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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락방 강화 중에서도 마지막 부분입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기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23, 24, 26절 세 번에 걸쳐 기도에 대해 말씀하셨고, 그 후에 나오는 담대함과 승리에 대한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무엇으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23절하).” 기도 응답에 대한 약속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시면서 주시는 가장 중요한 약속입니다. 기도의 특권을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하려고 할 때 우리의 마음을 주저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에 대한 조건입니다. “그를 향햐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5:14).” 이 말씀은 합당한 말씀이지만, 논리적 문제를 가져옵니다. 만약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면 그것은 구하지 않아도 이루어질 것이며, 만약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으면 구해도 응답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고민 속에서 기도를 하면서도 자신있게 기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말씀(요일5:14)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주신 주님의 말씀과 상황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주님은 다락방 강화을 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놀라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부활만으로 그들이 그들의 삶의 목적을 깨달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고기잡으러 간 제자들과 고향으로 돌아간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삶의 목적을 깨달은 것은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을 받은 후였습니다. 성령을 받고 그들은 예루살렘 거리로 나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출발한 초대 교회는 놀라운 생기와 생명력을 얻었습니다. 하루에 3,000명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고, 제사장 무리가 주님께 함께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뭔가 말할 수 없는 역동성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이어진 것만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세상의 세력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스데반을 죽로 죽였고, 이로 인하여 사도들을 제외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사울이라는 청년은 교회를 잔멸할 생각을 가지고 각 집을 다니며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넣었습니다.

이 때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런 생각을 했을 지 모릅니다.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일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옥에 갇히고 죽음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만약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께서 이런 상황에 개입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 이것은 당연한 생각이 아니겠습니까?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면 뭔가 일이 잘 풀려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의 본문은 바로 이 시점에서 읽혀져야 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23절하).”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여기서 그의 뜻대로 구하라는 조건은 기도의 무용성을 말씀하기 위함이 아니라, 위와 같은 환난 가운데 하나님을 뜻을 구하며 복음을 전하는 이들로 하여금 기도하도록 격려하는 의미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즉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주 역동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을 전제하거나 기대하면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 능력이 사라진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토론을 위해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위기와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구했고, 만약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당장이라도 바뀌어야지! 하는 마음을 지닌 자들의 기도였습니다. 기도란 무엇입니까?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계획과 섭리가 소심하고 두려움에 빠진 제자들을 통해서 기도 가운데 성취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그냥 거기에 그친다면 그것은 갖난아이의 신앙일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역동적인 생명의 역사를 행하신다는 뜻입니다. 삶이 변화되고 가치관이 바뀌며 삶의 열정이 살아나고, 복음을 전하며, 교회와 이웃을 위하여 헌신하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믿는 게 아닙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일하시기 시작하셨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크든 작든, 오래 걸리든 짧게 걸리든 무슨 일인가는 일어나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고난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부조화를 경험하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바로 우리의 영적 무기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항상 하도록 명령받은 것이면서, 또한 우리가 항상 사용할 수 있는 영적 무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잘 할 수 있는 재능들을 하나 이상 주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혹은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잘 하도록 하셨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겠습니까?” “나는 무엇을 잘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위해 계획을 가지셨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계획을 가지셨다는 뜻은 우리가 원치도 않는 일을 무조건 몰아가신다는 뜻이 아니라, 그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도록 하셨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일을 위해 기도하다 보면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합니다. “아! 내 인생에 하나님께서 이것을 원하시는구나!”

여기서 사명의 수동성과 능동성이 있습니다. 사명의 수동성이란 이 사명이 내가 하고 싶어 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내가 결정해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것이 마리아의 계획이 아니었듯이 말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려고 계획한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겠다고 한 것이 아니고, 모세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할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모든 사명은 다 수동적 순종의 결과입니다. 그것은 결코 내가 하려고 하거나,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사명에는 또한 능동성이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어 한 것이 아니지만, 그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중에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며, 어떤 면에서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그 일을 하도록 나를 만드셨기 때문에 그 일이 나에게 가장 소중한 일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서 미치도록 헌신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그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일에 대해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것보다 더 사랑하고 열정을 갖게 됩니다.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목사가 소명을 받고 목사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마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즉 제가 목사가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명확하게 말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런 면에서 소명은 수동적입니다. 하지만 소명을 받은 결과 저는 대학 학부부터 신학교를 갔습니다. 그것은 소명을 받은 저에게 빨리 신학교를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싶은 저의 열정이었습니다.

우리교회에 부임한 지 만 6년이 되었습니다. 올 때는 분명 우리교회로 저를 부르셨다는 사인을 받고 왔습니다. 하지만 저의 사역 계획은 최소한 3년 이상은 섬긴다는 것만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으로 곧 돌아갈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새 6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나님의 수동적 부르심은 저에게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셨고, 6년의 세월을 감당하도록 열정과 사랑의 마음을 주셨음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지나고 나서 볼 때 하나님께서는 제가 우리교회에 오기 전부터 저의 사역의 과정을 인도하셨고, 또 사역 중에도 당신의 계획을 가지고 저를 통해 일하셨음을 깨닫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저로서는 제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대한 수동적 응답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일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저로 하여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기도하게 하셨고, 사랑하게 하셨고, 때로는 아프게도 하셨으며, 절망하게도 하셨고, 또 다시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사명이 나의 것이 되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며, 가장 선한 것이 되도록 인도하고 계심을 깨달아 가게 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남겨 두시고 십자가를 지신 후 아버지께로 가셨습니다. 예수는 그 대신 기도의 특권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제자들 앞에는 엄청난 핍박과 환난이 놓여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어쩌면 동일한 모습으로 서 있을 지 모릅니다. 내가 지고 가야 할 짐은 여전히 많고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의 특권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첫 번째 기도는, “하나님! 나를 왜 이곳으로 보내셨습니까?”하는 기도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능력을 맛볼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자리가 하나님이 보낸 자리라는 고백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능력을 달라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 자리가 어떤 의미, 어떤 목적을 가졌는지 모르는데, 마음의 평안을 무엇을 위하여 구하는 것이며, 관계의 성숙함을 왜 구하는 것입니까? 물질은 어디에 쓰려고 구하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발견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내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 그것을 알기 전까지 그 다음 단계의 기도는 어쩌면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기도를 위해서 우리는 주님 앞에 한참 더 머물러 있어야 하며,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기도는 첫 번째 기도가 응답된 후에 가능할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을 지나치게 불변의 원칙처럼 여기는 것은 마음의 부담이 너무 클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순서는 그러해야 함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기도는 사명을 깨달은 사람이 그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이 너무도 확실한데, 하나님의 뜻이 너무도 확실한데,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는 고난이 있습니다. 아픔이 있습니다. 복음 전파의 장애가 있습니다. 하나님! 장애물을 걷어주시고,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소서, 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담대함과 용기를 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준비해 놓으시고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그 계획에 참여하고 그 은혜를 받아들이는 수동적 응답과, 그것을 향한 열정과 기쁨을 누리며 헌신하는 능동적 헌신이 성도님들의 삶 가운데 충만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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