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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생각과 가치관이 바뀌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전에는 바르다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든지, 아니면 전에는 옳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것이 오히려 더 옳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에는 그 사람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그 사람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시간 옆 사람과 이렇게 인사해 봅시다. “알고 보니 훌륭한 분이셨군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부터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백성입니다. 어떤 의미로 혹은 어떤 목적으로 택함을 받았느냐를 논하는 것을 뒤로 하고 그들은 분명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들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복 받은 민족이며 특권을 누리는 백성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놀라운 특권을 거부했습니다. 사실 그들이 받은 특권은 사명을 함께 지는 특권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특별한 지위를 누리는 백성이 됨으로써 그들은 또한 복음을 전하는 사명도 지닌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자기들만 누리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그 특권조차도 차 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복음은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선포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주님의 날카로운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영적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복음을 거부하고, 복음 전하는 사람을 핍박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성도들을 핍박하는 자들은 주로 유대인들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도 그런 핍박을 날마다 당하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매도 수없이 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여러 번 하고, 죽음의 위험과 온갖 고난의 상황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 고난의 주최는 언제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소아시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유럽까지 가서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은 다른 도시까지 쫓아와서 바울을 괴롭히고 핍박했습니다. 결국 바울은 이제 더 이상 유대인들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결국 사도행전 13장 46절에서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함으로 이제부터는 이방인에게로 복음을 전하겠노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이 고백에는 바울의 아픔이 묻어 있습니다. 사실 자기 동족이지만, 바울에게 있어서 자기 민족은 이가 갈 릴만큼 아픔을 준 사람들입니다.

그런 배경을 가지고 사도 바울은 로마서 9장부터 11장을 쓰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그가 유대인들에게 당한 고난으로 봐서는 할 수 없는 고백을 합니다. 9장 1절에서 그는 자기 민족 유대인을 위한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0장 1절에서는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바는 곧 유대인으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본문 11장 1절에서 그는 이렇게 스스로 질문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이 나의 감정과 배경, 그리고 경험을 넘어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가 밉습니다. 나는 정말 더 이상 그와 대면하고 싶지 않습니다. 용서하고 싶지 않고, 상종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듯이 하나님은 동일하게 그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으면서 바울은 그것을 통해 자신이 이방인을 위해 부름 받은 사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삶과 생각을 계속 지배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유대인들에 의해 핍박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울이 발견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도 이제는 자기 민족 유대인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의 경험을 보편화된 진리로 만들어 버리기를 좋아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겪어 봤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지방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 지방 사람들은 모두 나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상종할 가치도 없다고 말합니다. 내가 만난 사람이 불과 몇 명밖에 안 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흔히 그런 우를 범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자기의 경험의 자리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중심하여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통찰력으로 시대를 보고, 민족을 보았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볼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은혜’였습니다. 그는 5-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그가 말하는 은혜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나는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베냐민 자파라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저주받을 자라고 한다면 나도 저주받아야 할 자라는 고백입니다. 그들이 나쁜 사람이라면 나도 전에는 나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도 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가기 위해 뛰어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구원하셨다면 저들도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가 말하는 ‘은혜’입니다. 거저 받은 것입니다. 내가 어떤 공로로 얻은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자기를 그토록 괴롭힌 자기 동족 유대인의 구원에 대해 그렇게 안타깝게 확신하며 주장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이 자신의 행위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있기 때문입니다. 6절에 은혜로 된 것이라는 말은 은혜로 시작된 삶을 의미합니다. 즉 그의 삶의 모든 동기가 은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사랑도 하고,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봉사도 하고, 희생도 하는 것입니다. 그가 하는 헌신적인 행위는 바로 하나님의 은혜 위에 놓여있습니다. 성도가 은혜를 받으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그것을 기꺼이 기쁨으로 감당하게 됩니다.

다음 주에 우리교회가 가을학기를 맞이하면서 교회대청소를 하게 됩니다. 청소를 하면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반드시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정말 땀 흘려 수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가 봐도 정말 미안할 만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청소 안한 사람만 눈에 띕니다. 비만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 청소 안하고 먼저 집에 간 사람만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집사님이 청소도 안한다느니, 장로님도 안하더라고, 목사도 안하던데 라고 하면서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바울은 그 은혜로 자기 동족을 사랑했습니다. 그 은혜가 그로 하여금 놀라운 일을 감당하게 했습니다. 그 은혜가 그의 삶을 위대하게 했습니다. 그 은혜가 그를 더욱 훌륭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삶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은혜가 성도님들에게도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어서 바울은 엘리야의 이야기를 합니다. 엘리야는 갈멜 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모두 잡아 죽였습니다. 하지만 이세벨은 여기서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를 잡아 죽이겠다고 찾아다닙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야는 두려움의 포로가 되어 한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떼를 씁니다.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엘리야는 낙심했습니다.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 잡혔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사건을 경험하고도 한 사람도 엘리야의 편에 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낙담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만 남았습니다. 나도 죽여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엘리야의 말은 사도 바울의 말과 비교해 봅시다. 사도 바울은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베냐민 지파라고 말했습니다.‘나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이 저주 받을 사람이라면 나도 저주 받아야 할 사람이고, 내가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그들도 마땅히 구원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850명의 이방 선지자와의 영적 대결에서 싸우고 난 후 자신만 남았다고 고백합니다. 다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본 모든 백성들도 다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도 하나님 편에 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있었지만 결과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이세벨은 더 기세등등합니다. 이제 나만 남았습니다. 절망과 패배감에 휩싸여 있습니다. 낙심해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엘리야의 실패를 통해 그의 안에 교만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나만 남았습니다’라는 말은 바로 나만 믿음을 지켰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교만으로부터 나온 말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때로는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고독합니다. 절망감에 빠져 있습니다. 나만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나만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외롭고 절망감에 휩싸여 있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옳지 않다고 정죄합니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을 때, 나만 옳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절망합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합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그런 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엘리야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다 끝장 난 것 같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일을 위해 칠천 명을 남겨놓으셨습니다. 칠천 인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칠은 완전수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 완전한 수의 사람들을 남겨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명령하십니다. 엘리사에게 가서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되게 하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라. 할 일을 주십니다. 함께 일할 동역자를 주십니다. 너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칠천 인을 남겨놓으셨음을 알게 하십니다. 옆 사람과 이렇게 한 번 더 인사해 봅시다. “나 혼자인 줄 알았는데, 당신도 있었군요!”

성도는 고독하거나 절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다 엘리야를 떠났어도, 그리고 어마어마한 권력자 이세벨이 자신을 잡으려고 달려와도 하나님은 엘리야를 지키시고, 당신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도 엘리야와 같은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정말 힘들고 어려운 터널을 지나가는 암울한 상황을 견뎌야만 합니다. 언제 이 터널이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영영 밝은 빛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절망감으로 주저앉아 있는 엘리야에게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칠천 인을 남겨놓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오늘도 동일하게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엘리야와 함께 하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와도 함께 하십니다. 엘리야를 통해 일하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와도 동일하게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세벨이 쫓아오든, 무슨 재앙이 우리 앞에 있든지 간에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서야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새로운 일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십니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선지자가 되게 하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도 다 죽고, 하나님의 영광도 보이지 않고, 정말 암울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절망할 일도 아니며, 낙심할 일도 아닙니다.

8-10절의 말씀은 이스라엘을 향해 성경이 선언했던 부정적인 선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혼미한 영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희의 밥상이 저희에게 재앙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악했고, 저주 받을 백성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타락하고, 하나님을 떠났을 때 이사야 선지자와 다윗과 모세가 선포한 말씀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악함을 지닌 자들입니다. 그들은 비전이 없는 족속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자기 민족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자기 민족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이것이 참 사랑이고 믿음이며 은혜입니다. 진짜 은혜는 멸망의 자식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11-12절의 고백을 그는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자기 백성은 넘어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웁니다. 은혜 위에 사는 사람은 이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은 종교행위에만 열심을 내지 않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는 일에만 머무르는 것은 은혜 가운데 사는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웃을 보면서 소망을 갖는 사람입니다. 내 가족을 보면서 그들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내 회사 동료를 보면서, 정치가가 백성을 보면서, 회사 경영자가 사원을 보면서 그들을 나와 동일하게 은혜를 나눌 자로 보는 것이 바로 은혜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 속에서 진정한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런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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