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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바벨론에 포로민으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른 새벽부터 깨우셨습니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전에 입지 않던 새 옷을 입히십니다. 그동안 그리워하던 고국 예루살렘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몸에 묻어 있던 먼지를 털고, 포로민의 신분을 보여주는 목의 줄도 풀어버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광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갈 준비를 시키십니다. 이사야 52장의 내용입니다. 바벨론 포로민들에게 이 말씀은 매우 설레고 큰 기대를 하게 하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거기서 떠날찌어다. 떠날찌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찌어다(현대어, 떠나라. 떠나라. 여기서 빨리 떠나라. 이 더러운 바벨론에서 떠나라!).” 얼마나 신나는 말씀입니까? 바벨론에 지난 70년 동안 살던 사람들에게는 이 말씀은 복음 중에 복음이다.

그러나 막상 바벨론을 떠나려고 할 때 함께 떠나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고국이었지만, 또한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역사와 삶을 회복시키시는 놀라운 은혜의 사건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 모두 다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떠날 수 없었습니다. 떠나지 못했습니다. 떠난 사람들 보다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우리도 이민자의 삶을 살기 때문에 이들의 심정을 어느 정도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모두 힘들고 어렵게 살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나름대로 삶의 기반을 닥아 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특별히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 사드락, 메삭, 아벧느고와 같은 사람들은 그런 부유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편안하고 안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늘 타국민이라는 사실이 그들의 장래를 막았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이민자의 삶을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법입니다.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과 아픔이 있습니다. 고국에 있는 사람도 그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지만, 남의 나라에 산다는 것의 아픔을 또 다른 아픔이요 고통입니다. 더욱이 지금 바벨론의 포로로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사로 온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또한 자기들 마음대로 돌아갈 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그렇게 바벨론에 있는 이스라엘 포로민들이 이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기회가 왔습니다. 바벨론이 멸망하고, 페르시아가 지배하면서 모든 포로민들이 해방되었습니다. 얼마나 신나고 기쁜 일일까요? 지금 당장이라도 예루살렘으로 달려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그 고향 땅, 하나님을 섬기면서 예배하던 그 예루살렘인데, 막상 그곳을 갈 수 있을 날이 왔을 때 그들은 가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그들은 바벨론을 떠나지 못할까요? 막상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기회가 잡혔을 때 그들은 매우 망설이고 당황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그들을 그렇게 괴롭혔던 바벨론은 멸망했지만, 그들은 바벨론의 삶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그곳에서 상당한 세월을 보내면서 나름대로 익숙해지고, 그 나름대로 안정감을 느끼는 점이 점차 많아졌습니다. 적게는 50년에서 많게는 70년을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이미 부모 세대는 다 죽었습니다. 이제 많은 젊은이들은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1.5세이거나 2세, 혹은 3세입니다. 예루살렘은 지난 70년 동안 버려진 땅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세운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하나님을 섬기던 그 자리로 돌아간다는 점에서는 조금도 주저할 이유가 없었지만, 그동안 세워놓은 삶의 기반을 다시 허물고 돌아간다는 점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떠날찌어다. 떠날찌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찌어다. 그 가운데서 나올찌어다.” 그토록 소망하던 예루살렘을 향해 가라고 말씀하시는데, 막상 가려고 하니 여러가지 일들이 마음에 걸립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에게도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 있는 곳에서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사는 곳이 꼭 바벨론과 같이 타국이고, 적국이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떠남으로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지를 확인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저에게도 이런 일을 요구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적지 않게 고민했고 많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을 했습니다. ‘주님, 가겠습니다.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놀랍게도 주님은 저에게 더 나은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많은 믿음의 선조들은 자기 자리에서 떠남으로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떠났고, 이삭도 수많은 우물들을 파면서 떠나야 했습니다. 야곱도 부모님이 계신 고향을 떠나 밧단아람이라는 타향으로 가서 20년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요셉은 애굽으로 가서 13년 동안 모진 고난을 겪은 후에 비로서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처녀로서의 자신의 삶의 자리를 내려놓고 성령으로 잉태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출산을 허락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자기의 자리를 떠나는 결단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고 하지만, 사실 구체적인 상황으로 들어가보면 우리는 대부분 자기 자신의 삶의 자리에 얼마나 강하게 붙들여 있는지 모릅니다. 내가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세상의 끈이었지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신명기 8장을 보십시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줄 알게 하려 함이라.’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모두 대부분 떡에 의존해서 살아갑니다. 우리의 물질, 삶의 기반, 우리를 받쳐주는 삶의 기둥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들이 무너지면 우리는 너무도 힘들어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모릅니다. 세상 없는 부와 명예, 재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오히려 없는 사람들보다 더 불안해하고, 더 근심합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우리의 삶이 그런 것들에 의해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 것을 신명기 8장에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때만 우리의 생명은 살아갈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스스로 자신을 정결케 하라고 명령하십니까? 그 이유가 바로 앞에 나옵니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그들은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한 뜻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하나님을 봅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보면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복 받기 위해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이 일차적 목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너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의 복이 흘러 세상으로 나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할 일은 세상이 하나님의 뜻을 전하면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전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자리이고, 사명입니다. 우리가 지금 구속받는 것은 사명을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죄악에 빠진,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 있는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떠나라는 명령은 잘 듣지만, ‘부정한 것을 다 놓으라’는 명령은 잘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귀한 것을 주신다는 말씀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왜 그런 것들을 주시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은 잘 믿지만, 하나님께서 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또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함께 하심으로 우리를 통해 무슨 일을 이루시기를 원하시는지, 그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고, 더 이상 바벨론에 있는 우상과 명예와 물질에 매여있지 말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함으로 나올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뜻대로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비전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원을 이루라고 그렇게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 당신의 뜻을 이루기 원하십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얼마나 위대한 약속이 그 안에 있는지 모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여 행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포로민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 앞과 뒤에서 호위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함으로 우리의 손에 쥐어진 것을 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인생길을 누가 지키실니까? 하나님께서 앞과 뒤에서 지키십니다. 무모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성도님들의 앞길을 지키십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붙들고 살아갈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매우 중요한 신앙의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려놓고 떠나면 하나님께서 앞과 뒤에서 호위하십니다. 우리의 인생의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너무도 멋지지 않습니까? 놓지 못할 때 사람은 비참해집니다. 그것이 붙들려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저는 그것에 대해 확신합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얼만큼 좇아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을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곳에 광야가 있음으로 우리는 두려워하지만, 하나님은 앞과 뒤에서 지키십니다. 이 은혜를 누리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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