가 성도님들께 함께 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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