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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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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Mother’s Day(어버이 주일)입니다.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는 날입니다.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뉘시며 손발이 다닳도록 고생하시네 / 하늘아래 그무엇이 넓다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어려서 학교 다닐 때 어버이 날이면 부르던 노래가 생각납니다. 한 번 불러봅시다.

세계적인 전도자이며 사회학자인 토니 캠폴로(Tony Campolo)라는 사람의 고백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그가 살던 집은 복잡한 도시 한복판이었고, 횡단보도가 많아서 어머니는 늘 옆집에 사는 6학년 누나에게 용돈을 주고 함께 학교에 가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토니는 누나와 함께 가는 것이 창피해서 어느 날 용기를 내어 누나에게 줄 그 용돈을 자기에게 주면 혼자 걸어가겠다고 엄마에게 우겼습니다. 마참내 허락을 받고, 그는 자기 또래의 아이들보다 일찍 학교에 등교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커서 중학생이 되었을 때 그는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얼마나 독립적인 소년이었는지를 자랑했습니다. 그 때 토니의 어머니가 조용히 미소를 띠며 이런 말을 하시더랍니다. “네가 그 때 혼자 학교에 가겠다고 독립 선언을 한 후 너는 용돈도 생기고 자존심도 세워서 편했을지 모르지만, 사실 토니야, 그때부터 2년 이상 엄마는 네가 학교로 나설 때마다 몸을 숨기고 너를 따라다녔고, 네가 학교에서 귀가할 시간이면 나도 학교 모퉁이에 있다가 너를 따라 집으로 왔단다. 혹시나 네가 이 엄마가 필요할 때가 있을까 해서 말이다.” 이것이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한없는 사랑, 끊없는 사랑, 어릴 때는 그것이 귀한 줄 모르지만, 우리는 모두 그런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진자리 마른다리 갈아뉘시며 손발이 다닳도록 수고하신 부모님의 은혜로 오늘에 왔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밖에서 놀다가 손가락이나 발가락에 가시가 들어가 부어오를 때 곪지 말라고 어머님이 입으로 빨아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것이 그렇게 불편해서 그렇게 하시지 말라고 말씀드려도 극구 그렇게 하셨던 모습, 정히 하시지 말라고 하면 잠잘 때 오셔서 발가락을 빨아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동안 잊고 살았었는데, 설교 준비하다 보면 그런 생각들이 퍼득 나곤 합니다. 부모님의 은혜는 참으로 말로 다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모님을 주신 것은 참으로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본문은 우리들에게 부모님에 대해 두 가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1.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유가 없는 명령이며 최고의 가치입니다. 부모님께 순종(공경)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명제입니다. 왜? 냐고 물어서는 안 됩니다. 순종하면 무엇을 줄 것이냐고 물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며, 마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옳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항상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를 공경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면 부모님을 잘 공경할 것인가를 논할 수는 있어도 부모님을 공경해야 하느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옳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교묘하게 이런 하나님의 명령을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부모 공경에 대한 당위성을 거의 없애버렸습니다.

요즘 많이 하는 말 중에 “문제 부모는 있어도 문제 아이는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고개를 끄덕끄덕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으니라’는 말씀을 뒤집어 엎었습니다. 성경은 부모가 완전하다고 말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부모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말씀도 없습니다. 잠언 23장 13절롸 29장 15절에 보면, 자녀를 때려서라도 가르치라고 권면합니다. 그렇게 때려도 죽지 않는다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1장 15절과 17절, 신명기 21장 18-21절과 27장 16절을 보면 부몰르 치는 자, 순종하지 않는 자,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하고 죽이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 성숙하지 못하는 부모들이 있음을 고려할 때, ‘문제 부모는 있어서 문제 아이는 없다’는 말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그런 말은 분명 성경의 말씀과는 역행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부모이ㅡ 허물을 감춘 채 부모 공경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고가 현대 사회에는 아주 팽배합니다. 모든 것이 다 부모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려면 다음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하는데, 첫째는 할아버지의 재력과 둘째는 엄마의 치마바람과 셋째는 동생의 희생이라는 것입니다. 동생의 희생 대신에 아빠의 머리가 나올만도 한데, 머리는 다 동일하다는 전제를 가진 것 같습니다. 머리가 좋고, 노력을 해도 위의 세 가지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암묵적인 사인이 있습니다. 아빠는 소용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자녀의 성공적인 삶에 영향을 전혀 미칠 수 없는 존재로 전략했습니다.

여기에 아버지의 존재가 안 보입니다. 엄마는 자신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심부름꾼과 같습니다. 할아버지, 동생조차도 자신을 위해 존재합니다. 이런 가정에 권위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권위를 잃어버린 시대입니다. 여기에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할만한 자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부모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기 부모를 공경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이삭은 적게는 17세, 많으면 27세 정도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삭 앞에 있는 아브라함의 권위가 얼마나 컸으면 이삭이 아버지가 자신을 번제로 드리는 상황에서 그가 아무 반항도 하지 못하고 순종했겠습니까? 물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권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위는 아버지 아브라함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이삭은 그 권위 앞에 자기 생명을 내어놓고 순종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의 일화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구두를 수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도 초등학교를 조금 다니다가 말았습니다. 학문이 없는 사람이 대통력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공부를 안 한 것은 아닙니다만… 그러니까 고고하고 지식 많고 귀족출신의 정치인들이 아브라함을 헐튿고 괴롭혔습니다. 대통령이 되어 처음 상원에서 연설을 하는데, 어느 상원 의원이 실제로 그랬다고 합니다. “당신 같이 무식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모시게 딘 것이 우리의 다시 없는 불행이라고…” 이런 모욕을 주고, 또 “당신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요. 그런 사람의 아들, 그런 천한 사람의 아들을 우리가 대통력으로 모시게 됐다.” 고 하면서, 자기 구두를 벗고는 이 구두도 당신의 아버지가 만들어 준 것이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 링컨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내 아버지를 기억나게 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는 제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직업에 충실하셨고, 구두를 매우 잘 만드는 분이셨습니다. 나도 어깨 넘어로 배운 바가 있으니 당신 구두가 고장나거든 가져오시오. 내가 수리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응수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자기 부모를 떳떳하게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부모의 인격을 높이고 명예를 높이는 것입니다. 그를 높이고 그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 어머니는 이런 분이셨습니다. 내 아버지는 이런 분이셨습니다. 항상 내 부모님을 자랑스러워하고,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공경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데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물론 부모도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님도 인간이고, 불완전하며, 감춰야만 하는 허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자녀에게 바로 잡으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 외에는 우리가 할 일이 없습니다. 그 이상은 우리의 소관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고, 자랑스러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습니까? 부모와 자녀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뉘시고 수고하신 부모님입니다. 그런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큰 영광이며 은혜입니다. 그분들은 끝까지 존경을 받을만하고 또 그래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2. 부모 공경은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본래 출애굽기 20장 십계명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에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 두 가지 약속은 사실 동의어입니다. 잘되는 것과 장수하는 것은 같은 말입니다. 잘 되면 장수하고, 장수하면 잘 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약속을 주셨을까요? 왜 부모를 공경하면 네가 잘 된다고 하신 것입니까? 부모님은 우리가 태어나서 최초로 맺은 관계입니다. 우리는 부모의 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부모로부터 태어나면서 몸만 따로 된 것이 아니라 마음도 나뉘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과 관계가 깨어지면서 상처를 받습니다. 결국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에 대해 감사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부모님을 공경할 수 없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가 있다고 합니다. 크고 작은 상처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잊어버릴 수도 있고, 인생이라는 것이 다 그럴 수 있는 것이라고 넘어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상처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를 원망하기도 하고, 자기 인생에 대해 한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있는 상처를 여전히 완전히 숨길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부모님이 돌아가셨든지, 살아계시든지 해결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없습니다.

로마서 1장 21절에 보면, 인간의 타락의 특징 중 하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감사치도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모님의 은혜가 감사하지 않고 마음의 불편함과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의 일이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부모님을 공경하고 감사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마음과 연결됩니다. 이것이 잘 되는 길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우리 모두는 다 주님 안에서 한 형제, 자매, 그리고 부모들입니다. 마가복음 3장 31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서로 하나 된 형제요 자매요 부모입니다.

오늘 나온 뉴스레터 제10호에 대학부 졸업생들이 준 졸업소감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제소감은요. 샬롯츠빌한인교회 다니면서 새로운 부모님도 많이 생기고 동생들이랑 언니오빠들과 하나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 학생은 교회생활을 통해서 아주 자연스럽게 그렇게 느낀 것입니다. 목사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이것이 풍성한 삶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으니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 내가 잘 되고 장수하리라. 이런 은혜가 가득하시길 축원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일자 설교 제목 성경
629 2016-05-08 주병열 목사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Honor Your Parents) 에베소서 (Ephesians) 6:1-3
628 2016-10-23 주병열 목사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file 빌립보서 2:5 - 11
627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약5:13-20) 2012. 6. 17 주일예배
626 너희 하나님을 보라(사40:1-11) 2009. 3. 1 주일예배
625 너희가 내 증인이 되리라 (행1:3-8) 2014. 3. 2 주일예배
624 2015-04-26 주병열 목사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갈라디아서 6:1 - 5
623 2019-01-20 주병열 목사 너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You Are Sons of the Living God) file 호세아 (Hosea) 1:1-21
622 2017-10-15 주병열 목사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You are the salt of the world) 마태복음 (Matthew) 5:13 - 16
621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암5:1-13) 2008. 7. 6 주일예배
620 너희를 위하는 내 몸(고전 11:23-26) 2007. 9. 2 주일예배
619 2022-07-24 주병열 목사 너희의 후한 연보 (녹화 방송) 고린도후서 9:9-15
618 2020-05-10 주병열 목사 네 부모를 공경하라 file 에베소서 6:1-3
» 네 부모를 공경하라 (엡6:1-4) 2011. 5. 8 어버이주일예배
616 네 손을 펼쳐라(신15:7-11) 주일예배(김재억목사님 말씀)
615 2015-11-01 주병열 목사 네 연소함을 극복하라 (Overcome the limit of your youth) 디모데전서 (1 Timothy) 4:11-13
614 2019-06-30 주병열 목사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말게 하며 file 디모데전서 4:6-16
613 2017-09-03 이창순 전도사 네, 사랑합니다 (Yes, I love you) 요한복음 (John) 21:15-17
612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5:1-9) 2010. 7. 18 주일예배(권오국목사)
611 2017-04-02 주병열 목사 네가 성내는 것이 합당하냐 file 요나서 (Jonah) 4:1 - 11
610 2020-04-19 주병열 목사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file 신명기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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