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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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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교회가 세워진지 32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30년 전 샬롯츠빌은 한인들이 지금보다도 훨씬 더 적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곳은 목회자가 와서 교회를 개척하여 세울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대신 몇 몇 믿는 이들이 모여 성경공부를 하면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초기 10년 정도의 역사기록은 별로 없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그 점은 우리교회의 특별한 점이면서 또한 감사한 점입니다. 교회가 30년이 넘었다고 하면 먼저 교회의 크기를 생각하는 분들이 있지만, 우리교회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더 귀하다고 여겨집니다. 교회의 크기가 교회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이 교회를 생명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교회가 없어질 수도 있었고, 또 다른 이름으로 교회가 지속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계속 바뀌었지만, 교회는 계속 되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바로 교회에 복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교회설립 32주년을 기념하는 예배이기에 이런 이야기들을 계속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역사, 그 역사 안에 함께 지체가 되어 교회를 섬기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 이런 것들은 참으로 귀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교회의 참된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진실로 교회는 어떻게 세워져 가는 것인가? 교회는 무엇에 의해 역동적인 힘을 갖게 되는가? 그 안에서 우리가 서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 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베드로를 통해 보여주는 초대교회의 참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건이기에 아름답다고 할 수 없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이것은 참 귀한 모습이 이 안에 있음을 발견합니다.

주님은 대제사장의 심문을 받고 있습니다. 그 앞에서 담담하게 심문을 받습니다.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이냐?” 예수님께서 답하십니다.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응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막14:62).” 이 대답은 예수님께서 결정적으로 신성모독죄에 해당하는 죄목을 유대인들에게 제공하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시고 당신 자신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한 비자, 대제사장의 집에서 일하는 여종의 심문을 받습니다.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그러자 황급히 자신의 정체를 부인합니다.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 뜰로 나갔습니다. 또 다시 다른 비자가 와서 베드로를 보고 말합니다. “이 사람은 그 당이라.” 베드로 역시 다시 부인했습니다.

잠시 후에 다른 한 사람이 다시 베드로를 향해 말합니다. “너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라.” 마태복음 26장 73절에는 ‘네 말 소리가 너를 표명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베드로의 말투를 보니 갈릴리 사투리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틀림없이 예수의 일당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 끝에 베드로는 이제 저주까지 하며 부인했습니다. 여기서 저주했다는 말은 자신이 말한 내용이 진실이 아니라면 저주를 받겠다는 강력한 맹세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렇게 겁장이만은 아니었습니다. 대제사장이 피송한 군인들을 이끌고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찾아 겟세마네 동산까지 왔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폭도들을 혼자 상대하기나 할 것처럼 무모한 용기를 가지고 검을 빼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난투 속에서 그는 대제사장의 종 말고에게 상처를 입혔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더욱이 베드로는 예수님을 뒤따라 갔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쳤지만, 베드로만은 자신의 한 말을 지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가 약속한 대로 끝까지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려고 노력했습니다.

한 가지 더 기억할 점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사실을 누가 봤을까요? 아무도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베드로 자신에 의해서 알려진 내용입니다. 이 사건은 베드로 자신만 알고 있던 일입니다. 베드로는 후에 복음을 전하고 설교를 할 때마다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고백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부인한 자입니다. 나는 내가 다짐한 고백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을 깨어 있는 마음으로 들었어야 했는데, 나는 나 자신을 믿었습니다. 나는 충분히 주님을 위해 주님을 지켜드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은 대제사장에게 심문을 받고 있는 그 자리에서 나는 한 계집 종의 말에 두 번이나,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묻는 질문에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이렇게 뒤바껴 전해내려올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나는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부터 예수님의 수제자였습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심문 받으실 때 모든 제자들이 다 그 자리를 떠나 도망갔을 때조차도 그 자리를 지켰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수치와 모욕을 당하고 고통스러웠는지 저는 보았습니다. 나는 비록 예수님을 부인하긴 했지만, 그러나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베드로는 사실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행적을 보면 그는 정말 예수님의 수제자가 될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정말 용기있는 사람이었고, 할 수만 있으면 예수님의 뒤를 끝까지 따라가려고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마가복음은 주후 64년 경 전후에 로마에서 마가에 의해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로마의 교회는 주로 이방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은 이방인들을 위해 유대적 표현들은 가급적 사용하지 않았고, 또 부득이 그런 표현을 사용할 때는 설명을 달았습니다. 즉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베드로의 존재는 매우 위대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의 과거를 알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를 통해 이루어졌던 초대교회의 역사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초대교회의 수장들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충분히 존경받고 있었고, 믿음의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예수님의 심문 받는 자리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자리에 있었다고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온전히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만 드러내었습니다. 조금도 가감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은 베드로 자신의 고백에 기초해서 기록된 것입니다.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는 베드로의 영적인 아들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13절에서 베드로는 마가를 자신의 아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인간적으로 마가는 자신의 영적인 아버지였던 베드로를 미화시키고 싶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설명하면서 바로 그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바로 베드로 사도이라는 뉘앙스를 조금이라도 풍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아니 복음서 전체 어디를 봐도 그런 흔적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주님의 십자가만을 전했습니다. 그 분의 공의로우심만을 선포했습니다. 철저히 자신을 낮추고 감추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를 건강하고 강하게 했습니다.

마가복음에만 살짝 끼어든 기록이 하나 있습니다. 마가복음 14장 51-52절의 내용입니다. 여기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 오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이 사람이 누구일까요? 학자들은 이 사람이 바로 마가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 역시 마가 자신이 밝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초대교회가 세워져 가고 있을 때 그들은 복음을 전할 때마다 자신들의 간증을 함께 했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나는 주님을 부인했던 사람입니다. 나는 주님을 따라가다가 붙잡혀서 죽을 것이 두려워 완전히 알몸으로 도망친 비겁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당시 초대교회의 고백이었고, 신앙이었습니다.

복음서를 보십시오. 복음서에 나타난, 특히 마가복음에 나타난 제자들의 모습은 완전히 실패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늘 예수님을 바르게 깨닫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했지만, 이내 바로 이어지는 주님의 고난의 의미를 알지 못해서 책망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의 설교였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부족한 점들을 고백하면서 성도들에게 외쳤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자고요. 주님의 진정한 제자의 삶을 살자고요. 나는 전에 실패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주님의 진정한 제자로 살려고 한다고요. 우리 함께 주님의 제자된 삶을 살아갑시다. 고 외쳤습니다.


샬롯츠빌한인교회가 설립된지 32주년을 맞는 기념예배를 드립니다. 그동안 교회가 여기까지 오는 일에 많은 사람들이 수고와 헌신이 있었습니다. 진정한 섬김과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교회가 어떻게 가능했겠습니까? 그렇게 수고하신 분들을 모시고 치하하고 감사의 표현을 하고 싶은 마음이 솔직히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우리 교회가 가야할 길을 다시 보여줍니다. 우리는 여전히 주님의 뜻을 따라 가야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열정과 수고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칼을 휘두르고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떨어뜨린 것도 훌흉한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칭찬하지 않으셨습니다.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용기 있는 일이었고 훌륭했고 칭찬할만했습ㄴ디ㅏ. 그러나 주님은 그 길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결국 망하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 진리 위에 서는 교회로 세워져야 합니다.

본문은 베드로의 고백에 근거해서 기록된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노력, 수고, 주님을 정말 따르고자 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런 노력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진리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절반의 진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는 전적으로 순종함으로 지켜지든지, 아니면 거부되든지 둘 주의 하나여야 합니다. 진리가 타협되기 시작하면 그것은 더 이상 진리가 아닙니다. 32주년을 맞는 교회로서 주님의 말씀 위에 세워지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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