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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알고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그분은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거듭남이라고도 합니다.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피가 바뀌고, DNA가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옛날 그대로이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게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그렇게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발자취를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그들은 모두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마지막으로서 믿음으로 산 사람들의 삶을 총정리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특별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위대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본문은 기라성 같은 믿음의 거인들을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동일한 영적 승리를 얻고 누리도록 도전하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1.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을 이깁니다 (32-35상)

믿음의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위대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도 역시 보통 사람들과 같이 인간적 약점들을 많이 지닌 사람들이었습니다. 본문에 이름만 나열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그리고 사무엘입니다. 여기에 나온 사람들과 또 앞서 언급했던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까지도 모두 그런 치명적인 허물과 약점들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했습니다(33-34절).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왔던 사람들이 어느 날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면서 그들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과 함께 부족하지만, 어설프지만,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그 결과는 언제나 위대했고, 놀라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제자들을 다락방에 모아놓고 말씀하셨습니다. 유언과 같은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마지막 말씀이 요한복음 16장 33절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리고 요한일서 5장 4절에서 사도 요한은 이 말씀을 받아서 다시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릇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본문에 나오는 인물 중에 기드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 왕이 있기 전의 시대 사람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웃 민족들에 의해 자주 침략을 당하곤 했었습니다. 이 때도 이스라엘은 미디안이라는 이웃 민족에 의해 7년째 압제를 받고 있었습니다. 농사를 지어서 추수를 하면 곧바로 쳐들어와서 다 빼앗아가곤 했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겠습니까? 그는 아주 쪼그라든 마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현실에 적응하여 살기조차 힘든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기드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삿6:12). 뜬금없는 소리를 들은 기드온은 아마도 화가 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그 말씀을 듣자 이렇게 대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과 함께 계신다면 어찌하여 이 민족이 이런 참혹한 일을 당해야 합니까?’ 라고 말합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했습니다.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삿6:14)

기드온의 인생은 여기서부터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어설펐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섬기는 우상을 한 밤 중에 부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들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양털로 하나님의 응답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계속해서 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결국 300명의 정예 군사를 이끌고 나가 미디안이라는 감당하기 어려운 적군들과 싸워 이겼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산 사람들은 모두 주님의 위대한 역사에 참여했습니다. 어떤 이는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는 권력자의 칼날을 피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는 연약한 중에 강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담대해졌습니다. 용기를 얻었습니다. 겁 많고 소심한 기드온이 불과 3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미디안의 군사와 싸워 이긴 것입니다.

아주 평범하고 어떤 면에서는 흠이 많은 인간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런 놀라운 역사를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들도 이런 믿음의길을 걷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도 동일하게 부르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담대하게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갖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갖지 못하면 우리는 사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목적을 가지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의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게 되면 우리는 더 아상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없고, 또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역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사람들이 걸어가고 체험했던 그 놀라운 은혜의 길을 걷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2. 믿음은 고난을 이기게 합니다 (35하-40)

여기서 하나 질문이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은 항상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항상 좋은 결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본문 35절 하반절 이하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저희는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할 것은 정복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승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당신의 자녀들이 고난을 당할 때 침묵하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그 고난과 핍박을 묵묵히 감당했습니다. 그들은 그 고난을 피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려고 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승리만이 아니라, 고난도 주시는 것입니까? 여기서 두 가지 점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병원균이 몸에 없는 사람이 아니라 몸 속에 있는 병원균을 이기는 사람입니다. 우리 안에는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하는 병균, 암세포들이 있습니다. 우리 몸 속에 있는 백혈구가 그런 나쁜 세포들과 계속해서 싸워 이기기 때문에 우리는 건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균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균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동일한 원리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악한 세력, 어려운 도전, 위기와 고난 속에서 이를 극복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이렇게 세워가십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는 이 땅에서 승리를 맛보게도 하시지만,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땅에서 고난과 아픔을 겪게도 하십니다.

그들 중에는 이 땅에 사는 동안 끝까지 고난 중에 살다가 죽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숙제입니다. 과연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천국에 가면 결국 다 동일하게, 아니 어쩌면 더 큰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 약속의 말씀에 위로를 받고 나아갑니다. 본문 35절에서도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합니다. 맞습니다. 그들은 천국에서 누릴 더 큰 영광을 보고 갔습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더 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렇게 고난을 당하는 이들은 그 고난 중에 아픔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그 안에서 놀라운 주님의 은혜를 맛보았습니다. 성경에서 고난 당한 사람들을 잘 보십시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보십시오. 그들은 느부갓네살 왕의 금신상 앞에 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풀무불 속에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사형 방법이었습니다. 완전히 흔적도 없이 태우고 녹여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아들,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 풀무불 속을 걸어다녔습니다. 그들은 결박되지도 않았고, 불에 상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사자굴 속에 들어갔습니다. 사자굴은 무시무시한 공포와 죽음이 기다리는 곳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한 군데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Mr. Bailey께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금요일에 장례를 지냈습니다. 그 전 주 목요일 병원에 그를 심방갔습니다. 젊으셨을 때 믿던 믿음 생활을 지속하지 못하시던 분이셨는데, 병상에서 다시 예수를 믿기 시작하셨습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한 후, 두 가지 질문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시는 것을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신 것을 믿습니까?’ 이 두 가지 질문을 할 때마다 그는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분의 표정이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밝은 미소로 바라보는 그분을 볼 수 있었습니다. 도대체 죽음을 앞둔 그 병상에서 그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있기에 그 고통 중에 저렇게 밝은 미소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 병상에서 그는 우리가 모르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있었고, 느끼고 있었고, 만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으로 이루시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그의 삶이 세상적으로 화려하든 아니면 초라하든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영광은 동일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분의 미소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표적입니다. 진정한 승리는 고난도 이기는 것입니다. 고난을 이기지 못하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겪는 고난을 사실 그 안에 은혜와 평강, 보호하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승리하는 사람과 고난을 당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삶이 질적으로 동일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고난을 당하는 사람과 예수를 믿고 영광을 누리는 사람이 우리의 눈에는 너무도 다르게 보이지만, 사실은 그것은 동일합니다. 왜냐하면 고난을 당하는 사람에게도 큰 위로와 기쁨, 능력과 승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으로 인도를 받든지 그것에 너무 연연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주의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너무 약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조금만 고난에도 몸을 사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맛볼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 맛을 경험할 기회가 없습니다.


풀무불 속에 들어가서도 주님을 손을 붙잡고 결박되지 않고, 상한데도 없이 주의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깊은 고난 가운데 빠진다고 느낄 때 우리는 두려움에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 안에 평안이 있음을 보십시오. 막상 우리가 고난 가운데 던져지면 고통과 어려움이 있을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주님의 지키심과 함께 하시는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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