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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의 남 유다의 주변 정세는 매우 복잡하고 혼란한 상황이었습니다. 북동쪽에는 앗수르라는 강대국에 계속 세력을 확장하며 내려오고 있었고, 남쪽에는 이집트라는 강대국이 또한 있었습니다. 앗수르의 공격과 압박을 받는 유다 민족으로서는 이집트가 늘 심정적으로 의존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앗수르와 이집트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변 10개의 열국들에 대해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은 강력한 국가들에 대해서는 여지없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문에는 그 중 여덟 번째와 아홉 번째 나라를 향해 경고하십니다. 이 나라들은 두마와 아라비아로서 작은 나라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들입니다. – 두마는 에돔 족속을 의미하고, 아라비아에 해당하는 드단 대상은 아브라함이 그의 후처 그두라를 통해 낳은 아들의 아들(손자) 나라이며, 데마 사람과 게달 사람은 이스마엘의 12아들들 중에 두번째와 아홉 번째 아들들입니다.

11-12절에서는 먼저 두마에 관한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파숫군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숫군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밤이란 어둠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고난을 의미합니다. 아수르가 고대 근동 지방 전역을 휩쓸고 지나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죽어가고 있고, 노예로 끌려가며, 잡혀갔습니다. 앗수르의 잔인함은 역사적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파숫군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라고 세일사람이 외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침이 올 것을 기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지자가 대답합니다.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다소 어려운 표현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말의 의미를 다시 이렇게 해석합니다. “아침이 왔지만 여전히 밤이다.” 이 말은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미 아침이 되었으나 사람들은 아직도 밤처럼 생각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깨어 일어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앗수르라고 하는 나라의 군대는 여전히 자신들 주변에서 진치고 있지만, 이제 그들의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아침이 왔습니다. 이제는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반듯한 삶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 말씀은 두마 사람의 외침만이 아니라 사실은 유다 민족의 외침입니다. 주변에 앗수르 군사들로 진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은 예루살렘 성 안에서 지금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 밤은 영원히 밝아질 것 같지 않습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제 밤이 끝나고 아침이 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밤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간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두 번째 예언은 아라비아에 대한 경고입니다. 드단 대상은 낙타나 코끼리와 같은 짐승에 많은 물건을 싣고 주변 다른 나라들을 다니면서 무역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나라가 혼란스럽고 국가 간에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위험에 노출되는 사람들이 바로 대상들입니다. 이들은 워낙 많은 사람들과 물자들을 동물을 통해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큰 길과 넓은 도로를 이용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길은 전쟁이나 위험한 시국에서는 가장 노출이 잘 된느 위험한 교통수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빈번이 공격을 당하고 물건을 빼앗기고, 죽거나 노예로 잡혀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는 길에 앗수르 군인들이 나타났다는 말만 들으면 그들은 급히 숲 속에 숨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13절 하반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드단 대상이여 너희가 아라비아 수풀에서 유숙하리라.” 드단 대상들은 이런 시국에서 큰 길을 놔두고 산 길, 험한 길을 따라 이동해야 했고, 때로는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먼 길을 이동하면서 식량을 현지에서 공급받아야 하는데, 가는 곳마다 앗수르 군사들이 있으니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즉 전쟁은 피하지만, 부족한 물과 양식을 구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드단 민족과는 동족이나 마찬가지인 데마 사람들에게 그들을 도우라고 명령합니다. “데마 땅의 거민들아 물을 가져다가 목마른 자에게 주고, 떡을 가지고 도피하는 자를 영접하라. 그들이 칼날을 피하며 뺀 칼과 당긴 활과 전쟁의 어려움에서 도망하였음이니라(14-15절).” 하나님은 데만 사람들에게 그들을 도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족속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게달 족속입니다. 그들에게도 동일한 명령이 주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돕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눈 앞에 있는 상황을 너무도 빨리 읽어내고, 지금은 아무리 가까운 족속이라도 도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앗수르에 붙어서 동족들을 돕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게서 그들을 향해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일년 내에 다 쇠멸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들은 지금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전쟁이라는 이 위기 속에서, 생명이 경각 간에 달린 상황에서, 민족 전체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형편에서 그들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먼저 살아야 형제도 있고, 부모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말씀은 이사야가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하는 말입니다. 상황은 밖에 있는 아라비아 사람들의 일이지만, 선포되는 곳은 예루살렘이었다는 것이지요. 즉 이 상황은 그들의 상황이기도 하지만, 또한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유다 사람들의 상황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주변에 앗수르 군사들로 가득찬 상황에서 내일이 없는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무슨 민족과 나라가 있으며, 애국과 동족이라는 개념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씀을 앞의 두 구절(11-12절)과 연결시켜 봅니다. 지금은 캄캄한 밤입니다. 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사람들은 언제 태양이 뜰지 모르고 두려움 가운데 서 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이제 아침이 왔다고 외치는 것입니다. 이제는 옷 매무새를 새롭게 하고, 일어나 주변을 돌아보며,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전쟁 중에 다친 사람은 없는지, 고통 당하는 사람은 없는지 살피는 것, 그것이 바로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사람의 갈 길이라는 것입니다. 주변에 있는 앗수르 군사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안에서 이루어질 협력과 평안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그들 자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가스 값도 오르고, 쌀 값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비지니스는 여전히 어렵고,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직장의 장래도 불투명하며 학업도 결코 수월하지 않습니다. 내 코가 석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앗수르의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을 돌아복 섬기기에는 내가 준비가 너무 안됐다고 늘 느끼며 살아갑니다. 아직은 내 일을 먼저 마쳐야 합니다. 남의 마음을 어루만지기에는 내 마음의 상처가 아직 더 크고, 남을 격려하기에는 나에게 더 많은 격려가 필요합니다. 이 암으으로는 평생 영향력있는 살믈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복을 주시옵소서. 그러면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겠습니다.’ Bill Gates처럼 넉넉한 물질을 주시면 맘껏 주를 위해서도 일하겠다고 말합니다. Bill Gates는 분명 훌륭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Bill Gates보다 더 훌륭한 당신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넉넉해서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내가 힘들어도 다른 사람을 돕고 격려할 수 있는 사람을 주님은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적어도 그 정도는 돼야 하나님께서 보시면서 ‘그래 네가 바로 내 아들/달이다’라고 말쓰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자녀의 모습이 아닐까요? 조그만 일에도 힘들어하고 낙심하며 상처받고 칭얼거리는 성도를 언제까지 하나님께서 받아주셔야겠습니까? 내 몸에 상처가 흐르고 아픔으로 끙끙거리면서도 이웃의 아픔을 보면서 그의 상처를 먼저 싸매줄 수 있을 때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삶이 아닐까요?

예루살렘 성 안은 지금 그런 협력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앗수르가 쳐들어오기 전이라도 그들은 스스로 자멸할 가능성을 얼마든지 가지고 있습니다. ‘파숫군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이미 아침이 되었으나 사람들은 아직도 밤처럼 생각하고 살아간다.’ 아직도 어렵다고 말합니다. 아직도 때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아직도 준비가 덜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의 언어는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바뀌어야 합니다. ‘주님, 내가 하겠습니다. 주님 내가 그의 짐을 지겠습니다. 주님, 나를 부르소서.’ 이렇게 응답하여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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