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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광야를 거쳐 가나안까지 인도하셨습니다. 광야 40년의 여행은 엄청난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 긴 여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등의 역사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 하지만 광야를 지나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거룩함’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광야에서 거룩함을 지키는 것은 그들의 생존과 관련된 일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영적 거룩함과 육체적 정결은 별개의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양식도 필요했지만, 그보다 거룩함과 정결함에 훨씬 더 절실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수 없이 그들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십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너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19:2).”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살전4:3).”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7:1).” 거룩함이 곧 생명이고 능력입니다.

이 정의는 오늘날도 동일합니다. 성경은 거룩함에 생명과 능력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 점에 세상과 교회가 너무도 뚜렷이 다른 점입니다. 세상은 상대방을 이기고 정복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찾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처럼 거룩함을 구합니다. 광야에서는 살아남는 것초차 힘들고 어려운데 거룩함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명의 힘을 얻기 위해 거룩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함을 지키도록 진을 배치했습니다. 남자 장정만 6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12지파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한 가운데는 여호와의 회막이 있었고, 주변 사방으로 세 지파씩 동서남북으로 각각 진을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회막과 둘러 진친 12지파 가운데 레위지파가 다시 배치되었습니다. 레위인의 사명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하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레위인들의 모습은 오늘날 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일과 흡사합니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지키고 드러내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3-4장을 통해 하나님께서레위 지파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보십시오. 레위지파의 인구를 조사하고 일을 맡기십니다. 특별히 세 분파로 나뉘어집니다. 게르손 자손과 고핫 자손, 그리고 므라리 자손입니다. 이들에게 각각 각자의 일을 맡겨주십니다.

고핫 자손에게는 지성소의 지성물(거룩한 기구들)을 관리하는 일을 맡겨주셨습니다. 그 일들은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들은 지성물들을 보는 것은 허락받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보는 날에는 죽음을 당한다고 경고받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광스런 일을 하지만 항상 목숨의 위험을 느끼며 그 사명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게르손 자손은 서막 덮개와 문장, 휘장들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게르손 자손은 본래 레위지파의 장자 분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장자는 특별한 위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맡은 일은 가장 쉽거나 사소해 보이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장자로서 자부심을 잃을 수 있는 일을 감당합니다. 그들은 이 일을 하면서 정당한 동기부여를 받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세 번째 므라리 자손입니다. 그들은 장막의 널판과 기둥들, 뜰 사면의 기둥과 말뚝들을 관리하고 운반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가장 고된 일입니다. 엄청난 육체노동이 필요한 일들이었습니다. 성전의 모든 기물들을 다 무게로 환산하면 10톤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 중에 상당 부분을 므라리 자손에 감당합니다. 그들은 가장 힘든 일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종합해 보면 이들 세 분파는 모두 각각 어느 정도의 위험과 고통을 감수해야 했고, 또 특별한 동기부여 없이 섬겨야 했을지 모릅니다. 그들의 일은 매우 거룩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 안에 들어가보면 불공펴해 보이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 나에게 하필이면 이런 일을 맡기시는가?’

레위 지파의 사역에서 보여지는 어려운 부분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일살생활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결코 공평하게 대우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볼 때 그들은 내가 겪는 고통을 겪지 않고, 나에게 없는 영광을 누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레위인들은 모두 하나님께 성별된 사람들이지만, 동일한 위치에서 동일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레위 지파에 속한 세 분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전체의 그림을 봐야만 했습니다. 전체를 보지 못하는 순간 그들은 늘 그들 자신의 처지와 상황으로 인해 실망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섬김은 하나 하나 모아져서 전체 이스라엘 공동체에 거룩함을 유지하게 하고, 그 거룩함으로 결국 광야를 통과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들 자신에게 집중할 때 그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일들로 인해 실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문제는 이스라엘 민족을 ‘하난의 신앙공동체’로 볼 수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이 점은 오늘날 교회에서도 동일합니다.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씀합니다. 교회를 하나의 몸처럼 느끼고 섬길 때 교회는 바르게 세워집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섬기는 이들도 참 기쁨과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한 몸입니다. 성도들 개인도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느끼고 고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일 중에 하나는 서로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이렇게 말하면 저 사람은 어떻게 반응할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합니다. 먼저 계산된 언어와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시 돌아올 반응으로 인해 받을 상처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은 이런 일들을 너무도 잘 압니다. 상대방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그의 가슴에 있는 가시가 내 몸을 찌릅니다. 그 가시는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파괴적입니다. 때로는 고핫 자손이 겪어야 했던 생명의 위험을 감당해야 하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나 하고 동기부여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또 때로는 자기만 이 고되고 힘든 일을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매우 계산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매우 정치적인 역학관계 속에서 행동합니다. 신앙적이라고 하기 보다는 매우 정치적일 수 있습니다. 저는 목사인 저 자신을 통해 그런 모습을 때때로 발견하면서 놀라기도 합니다. 교회는 광야를 통과하는 이스라엘 공동체와 같은 성격을 지녔습니다. 운명공동체이고, 생명의 공동체입니다. 함께 이 광야의 삶을 이겨 나가야 합니다. 어느 한 사람, 한 분파으 ㅣ힘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 주셨습니다. 함께 거룩함을 지킬 때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 우리는 때때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감당해야 했던 것과 같은 짐을 져야 합니다.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서로 사랑하면서 겪어야 하는 생명의 위험, 동기부여의 부재, 가장 고된 노동의 수고와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짐들을 지는 것이 싫어서 적당한 거리에서 관계의 성숙 없이 살아가는 것은 결코 우리 믿음의 성숙도, 승리도 없을 것입니다. 그 짐을 지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그 아픔을 기꺼이 감당하려고 하는 마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런 교회로 더 많이 자라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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