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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 왕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때로는 앗수르와의 타협을 시도하기도 하고, 때로는 애굽을 의지하려고 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지속적으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라고 도전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만이 사는 길이라고 계속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더 위기로 치달아갔습니다. 남 유다의 대부분의 도시들은 이미 점령되었고, 이제는 앗수르 군사들이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이제 끝가지 갔습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살기 위해서라면, 한 사람이라도 살리려면 항복해야 합니다. 왕은 백성들의 생명을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랍사게라는 앗수르의 군대장관이 예루살렘 성 가까이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유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말라고, 히스기야의 말을 믿지 말라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다 앗수르 군사에 의해 점령되고 있는데, 히스기야는 계속해서 너희들을 향해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실 것이다’고 하는 미혹에 넘어가지 말라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히스기야 왕은 얼마나 초조하고 불안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의외의 반응을 합니다.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1절)” 히스기야 왕은 이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로 나갑ㄴㅣㄷ. 군사적전 회의를 하지도 않고, 항복하거나 항전을 결정하는 모임도 갖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사야 선지자에게 현재의 상황을 알리는 일도 신하들을 보냅니다. 그리고 본인은 하나님의 전으로 나갑니다. 그는 타협의 길도, 도망갈 길을 찾지도 않고 다만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길일 수 있습니다. 이사야 36장 13절 이하와 37장 8절 이하를 보십시오. 랍사게와 산헤립이 보낸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으면 그들의 말이 얼마나 일리가 있는 말인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세상에 어떤 나라가 앗수르의 공격에서 살아남았는가 하는 말입니다. 한번 주변을 보라. 시대를 보라. 지금 살 길이 어디 있는지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냥 기도만 하고 있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며, 어리석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나가 기도합니다. 옷을 찢고 베옷을 입고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 산헤립이 보낸 편지를 펼쳐 놓고 기도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기도합니다. 그 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보라 내가 내 신을 그 속에 두리니 그가 풍성(뜬 소문)을 듣고 자기 본토로 돌아갈 것이고, 거기서 칼에 죽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십니다. 히스기야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도 전적으로 책임을 지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얼마나 기도할까요? 우리의 기도를 잘 살펴보면 우리의 기도는 기도 자체가 타락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히스기야는 삶과 죽음을 주님께 맡기고, 도피와 항복의 길을 포기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많은 경우 이미 도피할 결정을 해 놓고, 좋은 도피의 길을 보여달라고 기도하거나, 아니면 항복하기로 작정한 후 항복 후 좋은 결과를 허락해 달라는 식으로 기도하곤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너무도 타협적이라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다른 모든 살 길을 포기하는 기도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사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만약 히스기야가 도망을 가려고 시도하고 있거나, 혹은 항복 문서를 작성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교회에 나오면 그리스도인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고 구원의 확신이 있으면 그리스도인일까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확신을 너무 남용하거나 오용했습니다.

부모 없이 길에서 자란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를 불쌍히 여긴 어떤 독지가가 이 아이를 데려다가 씻기고 먹이고 교육시키고 자신의 호적에 이름을 올려 양자로 삼았습니다. 그는 이제 새 부모를 만난 것입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깔끔한 옷과 예의바른 언행과 절제된 삶을 배웁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에게 맞지 않습니다. 여전히 전처럼 동네 다니면서 이것 저것 얻어 먹는 것이 더 좋고 익숙하며 편합니다. 그래서 집에서 엄마가 해 주는 밥보다 밖에서 얻어 먹는 것을 즐깁니다. 그렇다면 이 아이를 그 집의 자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호적에 올렸으니 자식은 자식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식의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래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마치 그렇게 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도 세상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구걸하고 얻어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구걸을 합니다. 당당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다른 사람들의 인정에 두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께 나의 삶을 위해 담대하게 구하지 못합니다. 히스기야처럼 죽음의 위기에 있을 때 당신이 내 아버지이신데, 나를 살려 달라고 그렇게 자신있게 나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까? 우리는 진정으로 믿는 성도입니까? 삶의 문제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자녀처럼 반응합니까?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 앞에 기도의 무릎을 꿇습니까? 얼마나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고백하고 살아갑니까? 삶이 어렵다고 모두들 아우성치지만, 히스기야처럼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단판을 짓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요즘처럼 어려운 세상에 삶이 어렵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도하는 것으로 그의 삶이 힘든지를 가름한다면 우리 가운데 어려운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어려워도 하나님께 나가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배가 고프고 허기져도 동네 이집 저집 다니면서 얻어먹고 구걸하는 아이와 다를바 없는 모습입니다.

성도가 기도하면 할수록 단순해 집니다. 어떤 문제든 단순하게 보는 눈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답이 보입니다. 거기에 능력이 있습니다. 하짐나 기도하지 않으면 모든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말도 많고 길도 많고 이론도 많습니다. 머리는 복잡해지지만 실상 길은 열리지 않습니다.

삶의 문제로 힘들고 어렵지 않습니까? 불평과 불만의 소리가 우리의 입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 불평과 불만의 에너지를 기도에 쏟으십시오. 불안과 초조, 염려와 두려움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기도가 부담이 되고 기도가 없는 교회를 어떻게 교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하지 않는 교회가 잘 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잘못 가고 있느 것이기 때문입니다.

8-13절은 앗수르 왕 산헤립이 구스 왕 디르하가가 공격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본래 진지였던 라기스를 떠나 립나로 가서 애굽 정복의 교두보를 확보하는 상황입니다. 립나로 떠나면서 산헤립은 히스기야 왕에게 협박편지를 써서 보냅니다. 이 상황을 자세히 보면 히스가야와 산헤립이 서 있는 자리가 보입니다. 히스기야는 지금 공격을 받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이미 자신이 갈 길을 정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결판을 내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는 죽어도 거기서 죽고 살아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 것입니다. 그러나 산헤립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애굽의 등장으로 서서히 초조해지고 있습니다. 결국 붕괴의 길을 걷고 있는 산헤립의 초기 증상이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함녀서도 히스기야처럼 살기보다는 오히려 산헤립처럼 사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수단을 다 사용합니다. 힘을 구합니다. 파워를 갖고 싶어 합니다. 불안과 두려움의 자리에서 견고한 반석되시는 하나님께로 나가는 히스기야를 보십시오. 우리에게 기도가 얼마나 놀라운 능력이 되는지 보여줍니다. 기도합시다. 어렵다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힘들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나가지 않는다면 결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자리가 어렵고 고난의 자리라면 그 자리에서 기도하십시오. 문제가 있으시다면 하나님께 나가십시오. 일이 잘 안풀린다면 단순하게 그 분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개입하도록 지금 하던 일을 중단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승리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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