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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크시티의 대형 시장 그늘진 한 구석에 인디언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양파 스무 줄을 놓고 장사하고 있었습니다. 한 미국인이 다가와 물었습니다. “양파 한 줄에 얼맙니까?” “10센트입니다.”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두 줄에는 얼맙니까?” “20센트입니다.” “세 줄에는요?” “30센트입니다.” 그러자 미국인이 말했습니다. “별로 깎아 주시는 게 없군요. 25센트 어떻습니까?” “안됩니다.” “스무 줄을 다 사면 얼맙니까?” 미국인이 물었습니다. “스무 줄 전부는 팔 수 없습니다.” “왜 못 파신다는 겁니까? 양파 팔러 나오신 것 아닙니까?” 미국인이 물었습니다. 그러자 인디언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니오. 나는 지금 인생을 살러 여기 나와 있는 거요. 나는 이 시장을 사랑합니다. 북적대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서라피(멕시코 남자가 어깨에 걸치는 모포)를 사랑한다오. 햇빛을 사랑하고 흔들리는 종려나무를 사랑한다오. 친구들이 다가와 인사를 건네요 ---- 자기 아이들이며 농작물 얘기 하는 것을 사랑한다오. 그것이 내 삶이오. 바로 그걸 위해 하루 종일 여기 앉아 양파 스무 줄을 파는 거요. 한 사람한테 몽땅 팔면 내 하루는 그걸로 끝이오. 사랑하는 내 삶을 잃어버리는 것이오. 그래서 다 팔 수는 없소.”

만약 양파 20개를 파는 것이 그날 그의 삶의 목적이었다면 그는 몽땅 미국인에게 팔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인생은 그 미국인에게 종속되는 것입니다. 즉 그 미국인에 의해서 그는 기쁠 수 있고, 그 미국인으로 인해 횡재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다음 날도 그는 또 다른 미국인을 기다릴 것입니다. 그의 인생에 기쁨과 감격을 줄 사람을 찾고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미국인이 나타날 때마다 그는 자신의 기쁨과 인생의 목적을 구걸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인디언 노인에게 삶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기쁨은 그 미국인에게 종속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쁨의 원천은 놀랍게도 양파 20개를 파는데 있지 않고, 양파를 팔면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따뜻한 햇볕을 사랑하고, 흔들리는 종려나무를 바라보면서 산들거리는 바람을 피부로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그 노인의 인생의 주인은 그 자신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매일 매일 매상을 보면서 웃고 울어야 하는 비즈니스 현장에 있습니다. 저가 쓰러지지 않으면 내가 쓰러지는 혹독한 경쟁구도로 짜여 진 직장에서 살아갑니다. 학위를 얻기 위해 피나는 공부의 현장에서 교수의 기대치에 닿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으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혹은 자녀에게 한껏 기대를 가지고 자녀가 가져오는 성적표에 기쁨과 삶의 목적을 다 걸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양파 한 줄씩 팔면서 양파 사가는 사람과 사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기쁜 일이 있었으면 함께 웃어 주고, 힘들어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 고객이라면, 그의 등을 한 번 두드려 주면서 힘을 내라고, 내가 덤으로 하나 더 주겠다고, 집에 가서 가족들과 따뜻한 저녁을 먹으면서 기쁨을 회복하라고 할 만한 여유가 있습니까?

이 노인과 보통의 사람들과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그 노인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아갑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합니다. 하지만 내일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내일은 언제나 내일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사실을 잘 압니다.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언제나 오늘이 있을 뿐입니다. 오늘을 누릴 수 없는 사람은 내일도 누리지 못합니다.

오스 기니스(Os Guinness)라는 사람은 ‘소명’이라는 책에서 인류역사상 현대사회는 ‘목적을 위해 살기가 가장 어려운 시대’라고 표현했습니다. 현대사회는 모든 영역에서 선택과 변화의 기회를 최대로 제공하고 있지만, 그리고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목적을 성취하며 살 수 있다는 기대감을 한층 더 높여주지만, 실제의 삶에서는 오히려 더 큰 무지와 혼동과 갈증만이 더 증폭되고 있습니다. 왜 현대사회가 선택과 변화의 기회가 전보다 더 많이 주어지고,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더 많이 줌에도 불구하고, 더 큰 무지와 혼동이 오는 것입니까? 여기에 굉장히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목적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인생의 목적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목적은 주어지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목적은 내가 태어나면서 그 누군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며, 또한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나에게 그 목적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인디언 노인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그 노인이 지닌 인생의 목적이란 시장 통에 북적대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고, 햇볕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흔들리는 종려나무를 보면서, 살 곁을 스쳐가는 바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그 모든 것들이 이 노인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것들은 그냥 그곳에 있는 것입니다. 아침이 되면 사람들이 시장 통으로 몰려옵니다. 때가 되면 바람이 불어 줍니다. 그 바람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어 줍니다. 햇볕이 따뜻하게 내려주는 것은 이 노인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노인은 그것을 그냥 누리고 즐기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그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감사하게 하고 기쁘게 합니다.

소명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고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소명은 내가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입니다. 이 소명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인생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이 인생의 정체성을 줍니다. 이 정체성이 분명하면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노인이 양파의 판매량에 따라 기쁘거나 슬프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습니다. 율법의 요약이 십계명입니다. 십계명 서두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출20:2).”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서 있는 삶의 자리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선택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들에게 출애굽의 꿈을 주셨습니다. 열 가지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즐거워합니다. 해방의 감격을 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라.’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삶의 소명이며,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광야를 거쳐 가나안에 들어왔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했습니다. 아직 완전히 끝난 정복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을 날이 되었습니다. 죽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지도자들을 모아놓고 모세를 통해 받은 계명을 백성들에게 다시 부탁합니다. 14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만 섬기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인생의 목적입니다. 본문을 24절까지 보면 ‘섬기다’는 단어가 14번이나 나옵니다. 여호와를 섬김이 오늘의 주제이며 인생의 목적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인생의 목적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결코 우리 자신이 우리 인생의 목적을 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발견할 뿐입니다. 인디언 노인이 시장 통에 나가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산들거리는 바람을 느낄 수 있었으며, 따뜻한 햇볕이 있었던 것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셨다는 말은 항상 어려움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홍해 앞에서 주눅들어하고, 이젠 다 죽었구나 하고 죽음의 공포에 떨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물이 없어 사흘이나 물을 마시지 못할 때는 정말 온 무리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위험에도 직면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물이 없어 죽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폭동으로 다 죽어버릴 것 같은 위기도 겪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언제나 그들 가운데,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그 하나님을 느꼈습니다. 그 하나님으로 인해 그들의 인생이 풍요로움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들 인생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수퍼볼을 보기 위해 친구들 모임에 갔다 온 딸이 초인종을 누르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모임 어땠니?’라는 아빠의 물음에 ‘좋았어요.’라고 대답하지만, 왠지 슬픔에 잠겨있는 듯한 딸의 모습을 아빠가 알아차렸습니다. 아빠가 딸을 감싸 주면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딸아이는 눈물부터 흘리면서 말합니다. “학교 애들이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아요.” 아빠가 말합니다. “그렇지 않을 거야. 널 좋아하는 애들도 많잖니.” “아니예요. 그렇지 않아요.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아요. 어쩌다 말을 해도 내가 불쌍하니까 그저 한 마디 해주는 거예요.” 아이의 이런 말을 듣고 있는 엄마 아빠의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잠시 후 딸의 눈에서 눈물이 그치자 아빠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거절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합니다. 고향에서도, 친구들과 가족들도 예수님을 따돌렸습니다. 때로는 예수님을 미쳤다고 잡아가려고까지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 중에 한 부분은 바로 ‘거절당하심’이라는 사실을 딸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학교에서 당한 거절을 통해 딸은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절의 정도야 예수님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미약했지만, 어쨌든 딸은 그것을 통해 이 땅에서 당하신 주님의 고난과 아픔, 외로움과 슬픔을 좀 더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만약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이였다면 결코 배우지 못했을 교훈을 배운 것입니다. 이 말이 딸에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어서 딸을 욕조에 않게 하고, 기독교 작가인 아버지는 딸에게 자신이 거절당한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썼는데, 출판사에서 “선생님의 글은 우리 회사 출판 계획과 맞지 않습니다. 다른 출판사를 통해 좋을 결과 있기 바랍니다.” 라는 거절의 답장이 받습니다. 그 때 느끼는 거절의 아픔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런 답장을 받을 때, 아빠는 이런 생각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도대체 그 사람들이 내 글의 일부라도 읽어보고 결정한 거야. 원고 안에 정말 소중한 말이 얼마나 많은데....’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거절당하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오랜 세월 직업 작가로 지내 왔는데도 그런 일이 아직도 상처가 되고 있다고 들려주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딸은 힘을 얻었습니다. 그녀는 욕조에서 나오면서 이렇게 아빠에게 말합니다. “아빠, 오늘 밤은 평생 잊지 못할 가장 소중한 추억이 될 거예요.”

딸은 예수님의 거절당함의 경험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거절당하는 경험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와 같은 경험을 했음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이 자기와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분이 나의 마음과 나의 언어를 완전하게 이해하심을 경험합니다. 나의 아픔을 그 분도 느끼십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합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견합니다. 자기 인생의 목적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기쁨을 회복했습니다. 오늘밤이 내 인생에 평생 잊지 못할 가장 소중한 추억이 될 거라고 말하게 됩니다. 완전한 자기발견입니다.

본문 14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 여호와만 섬기라.” 왜 여호와를 섬겨야 합니까? 왜 여호와만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까? 그 분 안에 들어가면 나를 발견합니다. 내 인생의 목적을 발견합니다. 그 분을 섬길 때 그 안에서 내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됩니다. 그 분이 지금만이 아니라 실은 전에도 나와 함께 있으셨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창세전에 나를 택정하셨다고 고백하기까지 합니다. 그 분 안에 들어가면 내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을 발견합니다. 겉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 전에는 알지 못했던 사실, 우리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가 그 분 안에 있습니다. 그 은혜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이것은 양파 한 단을 더 파는 수준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 믿으면 더 높은 지위를 얻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는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먼저 회복하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우리 인생에 필요한 악세사리 정도로 취급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그런 하나님을 만날 뿐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영광과 풍성함과 은혜가 성도님들 삶 가운데 있기를 소원합니다.


15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이제 우리가 하나 더 생각할 것은 어떻게 하면 그 삶을 누릴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하면서, 이제는 그들에게 결단을 촉구합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우리가 하나님이 부르신 목적, 즉 소명을 따라 살 때, 인생이 얼마나 풍성해지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목적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양파를 파는 인디언 노인이 양파 스무 줄을 다 사겠다는 미국인의 제안에 귀가 솔깃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당장은 좋아 보이고, 좀 더 편한 길처럼 보이지만, 그러는 순간 이 노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의 기쁨을 얻게 하는 참 목적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방신은 늘 그런 순간적인 유익을 주는 것들입니다. 이방인들이 섬기는 신전에 가서 그들의 제사 행위를 보면 정말 금방 행복해질 것 같고, 금방 무엇인가 나올 것 같은 착각을 갖게 합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하나님 여호와보다 훨씬 더 육감적이고 감각적이며 가시적입니다. 농사철이 되면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섬기는 신전에 가서 신을 대신하는 제사장과 육체적 관계를 맺습니다. 그것은 생산을 의미합니다. 생명이 낳는 의식입니다. 농사를 짓고 짐승을 키우고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들은 늘 풍성한 출산이 필요했습니다. 몇 날 며칠 하늘에서 비가 오지 않습니다. 흉년의 조짐이 보입니다. 답답합니다. 그럴 때 이런 신전의식은 그들의 마음을 솔깃하게 합니다.

오늘 우리의 상황에서도 동일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유혹을 받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삶의 방법은 늘 현대적 삶의 양식에 뒤떨어진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양파 스무 줄을 동시에 팔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놓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다 팔고 또 스무 단을 가지고 와서 다시 팔게 되면, 그는 이틀분량의 인생을 하루에 살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신앙적 가치관과 삶의 방법은 늘 세상 앞에 우스개가 되고, 미련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늘 마음의 위안만을 삼기 위한 수단처럼 취급됩니다.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 많이 팔지 못해도 ‘주님의 뜻이 있을 거야’ 라고 말하는 수단이 됩니다. 즉 삶의 악세사리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현대인에게 결코 삶의 능력이나 소망이 되지 못합니다. 현대 기독교가 왜 이렇게 약할까요? 그것은 말씀이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호수아는 이점을 다시 강조합니다. 신앙에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나 오늘이나 신앙은 그냥 얻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딸아이가 아빠로부터 소중한 교훈을 받고 자기 인생의 목적을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의해 자기 인생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쁨과 소망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학교는 가야 합니다. 친구들의 태도는 여전히 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딸아이는 전에 아빠로부터 받은 그 소중한 교훈을 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절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는 순간 다시 옛날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다시 낙심합니다.

그래서 오늘 여호수아는 결단하라고 촉구합니다. 오직 여호와만을 섬길 것인지 아닌지를 결단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나와 나의 가족은 오직 여호와만을 섬길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결단이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들어도 삶의 자리에 나아가면, 비즈니스 현장에 고객들이 줄어들고, 회사에 가서 여전히 상존하는 경쟁의 대열에서 낙오되는 것 같고, 학업은 원하는 것만큼 성취되지 않고, 자녀는 내 기대만큼 따라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쉼을 포기합니다. 사람들과의 대화도 포기합니다. 양파 사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삶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오직 팔려나가는 양파 수만 헤아립니다. 그럴 때 다시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단하십시오. 누구를 섬길 것인지를 정하십시오. 양파 스무 줄을 다 팔라는 미국인을 만나더라도, 그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유혹은 인디언 노인으로 하여금 시장 통에 있는 사람들을 보는 여유와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산들거리는 바람을 느낄 수 없게 할 것이고, 사람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위로하고 격려하는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성도가 어떻게 삶의 목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분만이 우리 인생의 목적입니다. 주일예배는 하던 일을 중단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산들바람을 느껴보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양파 스무 줄을 다 파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양파 스무 줄을 팔면서 주님을 경험하는 삶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의 자리에 들어오신 주님을 만나십시오. 자신의 결단을 통해 주님께로 한 발 다가갈 때 주님 안에서 발견하는 놀라운 은혜와 복이 있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누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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