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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은 피신 몰리토 파텔이며 가명으로 파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16살 인도소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인도 폰디체리에서 동물원을 운영했었습니다. 여러 가지 형편상 파이의 가정은 동물원을 처분하고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운영하면서 지니고 있던 동물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처분했습니다. 대부분의 동물들을 미국으로 보냅니다. 그들은 동물들을 실은 화물선을 같이 타고 태평양을 건너 카나다라는 먼 나라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태평양 한 가운데서 폭풍우를 만나 배가 난파되었습니다. 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파이와 동물 몇 마리만 살아남아서 구명보트에 올랐습니다. 그 동물들은 얼룩말과 하이에나 그리고 호랑이었습니다. 구명보트에 오른 16살 소년 파이와 동물들, 이들은 함께 공생할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끝없는 바다 위, 좁은 배 안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동물들끼리 먹고 먹히는 싸움을 벌였습니다. 결국 하이에나가 얼룩말을 잡아먹고, 호랑이는 하이에나를 잡아먹었습니다. 이제 파이와 호랑이만 남았습니다.

파이는 새로운 세상의 꿈을 품고 떠났지만, 하루아침에 부모 형제와 모든 걸 잃어버렸습니다. 파이 소년이 가진 것은 같이 자랐으나 맹수인 호랑이 한 마리와 작은 구명보트뿐이었습니다. 하이애나를 잡아먹고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굶주려가는 호랑이를 보면서, 결국 다음 차례는 자신이라고 파이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파이는 다시 두려움이 빠져갑니다. 이 내용은 1977년 6월에 있었던 실제의 사건에 근거해서 쓴 ‘파이 이야기’라는 소설입니다. 파이는 7개월 동안 작은 구명보트에 호랑이와 함께 견뎌냅니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구명보트에 있는 돛으로 뗏목을 만들어서 배에 달아 타고 갔습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다시 배에 올라와서 비상식량으로 준비해 놓은 것을 먹어야 했습니다. 리처드 파커라는 이름을 가진 호랑이와 눈이 마주칠 때면 그는 죽음의 기운을 느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생존의 방법을 터득해 갔습니다.

낚시를 해서 호랑이의 먹이를 해결해 줍니다. 동물원에서 배운 대로 호랑이를 제압하고 길들이기를 시작합니다. 언제라도 호랑이의 먹이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호랑이와 자신의 영역을 분명히 하고, 그 앞에서 위엄을 보이려고 애를 씁니다. 또한 그는 매일 정한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는 장난으로 호랑이에게 먹이를 주지 않았습니다. 호랑이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곧 자신의 생명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호랑이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진정한 구원, 즉 이 구명보트에서의 구원이었습니다. 파이는 살기 위해서 하루 24시간 내내 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잠을 안 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자고 있는 때조차도 생명의 위협 가운데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살기 위해 그는 자신의 동작 하나하나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연구해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실화를 소설화한 이 이야기를 보면서 제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이라는 소년은 7개월 동안 태평양 한 가운데서 호랑이와 함께 한 구명보트에서 살면서 한 순간도 정신을 놓지 않았습니다. 리처드 파커라는 이 호랑이의 움직임에 집중했습니다. 그의 반응을 세심하게 살폈습니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 했습니다. 그가 필요한 것을 주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생명을 빼앗지 못하도록 항상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그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몸부림치는가 생각해 봤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벧전5:8)’고 말씀합니다. 우리 앞에 있는 대적 마귀를 똑바로 보고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생명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큰 비극이라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면서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거나 의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기도하면서도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예배를 통해 거는 기대가 없다는 것입니다. 삶에 초점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삶의 집중력을 잃어버렸습니다.

파이가 살기 위해 한 일은 낚시를 해서 호랑이를 먹이면서 길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낚시에 성공해서 큰 고기를 잡아서 호랑이에게로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만 너무 높이 던져서 호랑이 머리 위로 날아가 바다에 떨어졌습니다. 호랑이가 파이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시선을 보면서 파이가 느낀 두려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파이는 한 번의 실수에 자신의 생명이 걸린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부르는 찬송과,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 앞에, 그리고 나의 삶에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한다면 우리의 믿음의 행위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봉독하는 말씀, 목사를 통해 들려지는 설교가 나의 삶에 아무런 능력도 영향도 주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소망 없는 삶이 되고 맙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에게 영생을 준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더 신중해져야 합니다. 아무렇게나 예배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의미 없이 이곳에 앉아있을 여유가 우리에겐 없습니다. 그냥 습관적으로 양심의 작은 가책이나 피하고 싶어서 앉아있는 것은 아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암몬과 아람 나라 연합군과의 전쟁에 나가기 전에 백성들과 다윗이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면서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입니다. 암몬이라는 나라가 이스라엘을 배반했습니다. 다윗이 보낸 사신을 무례하게 대우해서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옷을 다 잘라서 몸이 다 드러나 보이도록 하고, 수염을 잘라서 의도적으로 부끄러움을 주려고 해서 되돌려 보냈습니다. 다윗이 전쟁을 할 것은 당연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암몬은 아람 나라와 연합군을 형성했습니다. 결코 만만치 않은 대군을 준비해서 다윗의 군대를 기다렸습니다.

다윗과 그의 군사들이 이 전쟁에 출전합니다. 아람과 암몬 연합군은 다윗의 군사들이 감당하기에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이 전쟁을 위해 그들은 먼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백성들이 이렇게 기도합니다.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기를” 기도했습니다. 다윗의 전쟁참전은 죽음의 가능성을 언제나 두고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이 기도는 그들의 생명이 달린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기도는 편안함을 위해 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생명을 위해 기도했고, 승리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승리를 주시기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편안을 구합니다.

하나님 앞에 물질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명예를 구할 수도 있습니다. 높은 직위를 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구하는 목적이 편안함을 위해 구하는 것이라면 그 기도는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께서 들어주셔도 그것은 자신에게 덕이 되거나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다윗의 기도의 초점은 생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승리였습니다. 그는 전쟁터로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기 백성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놓고 전쟁터로 나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구합니다. ‘하나님이여, 나의 생명을 지켜주소서. 내가 주의 나라를 위해 생명을 내어놓고 나갑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승리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편안하게 잘 살면서 살다가 주님 나라 가기를 기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주를 위해 살다가 열매를 맺고 영광스럽게 주님 나라에 입성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열심히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잠언서 6장 6-11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성도는 부지런해야 합니다. 자기의 전문분야에서도 그렇고, 또 주를 섬기는 일에서도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전 사실 시간을 잘 지키는 편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샬롯츠빌에 와서 몇 번 실수를 했습니다. 이상하게 시간을 계산하고 가면 늦고 또 늦습니다. 얼마나 미안하고 죄송했는지 모릅니다. 저와 약속하고 제가 시간을 지키지 못해 마음 상하셨던 분, 그런 마음이 있다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면서 시간을 안 지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게으름입니다. 복 받을 일은 분명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진정으로 이 일이 하나님 앞에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섬기는 일, 하나하나를 소중하고 귀하게 섬겨야 합니다. 시간을 지키는 일에서부터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쏟아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곧 승리의 비결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3절을 보면 백성들이 다윗을 위해 이렇게 기도합니다.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하노라.”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제사를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을 때,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만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가인에게 있어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갖게 했습니다. 그리고 가인은 결국 아벨을 죽였습니다. 예배의 실패가 불행을 가져왔습니다. 사울 왕도 전쟁을 앞두고 자기가 성급하게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것은 결국 사울 왕이 하나님을 떠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배의 실패는 삶의 질서를 파괴합니다. 예배의 실패는 내적 평안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예배의 실패는 불안과 염려, 그리고 두려움을 가져오고, 결국 인생의 실패자가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에 출전하는 다윗을 위해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시여, 다윗의 소제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다윗의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한다.’고 기도합니다.

우리 인생의 성패가 바로 예배에 달려있습니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의 방향을 찾고, 목적을 찾는 시간입니다. 예배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하나님과의 약속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하나님을 자신의 일상적인 일들 뒤로 밀려나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우리 자신의 삶 최고의 자리에 계시게 하십시오. 그것이 곧 우리 삶의 진정한 회복의 길입니다.


7절입니다.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저들은 자신들의 전차부대와 말들을 의지합니다. 더 많은 전력이 승리를 가져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여호와를 의지함이 곧 승리라고 말씀합니다. 놀랍게도 성경은 역사 속에서 그것을 증명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견고한 여리고 성을 함락할 때는 성 주변을 매일 도는 것으로 성을 함락시켰지만, 그 옆에 있는 작은 아이 성은 우세한 전력으로도 함락시키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다윗의 시대까지 주변 지역의 나라들보다 군사력이 결코 우세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군사 장비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언제나 그들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또한 히스기야 시대에는 엄청난 군사력을 동원해서 쳐들어오는 앗수르 군대를 놓고 히스기야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와 함께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하는 자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인하여 안심하니라(대하32:8).”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앗수르는 물러갔습니다.

하지만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서 이스라엘도 드디어 군사대국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왕궁을 호위하는 군사들로 하여금 금으로 된 방패를 사용할 만큼 엄청난 부와 군사력을 보유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죽자 이스라엘은 두 나라로 나눠지는 결과를 맞이했습니다.

우리의 승리는 결코 군사력이나 우리의 힘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보여줍니다. 다윗과 백성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8절). “저희는 굽어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왕은(에게) 응락하소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소망하는 다윗을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와여 구원하소서.’ 전쟁터로 향하는 다윗과 그의 군사들은 군사훈련을 하는 것보다, 군사력을 키우고 늘리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 서서 ‘여호와여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곧 그들에게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그런 믿음으로 그들은 승리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며 ‘여호와여 구원하소서.’ 라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승리, 생명력 있는 삶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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