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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는 시험을 당합니다. 어려움이 있고, 낙심할 때도 있고, 때로는 큰 절망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도대체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까?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시험을 주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시험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은 바로 우리를 온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 우리의 인격을 만지십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 우리의 왜곡된 성품과 관계를 바르게 세워가십니다. 우리를 성숙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2절을 보면, “너희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시험의 목적입니다. 우리를 사람답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험입니다. 이것을 3절에서는 믿음의 시련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시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야고보서 1장 앞 부분에서는 인간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 시험의 목적이라고 하셨는데, 13절에서는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상반된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앞의 시험과는 조금 다릅니다. 앞의 시험은 믿음의 시련인데 반해, 여기서의 시험은 유혹을 말합니다. 시험이라는 말은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앞의 시험은 믿음의 시련이라고 부연해서 설명하고 있고, 본문의 시험은 유혹이라고 설명합니다. 시련은 일반적으로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고, 유혹은 우리 안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입니다. 시련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고, 유혹은 사탄이 주는 것입니다. 시련은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하기 위한 것이고, 유혹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시련과 유혹에 대해 시험이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 둘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가나안 땅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도착하자마자 흉년이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흉년의 어려움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배우고 알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믿음의 시련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가나안의 흉년을 피해서 애굽으로 내려 갔습니다. 가나안의 흉년 중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애굽으로 내려가면 양식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곳에 가서 자기 부인을 빼앗기를 어려움을 겪습니다.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곳이기 때문에 어쨌든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이것이 유혹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광야에 도착해서 3일 동안 물 한 모금도 맛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물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겨우겨우 참고 오던 중이었는데, 물을 발견했습니다. 물을 마시려고 했는데, 그만 그 물이 쓴 물이었습니다. 마실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 백성들은 불평과 원망을 쏟아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유혹입니다. 그들은 원망하면 뭔가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세를 향해 삿대질을 하고, 큰 소리를 고함을 치면 일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아주 나쁜 것입니다. 이것은 불신앙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고함과 원망이 아니라, 조용히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며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신뢰함으로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심으로써 길을 열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의 유혹에 빠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유혹은 우리를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합니다. 유혹은 당장은 좋은 것 같아 보이지만, 결국 우리의 인생을 파멸로 이끌어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연단하셨으나, 그들은 그것을 유혹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누리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유혹에서 승리하는 길

본문은 우리가 유혹을 받을 때 승리하는 길을 세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1. 유혹을 받을 때 승리하는 첫 번째 길은 죄의 유혹에 속지 않는 것입니다(13-16절).

유혹이란 선한 것을 나쁜 방법으로, 혹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림으로 얻는 것을 말합니다. 얻고자 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얻고자 하는 방법이 나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삼일 동안이나 물을 마시지 못했으니 물을 구해야 합니다. 물을 마셔야 합니다. 그러나 불평하는 것은 옳지 않았습니다.

욕구의 단계
가나안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흉년을 극복해야만 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과 가족들을 굶어 죽지 않게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흉년을 이기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학생이 시험을 잘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cheating을 하는 것을 잘못된 것입니다. 음식을 먹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음식을 먹기 위해 도둑질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시험 안에는 시련(훈련)과 유혹이 함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해지기 위해 우리는 시험, 시련,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선한 것을 얻기 위해 선하지 않은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즉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결코 우리의 인생을 유익하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유혹에 빠지는 첫 번째 단계는 어떤 욕구를 갖는 것입니다. 배고픔의 욕구를 갖고, 갈증의 욕구를 갖습니다. 좋은 성적을 가지고 싶은 욕구를 갖습니다. 욕구는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욕구가 없으면 사람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배고픔을 느끼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을 것이고, 목 마르지 않으면 물을 마시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피로를 느끼지 않으면 쉬지 않을 것입니다. 성적인 욕구를 느끼지 않으면 종족이 이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는 잘 다스려져야 합니다. 욕구가 우리 자신을 움직이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욕구는 적절한 통제가 필요합니다. 먹고 싶은 욕망은 죄가 아니지만, 무절제하게 먹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잠을 자고 싶은 것은 죄가 아니지만, 게으른 것은 죄입니다. 한 남자가 한 여성을 사귀고자 하는 것은 건강한 것이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그 여자를 소유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죄입니다. 욕망은 절제되어야 합니다. 욕망은 종이 되어야지,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욕망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허용할 때, 이것이 죄가 됩니다.

미혹의 단계
두 번째는 미혹의 단계입니다. 사람이 욕심에 끌려서 욕심의 종이 되면 미혹을 당합니다. 14절 말씀입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여기서 ‘자기 욕심이 끌리다’는 말은 흔히 낚시나 사냥에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이것은 덫을 놓거나, 낚시하는 사람이 낚시밥을 놓는 것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낚시나 사냥을 하는 사람은 동물이나 고기를 유인해서 잡기 위해 그럴 듯한 먹기(미끼)를 놓습니다. 그러면 고기가 와서 바보처럼 그것을 입에 무는 것입니다. 미혹은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미혹을 받을 때 대상을 정확하게 보지 못합니다.

창세기 3장에 뱀이 하와를 유혹했습니다. 뱀은 하와의 마음을 흔들어서 하나님을 의심하게 했고, 그 결과 하와의 지성을 마비시켰습니다. 하와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습니다. 그 결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보았을 때, 그 나무 열매는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또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열매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미혹은 인간의 본성적 욕구를 자극하고, 결국 모든 판단력을 흐리게 합니다. 그렇게 판단되는 것입니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판단되어 버립니다.

롯을 보십시오. 그는 창세기 13장에서 소돔과 고모라 성이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은 것을 보면서 그 땅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혹이었습니다. 사실 소돔성은 죄악이 만연한 곳이었습니다. 곧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땅이었습니다. 롯은 그것을 보지 못하다가, 결국 몸만 겨우 나온 신세가 되었습니다.

다윗이 이웃집에서 목욕하고 있는 남의 아내를 보았습니다. 한 남자가 목욕하는 여자를 보고 유혹은 받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그는 남의 부인을 빼앗고, 자기 부하를 죽게 했습니다. 그것은 결코 자기 삶을 유익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혹을 받는 사람들은 그 상황에서 판단력을 잃어버립니다. 그가 과연 그로 인해 겪을 결과를 미리 알았다면 그런 일을 범했겠습니까?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이 사탄의 미혹을 받아 판단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미혹입니다. 우리 마음에 욕심(욕구)이 들어오면, 그 욕심(욕구)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지만, 욕심(욕구)이 그를 미혹해서 그의 판단력을 잃어버리게 하고, 결국 패망하게 합니다. 우리가 유혹을 받을 때 승리하는 첫 번째 길은 죄의 유혹이 속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16절에서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악한 사탄에 의해 속지 말아야 합니다.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면 그 다음 단계는 불순종이고, 불순종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15절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우리가 미혹을 당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 아닌가 하는 것을 보면 압니다. 주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순종할 마음이 없으면, 우리는 어떤 명분을 대더라도 속고 있는 것입니다.

미혹은 우리의 생각을 바꿔버립니다. 미혹은 우리에게서 바른 분별력을 빼앗아 갑니다. 생각이 바뀌면 우리는 아무리 바르게 판단하려고 해도 자기가 기준이 되기 때문에 바르게 판단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유혹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욕심이 끌려 가면 안 됩니다. 욕심은 우리에게 일할 수 있는 열정을 주지만, 그 욕심에 끌려다녀서는 안됩니다.

우리 안에는 성령이 계십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를 움직이도록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야 합니다. 교회 생활을 하면서도 우리는 자주 사탄의 소리에 속아 넘어갑니다. 여러 가지 명분을 가지고, 이론적이고, 상황적이고,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하지만, 그것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면, 그것은 낚시 미끼를 물은 것입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는 아브라함처럼, 에덴 동산같이 기름지고, 애굽 땅과 같이 풍요로운 소돔과 고모라 성을 바라보며 그곳으로 끌려가는 롯과 같은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서 사탄의 미혹에 속지 말고, 오직 말씀을 붙들고 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탄의 미혹에 속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2. 유혹을 받을 때 승리하는 두 번째 길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17절).

17절은 하나님의 선하신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심을 강조합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우리가 믿음으로 승리하려고 할 때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신뢰를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를 미혹하는 사탄의 전략 중의 하나는 우리 하나님이 의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을 의심하게 하고, 그분의 의도에 의문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뱀을 통해 하와에게 접근했을 때, 사탄은 하와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정말로 너희를 사랑하신다면, 너희에게 동산에 있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겠느냐?

하니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는 것은 유혹을 이길 수 있는 가장 큰 힘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알면 알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집니다. 17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좋은 은사와 선물은 모두 다 위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한 것만, 좋은 것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다 좋은 것들입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했을 때 선지자 나단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다윗에게 와서 그의 잘못을 책망했습니다. 이 때 나단이 이렇게 말했습니다(사무엘하 12:7-8).“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주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딸들까지) 네게 맡겼느니라(너에게 주었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이 무한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아시며, 또한 그것을 주십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의 주인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할 때 요셉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셨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은 이 모든 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주인의 손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선하심이었고, 이런 선하심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그는 유혹의 시간들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에게 가장 선한 것을 주시며,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믿음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누려야 합니다. 그분께서 주시는 풍성한 삶을 누리십시오. 설령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많지 않아도 느낀다고 하더라도, 그것 자체를 먼저 누리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감사하십시오. 그런 누림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나갈 때 하나님께서 더 크고 놀라운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가득하시길 축원합니다.


3. 유혹을 받을 때 승리하는 세 번째 길은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18절).

본문 18절에는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거듭남에 대해 말씀합니다. 우리가 첫 번째 태어난 것은 우리의 부모님으로부터 출생한 첫 번째 태어남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두 번째 태어난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 존재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요한복음 3장 3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우리는 진실로 거듭난 존재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의 거듭남에 대해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존재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우리는 유혹 앞에서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두 가지 방법으로 거듭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는 성령으로 거듭납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에 의하면,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으로 우리는 거듭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다스리고, 우리를 인도하시도록 항상 우리를 그분께 맡겨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우리는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났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우리는 말씀으로 거듭났습니다. 말씀이 우리를 날마다 새롭게 합니다. 말씀이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자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말씀이 항상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바른 길을 안내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듭난 존재로 계속하여 살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을 항상 의지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인도하도록 해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의 길을 안내하도록 해야 합니다. 말씀을 기억해야 하고, 말씀을 묵상해야 하고, 말씀을 암송해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의 가치관을 바꾸는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부터 제자훈련을 시작합니다. 제자훈련은 그냥 성경을 공부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변화되는 것을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말씀과 부딪치고, 말씀과 대면할 때 우리의 생각이 깨어지고, 우리의 마음의 악한 의도와 시기, 온전치 못한 생각들이 변화되어집니다.

우리는 말씀의 능력을 과소평가합니다. 말씀을 볼수록, 연구할수록, 묵상할수록 그 말씀의 능력에 놀라움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말씀 안에 인간에 대한 가장 깊은 이해의 길이 열리고, 이 말씀 안에 우리가 걸어가야 할 가장 참된 길을 확신하게 하고, 이 말씀 안에 우리가 가장 큰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근거와 힘을 주십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세상에서 승리하도록 인도하는 능력을 부여합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말씀을 배우지 않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제자훈련도 하지 않고 주의 은혜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있으면 제자훈련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교회 모든 성도들이 다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 함께 주의 은혜를 누리며 감사와 기쁨으로 주를 찬송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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