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샬롯츠빌한인교회

주일설교

조회 수 4702 추천 수 36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문제에 직면하기
오후 3시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을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미문 앞에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구걸을 했습니다. 오늘도 이런 경험은 종종 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보통 얼른 동전을 넣고 지나가곤 합니다. 구걸을 하는 사람에게 더 가까이 가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불편한 일입니다. 그런데 두 사도는 그들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보라’고 말했습니다. 개인적인 관심을 가지고 눈을 마주쳤습니다. 그의 필요를 살폈습니다. 앉은뱅이의 문제를 정면으로 봅니다.

현대 사회은 매우 개인주의화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설령 좋은 의도로라도 조심해야 합니다. 또한 불편한 일이기도 합니다. 서로 적당하게 알고 지내는 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면에서 2,000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두 사도는 구걸하는 앉은뱅이에게 다가갑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모습입니다. 문제를 정면에서 보는 것입니다. 피하지 않습니다. 문제를 문제로 볼 수 있는 것, 그것이 교회가 서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교회는 문제를 숨기지 않습니다. 피하지 않습니다. 기도와 말씀이 문제를 도피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문제의 정체
그러면 구걸하는 이 사람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의 문제는 ‘나면서 앉은뱅이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구걸을 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의 문제는 태생적인 것이었습니다.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뛰어본 적도 없습니다. 걷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모릅니다.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운명에 지배당하고 살아갑니다. 더 큰 문제는 걷는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설령 누군가가 걸어보라고 해도 그는 걸으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구걸하는 삶이 그에게 가장 자연스럽고 익숙한 삶입니다. 본문의 사건은 너무도 빠르게 이루어진 것이기에 거부할 시간조차도 없었는지 모르지만, 초대교회는 그 모든 것을 한순간 넘어설만큼 강력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들도 대부분 이런 태생적 한계에 부딪쳤을 때 거부합니다. 안 되는 쪽으로만 생각합니다. 마치 앉은뱅이가 일어서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믿습니다.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능력을 누립니다. 죄로 인해 죽은 인생, 그래서 태생적 한계에 눌려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인간의 삶에서 그 태생적 한계들이 깨어지는 것을 경험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의 삶입니다. 구걸하는 앉은뱅이는 아무리 많은 돈을 구걸해서 모아도 앉은뱅이입니다. 우리는 세워져야 할 우리 인생의 어떤 영역들이 세워지기보다는 다른 것들로 보상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못하는 남편이 돈으로 그 사랑을 보상하려고 하는 것은 여전히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의 삶과 같습니다. 자녀의 삶에 깊이 관심을 가져주지 못하면서 그 대신 돈으로 보상하려는 것도 역시 여전히 앉은뱅이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가 아무리 많은 돈을 구걸해서 모아도 그는 여전히 앉은뱅이입니다.

문제해결하기
사도들은 그런 문제 속에 갇혀 있는 앉은뱅이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6절).’ 은과 금,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이 두 가지는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문제입니다. 교회는 금과 은을 잡을 것인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오늘날 밖에서 볼 때 교회는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중세시대 교회가 가장 큰 힘과 권위, 부를 누리던 때였습니다. 세상의 왕조차도 교회의 권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었던 때였습니다. 어느 화려한 교회에 그 교회 사제와 수도승이 함께 걷고 있었습니다. 사제가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베드로처럼 ‘우리에게 은과 금은 없지만’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자 수도승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제님. 그런데 오늘의 교회는 사도 베드로처럼 ‘은과 금은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고도 말할 수 없게 ‰營윱求

List of Articles
번호 일자 설교 제목 성경
668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19-23) 2007. 2. 4 주일예배
667 2015-06-28 주병열 목사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디모데전서 1:12-17
666 나를 수렁에서 건지소서(시29:13-28) 2007. 12. 9 주일예배
»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행3:1-10) 2009. 6. 7 주일예배
664 나사렛 사람 예수 (마2:13-23) 2013. 12. 22 성탄축하주일예배
663 2016-06-12 주병열 목사 나아만이 치유 받다 (Naaman was Cured) 열왕기하 5장
662 2021-07-25 주병열 목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file 시편 17:1-15
661 나의 달려갈 길(행20:17-27) 2009. 7. 26 주일예배
660 나의 소망이신 주님(시 39:1-13) 2007. 8. 19 주일예배
659 2022-01-09 주병열 목사 나의 영광은 무엇입니까? (온라인 실시간 예배) file 누가복음 2:21-33
658 2022-04-10 주병열 목사 나의 왕은 누구입니까? (온라인 실시간 예배) 마태복음 21:15-19
657 나의 평안을 주노라(요14:27-31) 2010. 7. 4 주일예배
656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 마음으로 따르라 (수14:6-15) 2013. 7. 28 주일예배(이필립목사)
655 나의 환난, 곧 너희의 영광 (엡3:1-6,13) 2013. 1. 20 주일예배
654 2016-01-17 주병열 목사 남의 유익을 구하라 (Seek the Good of Others) file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8:1-14, 10:23-24
653 남편에게 복종하라 (엡5:22-24) 2013. 5. 12 어버이주일예배
652 낮과 같이 행하라(롬13:11-14) 2006. 10. 22 주일예배
651 2023-08-27 주병열 목사 낮선 곳으로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창세기Genesis 12:1-3
650 2021-04-25 주병열 목사 내 백성을 보내라 file 출애굽기 5:1-9, 6:1
649 내 백성이 내 이름을 알리라 (사52:1-12) 2011. 12. 11 대강절 세 번째 주일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41 Next
/ 41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