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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4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청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 사양했습니다.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종이 돌아와서 주인에게 그대로 고했습니다. 집 주인이 진노하면서 그 종에게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다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종이 주인의 명대로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주인이 다시 명했습니다.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그리고 말하기를 전에 청함 받았다가 거절한 사람들은 하나도 잔치 자리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23절의 ‘강권하여’라는 말은 ‘팔을 비틀어서라도’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의 의지가 담긴 구원의 역사를 드러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인간 구원 의지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또 얼마나 강한 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옛 언약에 실패하자, 다시 당신의 자녀들에게 새 언약을 주셨습니다. 이 언약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언약입니다. 이 언약의 요지는 예레미야 31장 31-34절 말씀에 나옵니다. 이 말씀을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본문 8장 8-12절까지 인용합니다. 이 말씀이 오늘 본문의 핵심 키입니다.

말씀의 요지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통해 구원의 길, 새로운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인간 구원 의지가 실제로 드러난 가장 강력한 사건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사건입니다. ‘큰 잔치 비유’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성부 하나님의 인간 구원 의지에 대해 보여주신 비유입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보여주신 구원의 의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날 밤 제자들과 나눈 최후의 만찬에서 친히 주신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20).

옛 언약은 돌에 새겨서 만든 언약이었지만, 새 언약은 그들의 마음에 기록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의 죽음을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시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3장 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점은 이것입니다. 출애굽기 24장에서 모세를 통해 옛 언약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실 때 백성들은 한 목소리로 이렇게 응답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3절) 이것이 옛 언약의 특징입니다.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이것은 백성들이 의지적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지를 표현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살겠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새 언약의 특징이 그 반대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두 번째 다시 주시는 새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의지를 7번이나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내가 하리라 (I Will Do)’ 는 말씀이었습니다.
8절, “내가 새 언약을 맺으리라”
10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10절,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될 것이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될 것이다”
11절, “내가 나를 그들 모두에게 나타내겠다”
11절,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 것이다”
12절,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길 것이다”
12절, “내가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할 것이다”

출애굽기 24장에서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가고, 다짐하지만, 새 언약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짐하시고, 하나님의 의지를 드러내십니다. 이것이 바로 누가복음 14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의 초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간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팔을 비틀어서라도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의지를 가지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당신의 법을 새겨놓으심으로 우리가 실패하지 않고 주님을 따라 오도록 하셨다. 십자가 사랑의 사건으로 주도적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이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새 언약에 실제적으로 인간에게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누가복음 15장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의 사랑으로 보여줍니다. 한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돌아온 유산을 달라고 아버지에게 요청해서 자기 몫을 받아서 타향으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작은 아들은 모든 돈을 탕진하고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로도 배를 채울 수 없는 상황에 이릅니다. 이 때 그는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집에는 먹을 것이 넉넉하고, 품꾼조차도 굶주리지 않고 있음을 기억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아버지 집을 그리워합니다.

이 때 그는 “스스로 돌이켜”(17절) 아버지께로 가기로 작정합니다. 억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가는 것입니다. 작은 아들은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옵니다. 선한 의지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사랑으로 인한 아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협박하지 않았고, 강제로 어떤 규율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집을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 아버지는 너무도 무능력한 모습으로 비칠 만큼 아들에게 아무 강제력도 동원하지 못하십니다.

하지만 아들은 결국 아버지를 기억하고 돌아옵니다. 무엇이 그를 돌아오게 했을까요? 그것이 바로 그의 마음에 넣어놓으신 새 언약입니다.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이었습니다. 아들이 요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언약은 아버지가 일방적으로 맺으신 언약이었습니다. 우리의 동의를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본래 헬라어로 언약이라는 말로 사용하는 단어는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디아데케이고, 다른 하나는 ‘순데케’입니다. ‘순데케’는 대등한 관계에서 맺는 언약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디아데케’()는 일방적인 계약입니다. 그래서 ‘디아데케’의 본래 의미는 유언장이라는 뜻입니다. 유언은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습니다. 유언은 무조건 그 효력을 발생합니다. 누구도 유언장의 내용을 바꾸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맺은 새 언약은 바로 ‘디아데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언약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집을 나간 아들은 자신의 마음에, 아버지가 넣어 놓으신 언약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는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이키는 것은 억지가 아닙니다. 힘든 것도 아니며, 억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원함이었습니다. 스스로 돌이켰습니다. 아들의 마음에는 아버지께로 돌아가려는 선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어디에서 이런 선한 의지가 있었을까요? 그것은 아버지를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 집이 얼마나 풍족한지 그는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돌이킴은 기쁨이었고, 자원함이었고, 감사였습니다. 그는 아버지께로 돌아간다고 해서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 할 소리, 못할 소리 다 하고 나왔는데, 정말 염치 없이 어떻게 되돌아 갈까? 그런 생각 하지 않았습니다. 형은 자신을 어떻게 볼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든지 스스로 하는 것은 힘든 것이 아닙니다. 자원함으로 하는 것은 비록 죽음의 자리도 어렵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불 속에 있는 자식을 구원할 때 불의 뜨거움을 상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원함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원함으로 하는 것은 비록 죽음의 자리라고 하더라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문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새 언약의 요지는 “내가 새 언약을 맺으리라”는 것이다. 그분이 주도적으로 맺으신 언약이며, 이것은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하나님의 새 언약은 우리로 하여금 자원하는 마음과 기쁨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 속에 넣어준 사랑의 언약, 십자가의 사랑이 인간으로 하여금 자원함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옛 언약은 무조건 그 언약을 지켜야 하지만, 신약에서 주시는 새 언약은 그 언약을 지킬 수 있는 힘까지도 함께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맺은 언약을 따라 주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다시 자원함과 기쁨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복음의 비밀입니다.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눅10장)를 우리를 잘 압니다. 사마리아 사람이 길을 지나가다가 제사장과 레위인도 그냥 지나친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줍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그 사람을 돕는 것은 그의 책임도 아니고, 의무도 아닙니다. 그는 그 일을 그야말로 자원함으로 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하면서 왜 내가 이런 어려운 일을 해야 하는가 하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사람을 만나면서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사람이 걸렸는가 하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의 자원함이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그의 기쁨이었습니다. 강도 만난 자가 자신의 도움으로 생명을 구하고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그는 곤혹스러움과 불편함이 아니라 오히려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렸을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체험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주님 앞에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이런 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는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의도적이고 의지적인 사랑이 가장 잘 드러난 사건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주심으로 인간을 사랑한다는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 줍니다. 십자가에 담겨진 의미는 너무도 심오하고, 깊습니다. 아무리 묵상하고 생각하고 연구해도 그 십자가의 신비는 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묵상하십시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십자가를 좇으십시오. 십자가에서 삶의 원리를 찾고, 십자가에서 삶의 지혜를 구하고, 십자가에서 삶의 은혜를 얻으십시오. 십자가를 알면 삶이 담대해 지고, 능력을 얻습니다. 십자가 안에 거할 때 비로소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참된 길을 찾게 됩니다.

둘째, 천국을 소망하십시오. 천국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최종적인 상급입니다. 천국은 새 언약에 주는 최고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는 새 언약은 모두 천국에서 누릴 것의 그림자입니다. 우리가 천국을 소망할 때 우리는 진짜로 하나님의 새 언약, 디아데케를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이었지만, 그 안에 참된 인간의 자원함과 기쁨과 능력을 경험하게 하는 그 은혜의 최종적인 경험은 천국에서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소망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 땅에서 우리가 어떤 것으로 우리의 신앙을 포장해도 그것은 가짜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소망하십시오. 천국에 대한 소망이 나에게 얼마나 확실하게 있는지를 점검함으로 내 신앙의 현주소를 확인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넣어주신 새 언약으로 우리 안에 참 소망과 자원함과 기쁨을 누리는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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