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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매우 신비로운 책입니다. 40여 명의 사람들을 통해서 1,600년 동안 쓰여진 66권의 책이 하나로 묶어져서 우리 손에 들려져 있습니다. 율법과 역사, 시, 편지, 예언서 등 다양한 문체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통해 기록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저자는 오직 한 분 성령이심을 성경은 말씀합니다(딤후3:16, 벧후1:21 등).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목적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15절).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을 구원을 주시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과학서적이거나 철학서적처럼 접근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1. 성경은 과학 서적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성경이 매우 과학적임을 증명하려고 노력합니다. 성경에서 과학적인 상당한 근거를 찾으면 좋아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과학서적이 아닙니다. 과학적인 지식을 주기 위해서 주신 책도 아납니다. 물론 이 말은 성경이 비과학적이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은 과학에 대한 상당한 증거들을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욥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 것도 없는 곳에 매다셨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이 말씀은 지구가 둥글다는 의미를 줍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6세기인데, 성경은 지금부터 4000년 전 욥기를 통해 지구가 허공에 매달려 있음을 말씀할만큼 과학적 힌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분은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 안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세상의 신비가 드러납니다. 하지만 성경은 과학적인 지식을 주시기 위한 책이 아님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2. 성경은 철학서적이 아닙니다.

성경은 철학적인 주제를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말씀합니다. 욥기의 주제는 인간이 당하는 고난과 악의 문제를 다룹니다. 철학은 이런 문제에 대해 답을 찾으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질문에 대해 명쾌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욥기를 보면 욥이 이 두 가지 문제로 인해 고통하지만, 결국 그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한 채 하나님의 임재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를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42:5-6). 성경은 인간의 고통과 악의 출처에 대한 끝없는 탐구(질문)에 대해 침묵합니다. 성경은 이런 철학적인 질문에 대해 침묵합니다.



성경의 목적 – 인간의 구원

성경에 우리에게 말씀하는 주된 관심은 인간 구원의 문제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비참한 상태로 떨어졌으며, 그로 인해 구원 받아야 할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죽음과 고통, 악의 문제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구원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이 말을 거꾸로 뒤집어 보면, 인간은 과거 타락하기 이전의 상태에 있었음을 반증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인간이 본래 서 있어야 할, 그 높고 영광스런 지위를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영원한 생명, 의롭다 함을 입은 하늘의 시민이 되는 것이 성경의 관심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분석의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과정에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십니다. 16절을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지혜에 의해 분석당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를 분석하고, 꿰뚫어보고, 책망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때때로 우리를 격려하기도 하고, 눈물로 회개하게 하시며, 절망하게도 하시며, 다시 일어서게 하십니다.

우리는 말씀 위에 설 수 없습니다. 말씀이 우리 위에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지지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성경을 분석하려고 합니다. 성경을 증명하려고 하고, 성경은 틀림없이 맞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창조과학회라는 것이 있습니다. 창조과학회는 성경, 특히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의 역사를 설명하고, 이를 통해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하는 단체입니다. 이 단체에는 매우 훌륭한 많은 과학자들이 섬기고 있습니다. 창조과학회는 좋은 사역을 합니다. 이 사역을 통해 사람들이 더욱 믿음을 굳게 해 주는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볼 것은         창조과학회의 전제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역사,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세상의 창조에 대해 창세기에 나오는 7일 창조에 대한 역사를 우리의 지혜, 우리의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서 출발한 것입니다. 이점에서 우리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우리의 지혜로 이해하고 증명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시작하면, 과연 그렇게 증명된 천지 창조의 역사에서 하나님을 찾아볼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인간의 지혜로 헤아려질 수 있다고 한다면 그 능력, 그 지혜가 어떻게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창세기 1-2장의 창조에 관한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엄청난 역사를 보여줍니다. 당시 고대 팔레스틴 주변에는 여러 창조 설화가 있었지만, 성경에 나오는 창조에 대한 말씀만큼 단순하면서도 질서있고, 일관성과 목적성을 가진 것은 없습니다. 창세기의 창조 말씀은 우리에게 엄청난 감동과 인간의 목적에 대한 너무도 분명하고 명쾌한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순간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께서 본래 주시려고 했던 그 의도에서의 말씀을 들을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지혜에 의해 가늠되고 평가되고 인정받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가르치시고, 교훈하시며 책망하시고, 의로 교육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보고 인도하시는 것이지, 우리가 그분의 하나님 됨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나에게 말하게 해야 한다.

우리가 성경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결혼 초 1년 간 부부 간의 갈등과 다툼이 적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부부가 그렇다고 하지만, 저희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마음이 힘들어서 아침 먹고 집을 나갔습니다. 더 이상 갈 수 없을 때까지 가고 보니 강원도 동해시였습니다. 시간은 새벽 1시였습니다. 여름이었기 때문에 잠시 차 안에서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4시 30분이었습니다. 눈을 비비고 인근에 있는 교회에 가서 새벽예배에 참석하고, 다시 서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신학교 졸업반이었고, 이제 곧 전임 사역자가 될 것이고, 목사 안수도 받게 될 것인데,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가던 길을 돌아가든지, 아니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저의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때 많이 저의 마음을 두드렸던 말씀 중의 하나가 이 말씀이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을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이 말씀은 저에게 이렇게 다가왔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장가를 든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내 목숨을 당신을 위하여 영원히 드리기로, 그리고 그렇게 드리다가 대속물로, 그냥 제물로 버려진다고 해도 그것이 내 인생의 목적임을 기억하고 살겠노라.”

그렇다고 제가 지금 가정에서 잘하는 남편은 결코 아닙니다. 제가 지금 고정적으로 가정에서 하는 유일한 섬김은 겨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설거지를 해 주는 정도입니다.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이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는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을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는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가는 어쩌면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이 저의 삶에 말을 걸어왔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저에게 삶의 변화를 촉구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제가 그 말씀에 반응했을 때 저의 삶, 저의 가정의 삶은 변화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증명하고, 그 말씀에 대한 신학적인 깊은 지식을 안다고 해도, 그 말씀이 나에게 걸어오는 말씀을 듣지 못한다면, 그 말씀이 나에 대해서 침묵한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처음 우리 귀에, 우리 마음에 들려올 때 우리 자신이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거나 판단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닌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우리는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원리, 시대의 흐름을 좇아 사는데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말씀을 잘 순종하는 자라고 착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말씀이 나를 분석하도록 하십시오. 말씀이 나를 교훈하고, 나를 책망하고, 나를 가르치고, 나를 의로 교육하게 하십시오. 구역공부나 성경공부를 하면 항상 가르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려고 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가로막힙니다. 말씀을 스스로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를 책망하고 바로 서게 해야 하고, 그 말씀 앞에 내가 변화되는 모습을 보일 때 그것을 보는 사람이 함께 주의 말씀을 받습니다.



성경의 궁극적인 목적

성경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17절). 성경은 우리 자신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온전하게 하기 위해 주신 말씀입니다. 성경은 과학서적이나 철학서적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해하고 섭렵할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2월 27일부터 우리교회에서 제자훈련을 시작합니다. 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하고 나누고 그 앞에 엎드리는 은혜가 일어나기를 소망하며 시작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경을 섭렵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성경 말씀이 우리를 완전히 다스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성경이 우리의 전 인생을 통치하시고, 우리의 삶을 온전케 하시는 역사를 소망합니다. 이런 은혜가 늘 충만하고, 제자훈련 새신자반에 참여함으로 더하여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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