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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후 거의 40년이 다 차 갈 무렵 점점 요단강 동쪽, 모압평지인 싯딤까지 왔습니다. 이곳에 오는 과정에서 그들은 뜻하지 않은 땅을 얻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그들의 땅을 얻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혹해서 넘어지게 한 미디안을 정복해서 그들의 땅을 얻었습니다. 본래 가나안 땅은 요단강 서쪽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아모리와 바산을 정복하려는 계획이 없었고, 그들 땅 한 가운데로 나 있는 왕의 대로를 통과하길 원했지만, 그것을 원치 않던 그들이 먼저 나와서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땅을 얻고 나니 따라오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디나 이런 문제는 항상 따라오게 되어 있는데, 그것은 이렇게 얻은 땅을 탐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열 두 지파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 두 지파, 즉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의 족장들이 모세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요단 동쪽에서 얻은 땅을 자기들에게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정복한 땅을 돌아보니 가축을 기르기에 적당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지파들은 가축이 특별히 많아서 이 지역이 자기들이 살기에 적당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가 가축이 많았다면 그것은 아마도 아모리와 시혼, 그리고 미디안과의 전투에서 얻은 것일 확률이 많습니다. 앞 장에서 미디안과의 전투에서 얻은 가축의 수를 기록해 주는데, 그 수가 상당히 많았음을 보여줍니다. 아마도 그들은 미디안 전투에서 특별히 많은 공을 세웠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르우벤지파와 갓지파의 요청은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모세는 매우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제안이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게 사기를 떨어뜨리고 낙심케 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가나안 땅의 경계는 본래 요단 강을 기준으로 해서 서편을 의미했습니다(민34:12) 그리고 40년 전에 있었던 사건을 회상하게 합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들을 가나안에 보내 정탐하게 했는데, 그만 그들의 부정적인 보고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낙심해서 결국 20세 이상 되어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게 되었고, 또한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본문이 시작됩니다. 이토록 간절한 모세의 권면을 들은 르우벤과 갓 지파는 다시 모세에게 나아와서 새로운 제안을 했습니다. 자신들이 일단 이곳에서 부녀와 자녀들을 위해 성읍을 짓고, 가축을 위해 우리를 지은 후 다른 열 지파들보다 앞에 가서 가나안 정복 전쟁에 동참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정복전쟁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요단 동편에 땅을 얻었기 때문에 요단 서편에서는 한 평도 차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모세가 그들의 요청을 수락했고, 르우벤과 갓 지파는 다시 한 번 주의 명대로, 즉 모세가 명한 대로 할 것을 다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건강한 교회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 건강한 가정, 건강한 공동체란 어떤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온 후 상당한 고난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고난을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고, 때로는 다시 일어설 수 없을만큼 큰 고통과 위기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과 모세의 대화를 통해 보여지듯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버릴 마음까지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나온 후 얼마나 큰 위기를 거쳐서 여기까지 왔는지를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그런 고난은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위기 속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어 갔습니다. 성장해 왔고, 위기를 좀 더 지혜롭게,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해결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완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불완전한 모습 속에서도 전보다는 훨씬 더 잘 극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본문의 사건 안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봅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뜻하지 않은 땅을 얻은 후 그들은 나름대로 상당한 확신과 용기를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조금 더 있으면 하나님께서 본래 허락하신 가나안 땅을 얻게 되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지파는 이 땅을 자기 지파들에게 달라고 합니다. 지도에 보면 알 수 있지만, 이들 두 지파와 또 후에 추가된 므낫세 지파의 절반이 차지한 땅이 본래의 가나안 땅과 거의 비슷한 정도였습니다. 이 땅을 자기들은 가축이 많기 때문에 갖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다른 지파가 달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안 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 땅은 가나안 땅도 아니었고, 또 다른 열 지파는 아직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도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열 지파는 아직도 천막에서 얼마를 더 지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므낫세와 갓 지파는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에서 각각 천 명씩 뽑혀서 전쟁을 치뤄서 얻은 땅을 차지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두 지파는 성읍을 짓고, 가축을 위한 우리를 짓겠다고 합니다.

굳이 문제될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사기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엄밀하게 보면 르우벤과 갓 지파의 요구는 매우 이기적인 동기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동족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기다려도 그 땅은 남아 있을 것이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적당한 방법으로 합리적으로 나눌 수 있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르우벤과 갓 지파의 서두름으로 인해 모세의 마음도 불편했고, 이스라엘 전체에 상당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습니다. 아니 모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린다면 여호와께서 이 백성을 광야에서 버리실 수 있었습니다.
이 모습은 오늘날 교회가 때때로 당면하는 문제와 흡사합니다. 교회도 많은 문제를 직면합니다. 이런 문제를 직면하는 것은 교회만이 아닐 것입니다. 때로는 가정에서도 겪을 수 있는 문제이고, 또 어떤 소그룹이나 나름대로의 공동체에서 만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항상 나쁜 일들 때문에만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좋은 일 때문에 어떤 도전과 어려움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란 항상 문제가 있고, 또 어떤 면에서는 문제가 있어야 하기도 합니다.

        문제가 전혀 없는 교회는 문제 있는 교회입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뭔가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또 얼마나 흡수하며 소화해 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공동체는 문제가 한 번 생기면 그 문제가 점점 더 곪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그 공동체 안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당장은 문제를 보이지 않으려고 덮어 버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그 문제를 키우게 되고, 그 문제 때문에 공동체에 더 큰 상처와 아픔을 갖게 되며, 결국 생명을 잃어버리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약한 공동체는 나쁜 영향을 쉽게 받고 더욱 약해지지만, 건강한 공동체는 나쁜 바이러스를 이기고 더욱 강한 공동체로 회복되어 갑니다. 건강한 공동체는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오히려 같은 종류의 또 다른 바이러스를 더 잘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본문을 보면 다른 지파들이 르우벤과 갓 지파의 요청을 들으면서 전 같으면 불평과 불만을 했음직한데, 오히려 조용합니다. 그들의 말은 한 마디도 들리지 않습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오직 두 지파와 모세의 대화만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뒤에서 어떤 의견을 내고, 때로는 불평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입성을 막을만큼 장애물을 갖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작은 일만 있어도 무슨 큰 일이 일어난 것처럼 요란을 떠는 것은 결코 건강한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문제를 극복하는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의 모습을 봅니다. 그들에게서 적어도 다음 두 가지의 중요한 메시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랑과 용납으로 문제를 수용하는 것입니다. 열 지파는 두 지파의 우선권을 받아들입니다. 자신들의 불편을 감수합니다.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그 동안 걸어온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믿음 없이는 못 가는 길이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위기와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했던 길입니다.

그런데 이제 가나안 땅 바로 앞에까지 왔습니다. 지나온 길도 어려웠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눈 앞에 두고 가는 길은 더 초조하고 기다려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의 이런 모습은 남은 열 지파에게 더 민감하게 와 닿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온 길은 그 자체가 어렵고 힘든 길이었지만, 두 지파의 행태로 인해 열 지파는 상대적으로 더 불편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요즘은 흔히 상대적 빈곤감이라고 말합니다. 본래 부족한 것은 아닙니다.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저 사람이 가진 것을 보니 내가 부족해 보이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를 보니 왠지 내 자동차는 초라해 보이는 것입니다. 저 사람들이 얻은 땅을 보니 내가 가야 할 땅, 아직 발도 디뎌보지 못한 땅, 가나안은 아득히 먼 나라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가 바로 그런 상대적 박탈감을 특별히 많이 느끼게 되는 사회입니다. 모든 것이 노출되어 있고, 특별히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면서 대부분 사람들이 다 이런 박탈감과 빈곤감을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다같이 고난을 겪으면 괜찬습니다. 그러나 나 혼자만 겪는 것 같습니다. 나만, 그리고 내 지파만, 혹은 우리 가정만 겪는 고통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한 두 사람이 잘 나가는 것을 보면 어떻게 해서든지 힘을 모아 그를 다시 끌어내립니다. 그러면서 공평치 못하다고 말합니다. 같이 죽자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스라엘의 열 지파 사람들은 전혀 그런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결정하는대로, 지켜보고 있고, 그대로 수용합니다. 어떤 면에서 르우벤과 갓 지파는 기득권자들입니다. 먼저 얻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어떤지 아직 잘 모르지만, 그들이 얻은 땅은 매우 큰 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용납합니다. 수용합니다.


두 번째로 그들이 그럴 수 있는 이유를 살펴봅시다. 그것은 그들에게 바른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받은 땅은 가나안 땅입니다. 후에는 가나안 땅에 대한 이해가 요단 동편까지 확대되긴 했지만, 본래 가나안 땅은 요단 서쪽 땅을 의미합니다. 열 지파는 이 생각에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것을 바르게 바라보고 갔습니다. 옆에서 누가 아무리 좋은 땅을 얻고 아무리 좋은 직장을 갖고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내게는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길이 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가는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조금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보면서 갑니다. 다른 사람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게 되지만, 주님을 바라보고 가면 오히려 어떤 형편과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을 바라보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 부자는 부자대로,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에서, 학업을 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약속하신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는 순간 하나님께서 본래 주신 그 은혜를 잃어 버리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열 지파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바라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흔히 ‘공평함’이라는 잣대를 갔다 댑니다. 그러나 공평함이라는 잣대는 매우 불분명해서 흔히 일어나는 우리 주변의 일들을 바르게 재단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만 봐도 그렇습니다. 여기에 어떻게 공평이라는 자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열 지파는 두 지파의 기득권과 같은 어떤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두 지파는 이미 가족들과 가축을 위한 안정된 삶의 기반을 확보하게 됩니다. 하지만 열 지파는 앞으로도 계속 불분명한 미래를 향해 달려가야 했습니다.

한편 르우벤과 갓 두 지파의 입장에서 보십시오. 그들은 요단 동편 땅을 얻었다는 이유로 가나안 정복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쟁에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해야 했습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결코 단 시일 내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일을 감당합니다.

여기에 우리는 이스라엘이 하나의 성숙한 공동체로 세워지기 위해 사랑과 용납이 있었고, 또 바른 푯대를 찾아가는 수고가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그러기 위해 그들은 하나님께서 처음 그들을 애굽에서 부르신 부름의 목적을 찾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부르셔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 주신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거기에 걸 맞는 삶의 길과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기대해야 합니다.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 민족의 올곧은 모습처럼 우리도 살아가면서 주변에 우리의 시선을 흩트리는 많은 일들 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신실함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사는 길이며, 그것이 곧 승리하는 길입니다. 이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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