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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이고,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주신 최초의, 그리고 최고의 선물입니다. 이 세상에 가정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어떤 사람들은 가정과 교회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 라고 질문합니다. 이런 질문은 필요없는 논쟁을 만드는, 아주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은 어린자녀에게 ‘엄마가 더 좋으니? 아빠가 더 좋으니?’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정의 중요성을 꼭 교회의 중요성과 비교해서 강조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정은 가정으로서 최고로 중요합니다. 그리고 가정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선물이라는 말은 거져 주셨다는 뜻입니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은 값으로 매길 수 없기 때문에 선물로 줍니다.

가정에는 자녀가 있습니다. 자녀를 낳으셨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그 기쁨은 세상을 줘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녀가 커가고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하면서 자녀가 웬수가 되어갑니다. 여기 이미 웬수 사이로 사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옛날 분들은 사랑의 표현으로 ‘웬수’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정말 왠수가 된 가정도 있습니다.

가정은 갈수록 더 기쁨이 넘치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갈수록 더 끈끈한 관계로 성숙해져 가야 합니다. 일단 먼저 이 대 전제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갈수록 깨어져 가는 관계를 어떻게 회복해야 하겠습니까? ‘손 안에 자식’이라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자녀가 서서히 부모의 손을 벗어나서 부모의 품을 떠나고, 부모의 권위를 떠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워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멀어져가는 것을 보면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냥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정은 매우 중요한 관계의 훈련장입니다. 자녀에게도 그렇고, 부모에게도 동일합니다. 자녀와의 관계, 부모님과의 관계를 잘 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어려워하는 관계의 장이 또한 가정일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사람들이 자기 자녀들을 예수님께 데려오는 장면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자녀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져주시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이들의 접근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예수님께 올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더 중요한 사역, 즉 어른들을 만나고 가르치고 치유해야 하는 일들에 비해 어린아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시 상황으로는 매우 획기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14-15절).  

어린아이에 대한 가치전도입니다.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을 촉구합니다. 고대 시대는 어린아이와 여자들은 숫자에도 넣지 않았습니다. 그런 시대에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행위에 대해 노하시기까지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녀를 잘 양육하기를 원합니다. 물론 이미 장성한 자녀를 두고 계신 분들도 있어서 이제 더 이상 그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고, 또 반대로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아서 아직은 그런 관심을 가질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매우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함께 이 말씀 안에서 우리의 삶을 새롭게 돌아보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본문 말씀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몇 가지로 찾아보려고 합니다.

1. 첫째 자녀를 사랑해야 합니다. 왜나하면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선물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선물은 소중한 것이고, 값으로 측정할 수 없습니다. 자녀로 인한 기쁨, 이만한 기쁨은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습니다. 돈도 복권도 승진도 이런 기쁨을 우리에게 주지 못합니다. 어린아이는 태어나서 3살 때까지 부모에게 일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어린 자녀는 부모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입니다. 자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할 때 기쁨이 옵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삶의 보람과 의미, 목적을 갖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랑의 동기입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 하나님의 선물로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선물로서 자녀를 사랑하지 못하면 적어도 다음 두 가지의 문제가 생깁니다. 첫 번째는, 어린아이를 귀찮은 존재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 버금가는 사랑이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래서 아가페 사랑이라고도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을 귀찮아하고, 자아성취에 방해가 되는 존재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혼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는 것이 순리임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아이 낳는 것을 미루거나 조절합니다.
자기 인생의 자이성취를 위해 가장 방해받지 않는 상황을 기다립니다. 이미 결혼하면서도부터 우리는 자녀에 대한 우선순위를 뒤로 물려놓습니다. 또한 자녀를 양육하는 과정에서도 오늘날 자녀들이 부모의 손에서 커가는 확률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상황이 그렇게 몰아가는 면이 많이 있지만, 이런 상황은 안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자녀는 우리에게 그렇게 중요한 존재가 아닙니다.

자녀는 부모의 앞길을 가로 막는 방해자가 아닙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가장 큰 기쁨을 주는 존재이며, 가장 큰 삶의 목적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두 번째 오늘날 부모의 사랑에 나타나는 문제는 부모의 대리만족을 위해 자녀를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이 일은 첫 번째 문제, 자녀를 귀찮은 존재로 생각하는 것 못지 않게 큰 문제를 가져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를 위해 여전히 헌신하고 수고합니다. 하지만 그 수고와 헌신 속에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기 위한 대리만족의 수단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태도입니다.

이런 모습 역시 매우 이기적인 동기로 행해지는 것입니다. 자기 관리를 위해, 자아성취를 위해 자녀를 귀찮은 존재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지만 내면적으로는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잘못된 사랑은 대부분 본인들이 의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더 큰 문제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자녀는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더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이 내게로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온전히 당신의 생명으로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서도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문제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입니다. 이기적 본성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역사를 가로 막고 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를 가르치면서 자기 안에 숨어 있는 이러한 이기적 동기를 발견하지 못하면 우리는 계속적으로 자녀들과 어긋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표면적인 동기, 의욕, 방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숨은 이기적 본성이 자녀를 양육하는 그 방향과 동기, 의욕을 굴절시킨다는 점입니다. 순간마다 우리의 언어와 생각, 가르침에 그런 동기가 작용함으로 어린자녀의 마음에 부작용과 상처를 가져오게 합니다. 이점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를 하나님의 선물로서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가장 바람직하게 세워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되 내 소유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다보면 자녀들이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따라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 이런 기쁨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주어진 은혜입니다. 많은 연봉이나 세상의 지위로 기쁨을 얻는다면 그 기쁨은 적은 사람들에게만 돌아가지만, 진짜 기쁨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가정을 통해 주시는 그 은혜를 잃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2. 둘째 부모는 자녀를 잘 가르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녀는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주신 최고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셔서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직장도 사명이고, 학업도 사명입니다. 이웃을 돌보는 것도 사명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선교지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사명은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 7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자녀는 바로 부모의 손에 의해서 가장 바르게 자라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적어도 자녀에게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로 서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부모에게 주셨습니다. 자녀가 태어날 때 부모는 자녀에게 가장 권위 있는 존재입니다. 물론 자녀가 성장하면서 부모의 약한 점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부모에 대한 약점을 봅니다. 결국 부모의 권위도 떨어집니다. 하지만 부모가 이 권위를 내려놓거나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부모는 끝까지 자녀에게 본이 되는 존재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도 항상 부모에 대한 좋은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 모습을 은연중에 닮아가려고 합니다. 부모님이 그렇게 바르게 살지 못하셨더라도 부모님이 그렇게 세상적으로 훌륭한 일을 하지 않으셨더라도 자녀에게 부모는 전부입니다. 자녀에게 부모는 가장 훌륭한 분이며 둘도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특권을 부모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부모들은 이런 특권을 스스로 포기해 버립니다. 자녀를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저는 나이가 들어도 저의 아이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저에게 찾아와서 조언을 구하기를 꿈꿉니다. 이미 세상의 지식과 정보에는 아이들보다 많이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인생에 대해, 삶에 대해 고민할 때 진지하게 그들의 고민을 듣고 권면할 수 있는 영적 권위를 지닌 부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멋진 꿈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것이 세상의 다른 어떤 꿈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녀를 가르치는 방법을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본문 15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본문에서는 어린아이를 가르침의 대상으로써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하나님 나라 백성의 모델로 제시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 즉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표현은 자녀를 통해 부모의 뒷모습을 본다는 의미입니다. 본문에서의 예수님의 말씀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순전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도대체 어린아이의 어떤 모습을 두고 하신 말씀일까?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그런 모습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 이것이 아직 어리지만 내 자녀가 가진 참 아름다운 모습이구나 하고 감탄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즉 자녀에게서 무엇인가 배울 수 있는 부모인가 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통해 무엇인가 배울 수 있는 자만이 자녀를 바르게 가르칠 수 있습니다. 자녀에게서 배울 수 있는 마음이 없을만큼 자녀에게 자존심을 지켜야 하는 사람은 결코 자녀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없습니다.

물론 어린아이들은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까지 여전히 미숙하고 무계획적이고, 이기적이고 무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철저히 부모를 신뢰하고 의지합니다. 무엇보다 어린아이는 겸손합니다. 부모가 가르쳐주면 그대로 신뢰하고 따릅니다. 이것이 어린아이의 특징입니다. 부모가 세상적으로 훌륭하지 못해도 자녀는 대부분 자기 부모에 대한 좋은 이미지, 아주 긍정적인 이미지를 하나 이상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내 부모님을 세상적으로 내놓고 자랑하지는 못해도 우리 안에서는 아주 소중한 분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녀가 부모를 보는 눈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주신 복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부모는 자녀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가르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겸손입니다. 들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배울 수 있는 자세입니다. 자녀에게 배울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녀를 바르게 가르칠 수 있습니다. 자녀와 눈 높이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이럴만한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 자녀에게 하나 둘 말에서 밀리기 시작하면 겆잡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의 부모님들은 워낙 부모의 권위가 컸기 때문에 그런 염려를 할 필요가 없었겠지만, 오늘날은 그런 시대가 아니어서 부모님들께 더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부모입니다. 부모의 권위는 하니님께서 세워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권위를 가지고 넉넉히 자녀들의 눈 높이까지 낮아져서 그들에게 배울 수 있는 마음, 그리고 그들과 대화가 가능한 선까지 겸손하고 낮아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자체로 이미 자녀들에게 큰 교훈과 가르침을 주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는 어쨌든 가르치는 사명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자녀에게 부모는 끝까지 인생의 길을 인도하는 안내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도 영적으로 계속해서 자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자녀를 안내하는 안내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은혜, 이런 섬김, 이런 가르침을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셋째 자녀를 축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복의 통로이며 상속자이기 때문입니다.

16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자녀를 향해 부모가 가진 가장 큰 특권 중 하나는 자녀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감격스런 일입니까?

예수님은 자녀들을 안수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주신 최고의 복의 통로, 유통자입니다. 자녀는 복의 상속자입니다. 부모에게 주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은 자녀에게 임합니다. 자녀가 잘 되고 복을 받는 것만큼 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녀가 건강하고,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복을 받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부모는 영적인 권위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가 자녀들을 축복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0-21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세에게 축복하였으며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영적인 권위입니다. 죽어가는 부모가 숨이 넘어가면서도 자신의 손을 자녀의 머리에 얹고 축복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끝까지 자녀에 대한 영적 권위를 가지고 축복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자녀는 부모에게 주신 최고의 복의 통로이며 상속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고자 하실 때 그 대신 그 자녀에게 복을 주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복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복은 아브라함이 받은 것도 있지만 상당한 복은 그 후손이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복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3장 14-1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을 복의 대부분은 그의 자녀들이 받아누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으로 쌓아놓은 복은 우리의 자녀들이 받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누릴 은혜입니다. 자녀에게 축복하는 것이 부모의 특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복을 내려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충분히 축복하지 못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자녀를 축복하지 못합니다. 하나는 자신들의 일이 너무 바쁘기 때문입니다. 직장과 바쁜 가정 살림 때문에 자녀를 축복하지 못합니다. 또 하나는 부모의 욕심, 이기심 때문입니다. 부모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인생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내 마음이 복잡합니다. 여기저기서 상처를 받고 답답한 가슴이 채 회복되지 않은채 사정없이 자녀들에게 감정을 폭발시켜 버립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랑이라는 묘한, 말도 안되는 명분을 붙여버립니다.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것 아니냐?” 하며 소리를 질러버립니다. 그러면 자녀는 이렇게 대꾸합니다. ‘누가 엄마보고 내 걱정하래요?’ 그정도 되면 심각한 단계입니다.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 분들은 심각하게 기도하셔야 합니다.

부모들은 자기 일 때문에 자녀들에게 제대로 복을 주지 못합니다. 직장과 바쁜 가정 살림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자녀에게 복을 베풀기 어려운 것은 부모의 마음 때문입니다. 부모의 마음에 늘 불안과 짜증, 장래에 대한 염려, 재물에 대한 근심,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오는 불안과 불만족함 등이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지 못하고, 그런 편하지 않은 마음은 자녀들에게 충분히 복을 베풀 수 있는 마음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오히려 자녀를 화풀이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밖에서 예의바르게 살아야 하는 현실이 자녀들에게 자기 감정을 쏟아놓게 합니다. 이런 성숙하지 못한 모습으로 인해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복을 받지 못합니다.

결국 우리의 믿음의 문제입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우리가 진정한 기쁨을 회복하지 못하면 우리는 결국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참된 기쁨과 은혜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믿음이 우리의 삶에 결국 가장 궁극적인 영향을 줍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 중 하나는 바로 자녀에게 복을 베푸는 것이란 점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를 격려하며, 자녀에게 복을 베푸십시다. 넉넉한 마음으로 복을 선언하십시오.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사람들은 항상 자녀들에게 그렇게 복을 베풀었습니다. 그들이 자녀들에게 복을 베푼 것을 묵상하십시오. 그들이라고 어려운 점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그런 중에도 자녀에게 복을 베풀었고, 자녀를 가르쳤고, 자녀를 사랑했습니다. 자녀는 하니님께서 우리이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며, 자녀를 가르치는 것은 부모에게 주신 최고의 사명이며,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의 상속자입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가정,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넘치는 가정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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