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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강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대강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아기의 모습으로 이미 오셨고, 또 장래에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대강절은 두 가지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미 오신 주님을 기억하고, 또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오심을 맞이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절기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내가 온 것은(1)-생명을 주기 위해”입니다. 대강절 4번 중 세 번에 걸쳐서 “내가 온 것은”이라는 시리즈로 다음 세 가지 답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1.        생명을 주기 위해 오신 주님(요10:10)
2.        섬기기 위해 오신 주님(막10;45)
3.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주님(마9:13)

오늘 설교의 초점은 생명을 주기 위해 오신 주님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가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생명이란 무엇입니까?

1. 육체적 생명
생명의 첫 번째 정의는 육체적인 생명입니다. 우리가 지금 몸을 움직이고, 말을 하고, 음식을 먹고, 하는 일체의 행위는 우리가 적어도 육체적으로 살아 있음을, 그래서 우리에게 생명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성경은 육체적인 생명을 지니고 있을 때 이를 ‘살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창세기 3장에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이리라고 하셨는데, 실제는 죽지 않았습니다. 이는 성경이 육체적인 생명을 생명이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데 교회를 향해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를 향해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새로운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단순히 육체적 생명을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장래에 부활할 때는 육체적인 부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적인 생명만으로 성경이 말씀하는 생명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2. 시간적으로 영원한 생명(영생)
생명의 그 다음 단계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시간적으로 영원한 것입니다. 이것을 흔히 우리는 영생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것을 영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생명이라는 단지 영원히 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오래 살기를 원하고, 또 영원히 살기를 갈망합니다. 진시황이 죽지 않으려고 천하를 다니며 불노초를 구하게 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우리 나라의 어느 대기업 총수도 죽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지속하는 시간으로서의 영원한 생명은 성경이 말씀하려는 생명과는 여전히 관계가 멉니다. 물론 성경에서 말씀하는 생명은 영원성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천국에 대해 말할 때 천국은 영원한 곳이라고 하면 지루함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것은 천국은 단지 시간적인 영원함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적인 의미에서의 영원한 생명은 성경이 말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3. 진정한 생명(Real Life)
성경이 말씀하는 좀 더 깊은 의미에서는 생명은 시간적인 영생을 넘어서서 진정한 생명입니다. 그래서 흔히 영어로 표현할 때 영생이란 eternal life가 아니라, real life라고 말합니다. 진짜 사는 것이 무엇이냐를 생각할 때 우리는 생명에 대한 좀 더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장 인간다운 삶이고 가장 복된 삶입니다. 이런한 생명 안에 자유가 있고, 기쁨이 있고, 능력과 역동성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이것을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진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대낮에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열대 지방에서 혼자 정오의 시간에 물을 뜨러 올 수밖에 없는 고독하고 외로운, 죄책감에 시달리며 사는 한 여인의 모습에서는 도무지 생명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낮에 우물가를 찾아왔던 여인이 금새 자기 동네에 들어가서 동네 사람들에게 자기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자기 삶을 오픈하고, ‘한 번 이 사람을 만나보자. 그는 내가 행한 모든 부끄러운 일을 다 알고 말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생명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성탄은 바로 이러한 변화, 생명의 역사를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사건입니다.

구역모임을 하다보면 처음 구역이 편성될 때는 자기를 잘 오픈하지 않습니다. 기도제목을 나눌 때도 그냥 ‘가족의 건강’과 같은 표면적인 기도제목만 말합니다. 하지만 관계가 깊어지고 친밀해지면 좀 더 깊은 내면의 이야기들을 나누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삶의 모습입니다. 그런 가운데 진정한 삶의 회복을 이루어가게 됩니다. 진정한 생명을 회복하는 과정을 경험합니다.


4. 주님으로부터 받는 생명
그러나 생명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생명에 대해 세 번째 정의까지만 들어보면, 우리는 ‘아! 그런게 생명이야. 그렇다면 나도 열심히 노력하면 그런 삶을 누릴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 노력으로 어느 정도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아마도 바리새인들도 그런 류의 사람들 중에 속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은 그렇게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합니다. 그 생명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로밖에는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곧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 자신을 ‘생명의 떡’(요6:35), ‘생명의 빛’(요8:12)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2장 25절에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했고, 요한복음 14장 6절에는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 자신이 곧 생명이십니다. 그래서 주님과 관계 없이 생명을 얻을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예수님과 바리새인들 사이에 갈등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여기서부터 성도가 누리는 진정한 생명의 삶도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계속해서 전할 때 가장 그 말씀에 걸림이 되고 반대하던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예수님께 시비를 걸고 넘어졌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 베데스다 못에 38년 된 병자를 예수님께서 고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냥 고치시는 것으로만 끝나면 좋은데, 예수님께서 한 마디 더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당신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과 동등한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말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생명의 공급자임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노력해서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를 알아들었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옵니다. 이 사건을 행하신 후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33절). 그렇게 말씀하신 후에 다시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 말을 듣고 수군거렸다고 말씀합니다(요6:41). 그리고 유대인들이 이어서 서로 다투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어떻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고 하며 논쟁을 했습니다.

여기 예수님과 유대인들 간에 충돌이 계속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충돌의 중심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생명에 대한 정의입니다. 과연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은 누가 주는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는 예수님의 자기 인식, 자기 정체성에 대한 말씀을 할 때마다 저들이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내가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떡이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말씀이 저들을 분노하게 했습니다.


요한복음이 보여주는 생명에 대한 메시지
요한복음에서 보여주는 생명에 대한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진정한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 주어지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물론 육체적인 생명도 생명입니다. 영원히 사는 것도 주님이 주시는 것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진짜 사는 것처럼 사는 것, 정말 인간답게 사는 것도 생명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정말 원합니다. 그렇게 살지 않는다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진정한 생명은 그런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진짜 생명은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아마도 반론을 제기하고 싶은 분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인간의 모든 수고와 노력을 헛된 것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의미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싫어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생명은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맞습니다.
그런 질문이 나와야 합니다.


결론
본문 요한복음 10장은 예수님이 생명의 공급자가 되신다는 사실에 대해 다음 두 가지를 결론적으로 교훈하고 있습니다. 첫째, 생명이란 그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르는 것입니다. 3-5절입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생명이란 그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를 아는 것입니다. 그의 음성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부끄러운 일이 많은 이 여인이 예수님과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마을로 들어가 자기가 만난 예수님을 마을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예수님과의 이 짧은 대화 중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사람들을 피해다니던 이 여인이 마을 사람들을 찾아가서 내가 만난 그분을 보라고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 짧은 만남 중에 주님은 그 여인에게 생명을 공급하셨습니다. 그 생명은 그 여인에게 삶의 의미와 목적을 갖게 했습니다. 그 짧은 순간 이 여인은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위해 달려갈만큼 역동적인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의 노력이나 애씀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며,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것은 아주 신비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일은 매우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런 은혜를 누리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둘째, 생명이란 주님께서 목숨을 버림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11절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4-15절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에서 계속해서 보여주시는 것은 주님께서 그 생명을 주시기 위해 어떻게 하셨는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다 행하셨습니다. 네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합니다. 친히 당신의 몸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나 노력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리새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싫어했고, 부정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관계를 가질 때 그분은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생명, 우리의 공로, 우리의 노력을 부정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을 못견뎌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겸손이 필요합니다. 자기 부정이 필요합니다. 주님 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제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나의 주인이시며, 나의 생명이십니다. 그렇게 고백할 때만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주님, 그분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또 당신의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이 성탄의 의미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신 주님, 생명을 주시기 위해 당신 자신의 목숨을 우리에게 주신 주님, 이것이 바로 주님의 은혜이며, 생명의 사건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 생명의 역사를 누리게 됩니다. 오늘 이 아침 성탄을 준비하며 주님의 생명을 누리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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