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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은 교회가 세워져 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성령의 역사와 사도들의 사역으로 인해 이루어지는 초대교회는 매우 다이나믹하고, 긴장감을 주며,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키시고, 이로 인해 사도들이 감옥에 갇힙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거짓으로 죽음을 당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용납하지 않으시고 예리하고 날카로운 당신의 칼을 드셨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순결을 잃지 않게 하셨습니다.

본문 12-13절을 보면 이런 일들로 인해 믿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마음을 같이 하여 모이기에 힘쓰고 있고,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씀합니다. 믿는 자와 불신자의 간격이 더 벌어집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믿는 자의 수는 점점 더 많아집니다. 120명의 성도들(1:15)이 3,000명으로(2:41), 그리고 다시 남자 장년 성도만도 5,000명이 되고(4:4), 본문 14절에서는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고 말씀합니다. 이제는 셀 수 없을만큼 수가 많아졌습니다.

오늘날 오래 믿은 성도들은 불신자와의 관계가 소원해짐으로 전도 자체가 어려워지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단지 그런 현상이 일어나기 전 현상이 아닌 듯합니다. 본문에서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 말씀은 마치 수력 발전소의 원리와 같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력 발전소는 위에 떨어지는 물의 낙차가 크면 클수록 만들어지는 전력이 커집니다. 그와 같이 성도와 믿지 않는 이의 관계가 멀어질수록 그들의 삶의 질적 차이로 인해 세상을 향한 성도의 영향력이 커지고 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단지 성도들이 믿음이라고 하는 한정된 세계 안으로 수축되어 들어오는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더 높은 삶의 목적을 추구하는 삶으로 바뀌고 있음을 말씀합니다.

따라서 성도들의 삶이 세상과 멀어지면 질수록 그들을 향한 영향력과 복음의 능력이 더 커지는 현상이 일어나고, 그 결과 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13절 하반절에서 ‘백성이 칭송하더라’고 성경을 말씀합니다. 교회와 성도들 당시 세상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15-16절에는 많은 병자와 귀신 들린 자들이 치유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고대 시대에 질병은 거의 불치병이었고, 한 번 질병을 앓게 되면 평생 가지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주의 능력으로 그들을 치유합니다. 이 치유는 그들에게 생명을 다시 얻는 것과 같았습니다. 치유 후 그들은 새로운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있었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가지고 갔습니다. 사도행전 4장 9-10절을 보면 사도들의 치유로 인해 얻은 건강을 구원이라는 말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몸의 건강을 표현하는 구원(9절)이라는 표현은 다시 12절에서 전인적 구원의 의미에서 영혼구원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런 구원의 역사는 당시 시대에 엄청난 영향력과 능력으로 드러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17절 이하에서 사도들이 유대 제사장들에게 심문을 받으면서 보여준 반응을 보면 그들을 통해 드러난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 것이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주의 사자가 옥문을 열고 사도들을 끌어내어 성전에서 복음을 전하게 합니다. 다시 잡혀 가서 심문을 받지만, 심문하는 제사장들은 백성들을 두려워하고 있는데, 오히려 사도들은 ‘우리가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면서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담대함은 심문하는 유대 제사장들의 마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6장 7절에 가면 허다한 제사장 무리들도 주께로 돌아왔다고 성경을 기록합니다.

또한 이어서 30절에 사도들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선언합니다. 그들은 불과 얼마 전 자신들이 서 있는 동일한 장소에서 자기 스승이 심문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을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일을 상기시키면서 복음을 전합니다. 이 자리는 사도들이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는 곳이고, 또 한편으로는 원한과 분노를 갖기에 충분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도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매 설교 때마다 위의 말을 반복합니다(2:23, 3:14-15, 5:30-31). 하지만 그의 선포에는 분노나 원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안타까움이 묻어납니다. 그 모습은 후에 나오는 스데반의 설교를 통해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아버지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소서.’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가 지니고 있던 복음의 능력이었습니다. 수력 발전소의 물의 낙차가 크면 클수록 더 큰 전력을 만들어 내듯이, 초대교회는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삶의 목적과 복음의 능력을 지녔습니다. 그런 능력은 그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그들의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그들은 감히 믿는 자들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못했지만, 그들의 마음을 향해 들어오는 복음의 영향력까지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복음의 역사가 오늘날 교회에 다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 복음이 우리를 살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목적을 줄 뿐만 아니라, 이 세대에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오늘의 교회는 과연 그 시대의 교회처럼 칭송받는 교회가 되어 있습니까? 아니라면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물질의 부족도 아니고, 문화적 컨텐츠가 없기 때문도 아니고, 사람이 없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 그 자체로부터 나오는 능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교회 가운데 이런 능력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 개인의 삶 속에 그런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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