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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로마서 12장으로부터 주시는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12장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중요한 원리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각 지체입니다. 우리가 교회의 각 지체라는 말씀은 우리의 삶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함축적으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지체는 경쟁관계가 아니라 협력관계입니다. 한 지체가 잘 되면 다른 지체도 잘 됩니다. 하지만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다른 지체도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지체의 원리입니다.

로마서 12장은 성도의 삶에 대해 많은 것들을 말씀해 주십니다. 서로 사랑할 것, 악을 미워할 것,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길 것, 손 대접하기를 힘쓸 것,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 것,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위의 원리 안에 다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명심한다면 우리는 그 이하의 명령들을 훨씬 더 잘 수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 대해 동의하지 않거나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리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도 헛된 수고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렇게 인사합시다. "우리는 서로 지체입니다."

로마서 13장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국가에 대한 기독교인의 삶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국가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1절의 말씀에 있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왜냐하면)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즉 국가에 대한 기독교인의 자세에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만을 기름 부어 세우신 것이 아니라 이방 나라의 왕까지도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10장 5절에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로 바사 왕을 세웠다'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44장 28절에는 바사 왕 고레스는 가리켜 목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악한(세속적인) 정부까지도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본문의 내용은 위에 있는 권세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 권세에 굴복해야 한다고 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들 중에 하나는 당시 유대인들이 지나치게 반국가적 태도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반역적인 백성으로 명성이 나 있었습니다. 갈릴리는 계속적인 폭동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 중에도 열심당원이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에게는 하나님 밖에는 어떤 왕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아무에게도 조공을 바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수동적인 반항에 만족하지 않고, 폭력행위를 시작해야 하나님께서 돕기 시작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업적으로 살인과 암살을 하기로 서약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칼을 품고 다녔습니다. 로마 정부에 대해 폭력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로마 정부에 세금을 내는 유대인들의 가택을 부수고, 밭의 곡식을 불태우고, 가족을 암살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유대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성도의 시민권은 오직 하늘에 있다는 빌립보서 3장 20절의 말씀을 빙자해서 로마정부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부도덕한 로마 황제와 민중을 수탈하는 지배계층에 대한 심한 반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예수만 잘 믿고 천국만 가면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권력에 대한 생각이 지나치게 부정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지난날 35년간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도 왕의 선정이나 덕행보다는 그들의 비행이나 비사 같은 내용이 더 많이 전해 내려옴으로 말미암아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더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정치 하면 무조건 배타적이고 무시하려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어쩌면 유대인들과 우리는 비슷한 면을 참 많이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면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정치와 권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당시 유대인들, 그리고 그 영향을 다분히 받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사도 바울은 오늘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리고 이어서 그 권세를 다시 하나님에게로 연결시킵니다.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위에 있는 권세를 거스리는 자, 정권을 잡고 나라를 다스리는 이들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은 곧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두 가지 구체적인 명령을 주십니다.  첫 번째는  악한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권세자들은 악을 행한 자들에 대해 두려운 존재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선을 행하는 이에게는 선을 베푼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권세자에게 굴복하되 권세자들의 진노, 혹은 법의 형벌이 두려워서 굴복할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양심을 위하여서도 그리 하라고 말씀합니다. 즉 양심적으로 판단해도 마땅히 권세자들의 통치를 긍정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세금을 내라고 말씀합니다. 권세를 가지고 일하는 이들을 본문은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해도  결국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것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바사 왕 고레스를 목자라고 표현한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세(직접세, 조공)를 받을 자에게는 공세를 바치고, 국세(간접세, 일반적인 세금)를 받을 자에게는 국세를 바치라고 말씀합니다.

어느 시대건 국가의 법을 지키고 세금을 내는 것은 마땅한 국민의 자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임무를 감당하는 것이 바른 것임을 사도 바울은 강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그리스도인의 국가관은 상당히 강했습니다. 일제시대에 아직 기독교인들이 그리 많지 않던 상황에서도 기독교는 당시 민족운동에 앞장 섰던 것은 기독교인의 국가관이 어떤 것이었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우리의 시민권이 천국에 있다고 말하면서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임무를 소홀히 하도록 허락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말씀의 의미를 좀 더 깊이 묵상해 보기를 원합니다.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이 말씀의 근거는 창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당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자연만물을 인간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피조세계를 다스리도록 위임하셨습니다. 즉 인간에게 사명(일)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는 특권이자 의무였습니다.

이 말씀을 한 번 더 깊이 들어가 보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 세상을 긍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세상이라는 말은 크게 세 가지로 쓰입니다. 하나는 자연세계로서의 세상이고, 두 번째는 인간세상으로서의 세상이고, 세 번째는 죄의 영향을 받는 의미로서의 세상입니다. 적어도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세상의 의미는 긍정적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피조세계입니다. 자연의 세계와 인간사회의 질서는 모두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세상을 하나님은 긍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본문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것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곧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이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권세는 세상 정부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다스리도록 위임받은 권세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국가와 정부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이 권세를 잘 사용하도록 위해서 기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1-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디도서 3장 1절에서는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13절입니다.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본문 말씀의 가장 밑바닥에는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긍정이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 주의 나라로 갈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영원히 살지 않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이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고 사도 바울은 선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곳에 가기 전까지 우리는 이 땅을 잘 가꾸고 다스리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르셨습니다. 성도는 세상의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합니다. 지도자들의 통치에 굴복해야 합니다. 선거에도 참여해야 합니다. 교회가 서는 곳에 범죄율이 떨어져야 합니다. 교회가 세워진 곳에 세상이 더 밝아져야 합니다.

제가  얼마 전 부터 샬롯츠빌에 대한 부담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교회가 샬롯츠빌 이 도시에 세워졌는데, 언제까지 이방인처럼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곳에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섬기고 다스리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조금씩 샬롯츠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때때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기를 원하는 메일을 받습니다. 때로는 어떤 사람들의 방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샬롯츠빌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기관에서 일하는 분이었습니다. bill을 내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과 라이드를 제공해 주는 일,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는 비영리 단체 활동이었습니다. 우리교회도 그런 일에 참여하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후원도 좋고, 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연결시켜 주는 것도 얼마든지 환영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World Vision이라는 선교단체에서는 아프리카에 사는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선교하는 단체입니다. 그들은 한 달에30불이면 한 명이 한 달을 꿂지 않고 산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Good Spoon이라든지 Grop이라는 단체들이 우리 주변에 있어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살피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음의 부담을 가지고 지난 7월 말 당회에서는 이런 결정을 했습니다. 교회가 주일 점심식사를 할 때 그냥 먹지 말고 먹을 때마다 굶주린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단 1불이라도 나누자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런데 망설여졌습니다. 혹 그것조차도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염려되었습니다. 목사가 너무 소심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적극적인 후원과 동참하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한국에서 목회할 때는 제 마음에 호스피스에 대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호스피스란 임종환자를 돌보는 일입니다. 임종이 임박한 환자를 모시고 마지막까지 그를 돌보는 프로그램입니다. 침대 하나를 준비하면 보통 두 달 이상 살기 힘들다고 판단된 암환자를 모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고통 없이 마지막을 준비하도록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적어도 두 명 정도의 간호사와 24시간 돌아가면서 환자를 돌볼 자원봉사자가 필요합니다. 일주일에 한 사람이 3-4시간씩 돌본다고 해도 적어도 2-30명 정도의 자원자가 필요합니다. 웬만큼 많이 모이는 교회가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맡기셨습니다. 이 세상을 합법적인 권한을 받아 다스리는 권세자들에게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임과 동시에 또한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좀 더 적극적으로 섬기도록 부름 받았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섬김은 교회 안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이제 좀 더 넓은 곳을 바라보며 이웃을 바라보고, 그들을 향한 섬김의 삶을 펼쳐 나가야 합니다. 국가가 하는 선한 일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일들을 갑자기 크게 생각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관심을 모음으로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리로 나아가는 작은 발걸음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러한 삶의 자리로 초청하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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