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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8).” 사도행전은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로 사도들을 통해 땅 끝까지 교회를 세워가는 과정을 그려줍니다. 땅 끝까지 하나님의 통치가 이를 것에 대해서는 이미 구약성경에서도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경배하리니(시편22:27).” 즉 주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을 품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이 비전은 제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제자들은 이 소망을 가지고 기대와 소망에 부풀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막상 주님의 그런 복음 전파의 명령에 초대교회는 잘 응답하지 못했습니다. 초대교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 장년만해도 5,000명이 넘는 수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 어느 누구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들이 먼저 가야할 곳은 사마리아였습니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 민족과는 같은 민족이면서도 다른 민족입니다. 사마리아인은 절반만 유대인의 피가 흐르는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주전 10세기 말 남쪽의 유다와 분열되어 다른 길을 갔습니다. 주전 722년 앗수르의 점령으로 타 민족과 섞여서 혼혈민족이 되었습니다. 주전 535년 유다 민족이 페르시아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건축할 때 사마리아 인들은 함께 참여하기를 원했지만, 유다인들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주전 4세기 사미리아인들은 그리심산에 성전을 건축했고, 모세 오경만을 성경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 당시가 되었을 때 유대 민족은 사마리아에는 땅도 밟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초대교회가 먼저 가야 할 곳은 사마리아였습니다. 초대교회는 오천 명이 넘는 수로 성장했지만, 누구도 복음을 들고 예루살렘을 넘어서 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비전이 있다고 다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명이 있다고 다 순종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다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아주 교묘하게 하나님의 명령을 피해갑니다.

그런데 이런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1절)이 일어났습니다.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이 첫 번째 순교는 예루살렘 교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다 예루살렘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히 여겼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교회를 아예 잔멸하기 위해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겼다고(3절) 합니다. 사울을 비롯한 유대 종교인들은 초대교회에 대한 대대적인 핍박을 시작했고, 이런 분위기에서 교회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했습니다.

사람들은 각지로 흩어지고, 그들 중에 빌립이라는 집사도 사마리아로 가서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무리들이 빌립의 전하는 말씀을 듣고 표적을 보며 한 마음으로 빌립을 좇았다고 합니다. 귀신이 떠나고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낫고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큰 핍박’은 ‘큰 기쁨’으로 바뀌었습니ㅏㄷ.

벵겔 주석에 의하면 ‘바람이 불길을 더 크게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마귀는 초대교회를 잔멸하려고 핍박을 가했습니다. 스데반을 순교하게 하고,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다 예루살렘을 떠나게 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불길은 사마리아와 다메섹, 이방 세계로 번져갔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역사를 엄청나게 확장시켰습니다.

이처럼 고난은 하나님의 역사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초대교회에 불어닥친 고난은 사마리아와 이방 세계를 향해 엄청난 복음의 불길이 번져가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고난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갖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더 크고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가십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2:3)”고 했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벧전4:13).”고 했습니다. 시편 119편 71절에서는 “고난 당한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고 했습니다. 고난의 유익을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고난의 유익은 무엇입니까? 첫째,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목표를 바르게 보도록 합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 속에서 진정한 인생의 목적을 발견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루살렘 교회에 닥친 큰 핍박과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사마리아와 이방인을 향해 땅 끝까지 나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참여합니다. 1,000년 동안 묵은 깨어진 관계가 예기치 않은 고난을 통해 뚫려지고 회복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질병에 걸려서 인생의 종말을 생각하게 되면 진지해지고, 참으로 중요한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되는 것 같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삶을 정리하면서 그동안 미워하고 원망했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풀고 용서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고서야 비로서 인생을 조용히 그리고 편안하게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확실히 고난은 우리에게 삶의 목적을 바르게 보게 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교회와 성도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본래의 목적에 집중하도록 하십니다. 우리에게 닥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더 크신, 더 궁극적인 인생의 목적을 찾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두 번째로 고난은 교회와 성도를 더욱 강하게 합니다. 두려움이 없게 합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고난을 통해 연단되었습니다. 고난을 통해 정금 같이 나왔습니다. 고난을 저주가 아닙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룹니다.

본문의 빌립은 예루살렘의 핍박으로 인해 사마리아 성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시몬이라는 마술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그를 청종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칭하였다고 합니다. 2세기 중반에 사마리아 출신의 저스틴 마터는 시몬을 권능있는 마술을 행하고, 신으로 간주되었으며, 거의 모든 사마리아인들에게 의해서뿐만 아니라 로마 사람들에 의해서도 동상에 세워지고 숭배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들어가서 빌립은 복음을 전하고, 시몬조차도 그 복음을 듣고 믿고 세레를 받았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에 임한 고난은 성도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떠나 각처에서 복음을 전하는 담대함과 강함을 갖게 했습니다. 고난을 확실히 교회와 성도를 강하게 합니다. 두려움이 없게 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기도 하지만, 그 고난을 통해 담대함과 용기를 주십니다. 이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세 번째, 고난은 경게를 넘어서게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사마리아는 천 년의 세월 동안 쌓여진 불편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나라가 분열되고, 혼혈민족이 되어 순수한 유대인의 피를 잃어버렸고, 함께 성전을 짓자는 제안을 모질게 거절했고, 결국 별도의 성전을 지었으며, 모세오경만을 믿었던 사마리아인들을 유대인들은 상종할 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그들은 사마리아 인의 땅은 발로 밟지도 않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초대교회 성도들은 비록 주님께서 사마리아에서도 복음의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셨지만, 그들은 그곳으로 발걸음을 띨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 세월 금이 가 있었던 이 장벽이 예루살렘의 초대교회에 임한 고난으로 인해 한 순간 무너졌습니다. 오 천 명이 넘는 성도로 성장한 초대교회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넘어선 것은 그곳에 있었던 고난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한계를 뛰어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고난을 통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고난은 참으로 만나고 싶지 않은 불청객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더 큰 뜻과 목적을 우리로 인해 이루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 것입니다. 고난을 부끄러워 하지도 말라고 말씀합니다.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고난 중에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고난은 목표를 바르게 보게 합니다 고난은 성도를 더욱 강하게 합니다. 그리고 경계를 뛰어넘게 합니다. 그러므로 곤나 중에도 마음의 평안을 가져야 합니다. 고난 중에도 믿음의 초점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을 통과하고 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더 놀랍고 아름답게 인도하시고 복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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