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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란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구속의 사건을 뜻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복음이 우리의 일상적 사고와 반대된다는 점입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면서, 복음이라는 말과, 복음에 대한 설명을 많이 들어서 비교적 복음이라는 말에 친숙하지만, 그 복음이 적용되고 이해되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복음은 늘 우리에게 낯설기도 하고, 또한 놀라움을 갖게 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구약의 복음”입니다. 우리는 구약 성경은 율법을 선포했다고 이해하지만, 사실 하나님은 율법 이전에 구원의 역사를 행하셨고, 그 구원의 역사 안에는 복음의 깊은 은혜가 흐르고 있습니다.

모압 여인 룻

룻은 이방 여인이고, 모압 여인입니다. 오늘의 시각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꼭 이스라엘만 사랑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누구든 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약 성경의 맥락에서 볼 때 이런 말은 자격 없는 여인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전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룻은 태생 자체부터 이스라엘에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룻의 삶을 통해 복음의 모형을 보여줍니다. 그는 이방 여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를 비춰주는 그림자 역할을 합니다.

룻이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갈 수 있게 한 가장 중요한 동기는 무엇이었습니까? 무엇이 룻으로 하여금 그런 결정을 하게 했을까요? 무엇이 룻으로 하여금 세상의 영광, 명예, 성공을 바라보지 않고 시어머니 나오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베들레헴으로 달려가게 했을까요?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좇아 베들레헴으로 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시어머니 나오미 때문이었습니다. 1장 8절에 보면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한다”

여기서 말하는 ‘선대’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헤세드(hesed)’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변함 없는 사랑, 인자하심을 의미합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헬라어 ‘아가페(agape)’로 표현했습니다.

룻은 나오미를 헤세드의 사랑으로 사랑했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를 매우 안타까워했고, 긍휼히 여겼습니다. 불쌍히 여겼습니다. 룻의 그런 마음이 그로 하여금 나오미를 따라가게 했습니다.

또한 1장 16절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의 되시리니” 이것이 룻의 마음이었습니다. 이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 때문에 어머니를 섬기겠다는 말이 아니라 어머니 때문에 어머니의 하나님도 섬기겠다는 뜻입니다. 그의 고백 안에 어머니에 대한 간절함과 안타까움이 묻어나 있습니다. 룻은 자기 필요 때문에 나오미를 좇아간 것이 아니라, 나오미의 필요 때문에 그를 좇아갔습니다.

즉 그는 안해도 되는 일을 한 것이고, 가지 않아도 되는 길을 간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오리를 가자고 하는 이에게 십리를 함께 동행해 주고, 겉옷을 달라고 하는 자에게 속옷까지 준 것입니다. 과외의 것을 하고, 과외의 것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헤세드의 사랑입니다. 놀랍게도 룻은 이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산 룻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본문은 자세히 보여줍니다. 또한 이 말씀은 우리가 복음의 삶을 살아갈 때 우리에게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줍니다.


1. 우리가 복음적 원리를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풍성한 은혜를 준비해 놓으십니다(1절).

1절입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2장은 먼저 보아스를 소개하면서 시작합니다. 사실 문맥을 잘 살펴보면 1절은 어색합니다. 굳이 1절에 이런 언급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4절이 되면 보아스는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성경은 이런 경우 대개 이런 인물을 먼저 언급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독자들이 과연 이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가슴 조아며 보게 유도합니다. 하지만 룻기 2장에서는 보아스의 존재를 먼저 언급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룻을 위해 아주 훌륭한 한 사람을 이미 준비해 놓으셨음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갔을 때 보아스는 이미 거기에 있었습니다.

물론 룻은 아직까지 보아스의 존재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시고, 성경을 읽는 독자들에게 보아스의 존재를 먼저 알려줍니다. 룻기서는 룻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 말씀을 보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가 성취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패를 슬쩍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룻이 어떻게 되는지 잘 봐!’ 멋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유머입니다.

우리는 룻을 위해 보아스를 준비하신 하나님을 보면서 우리의 장래를 위해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자기 인생의 무대에 서 있는 룻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지만 청중들은 우리들에게는 보아스의 존재를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도 여전히 우리 인생의 앞길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준비하셨는지 볼 수 없지만, 분명히 귀하고 풍성한 은혜를 준비하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첫 번째 말씀입니다.


2. 우리가 복음적 원리를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룻으로 하여금 새로운 일을 기대하게 하십니다(2-3절).

2-3절을 보면, 룻이 나오미에게 밖에 나가서 이삭을 줍겠다고 합니다. 룻이 시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밭에 가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의 밭에 이르게 됩니다. 본문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경 이해가 조금 더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사회는 율법에 의해(레19:9-10, 23:22, 민24:19-22) 추수를 할 때는 밭의 네 모퉁이에 있는 보리는 베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몫으로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것 외에도 많은 규정들이 있습니다. 떨어진 이삭은 줍지 못하게 되어있었고, 보리 단을 묶어 놓았는데, 미처 잊어버리고 가지고 가지 못한 단은 다시 와서 가지고 가지 못하게 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포도원 농사를 지을 때도 땅에 떨어진 것은 줍지 못하게 되어 있고, 가난한 자들이 와서 가져 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 일종의 사회보장제도였습니다. 이런 제도를 통해 가난한 자들이 살아가도록 배려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런 제도가 제대로 시행된 적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선지자들이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런 악함을 책망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이 시점이 추수를 시작할 때라는 것입니다(1:22). 부자들이 추수를 하고 난 후 가난한 사람들이 뒤따라가서 이삭을 주울 수는 있었지만, 그렇더라도 추수가 완전히 끝난 후에 이삭을 줍도록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실 이 시점은 룻이 이삭을 주우러 갈 시점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룻이 이삭을 주우러 나갔습니다. 그리고 나오미는 룻을 그냥 보냈습니다. 아마도 매우 어려운 시기였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추수 초기이기 때문에 아마도 이전의 양식은 다 떨어졌을 때일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율법적 규정을 초월하는 어떤 것이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룻은 실제로 나가서 아주 많은 곡식을 주워 왔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룻이 그런 기대를 가지고 갔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만약 룻이 자기 신세 한탄이나 하고 있었다면 그는 시기만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룻은 나갔습니다.

룻을 나가게 한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새로운 일에 대한 기대감입니다. 뭔가 나가면 될 것 같은 마음입니다.
소망입니다. 때도 아니고, 자기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남들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받지도 못할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나가면 뭔가 얻을 것 같은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룻으로 하여금 어떤 기대감을 갖게 하시고,         그로 하여금 길이 아닌 곳을 향해 걷게 하십니다. 그리고 놀라운 결과를 얻게 하시고, 그로 인해 엄청 큰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리고 또한 이 일로 인해 또 다른 일을 이어가게 하십니다.

이사야 43장 19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이 은혜의 길, 이 복음의 길을 걷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을 기대하게 하시고, 그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길을 가면서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하나씩 하나씩 새롭게 세우시는 은혜입니다. 이런 은혜를 맛보시기 바랍니다.


3. 우리가 복음적 원리를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룻으로 하여금 인내와 열심을 갖게 하십니다(5-7절).

룻은 보아스의 밭에 이른 아침에 가서 보아스가 올 때까지 거기 있었습니다. 문맥으로 봐서는 이삭을 줍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학자들은 조금 달리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실 룻은 아직 이삭을 줍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번역이 조금 잘못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환이 보아스에게 룻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면 룻은 아주 열심히 이삭을 줍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설령 룻이 아직 이삭을 줍지 않고 있었다고 하면 그는 아침 일찍 와서 오랜 시간동안 그냥 보리 추수하는 밭에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룻의 아주 신실한 인내와 열심을 보여줍니다. 만약 한나절 내내 이삭을 줍지 못하고 그곳에 서 있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만약 이삭을 줍지 못하면서 서 있었다면 그것은 율법적으로 아직은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 서 있을 수 있을만큼 인내와 열심을 가진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기대하는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그 기대를 가지고 그는 열심과 인내를 가지고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혹은 열심히 이삭을 주울 수 있었습니다.



오늘 주보 사이에 봉사 자원표를 나눠드렸습니다. 성가대와 찬양팀, 청소, 라이드 베이비싯 등, 교회를 섬길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주를 섬길 때 느끼는 것은 시간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간 있어도 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일상에서 꼭 해야 할 일들임에도 불구하고 삶의 의욕과 동기부여가 일어나지 않아 움직이지 못합니다. 이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불행한 일입니다.

룻은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조차도 새로운 일을 기대하고, 인내와 열심을 가지고 보리 추수하는 밭으로 나아갔습니다. 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갔고, 인내함으로 기다렸고,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새로운 일을 기대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삶의 장애물 앞에서 기다리고 인내하며 열심을 다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세상을 이기는 은혜를 가득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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