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샬롯츠빌한인교회

주일설교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로 시작합니다. 복음은 구원에 관한 복된 소식을 말합니다. 복음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질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셨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고 회복시키셨습니다. 주님은 궁극적으로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하여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진짜 사람이 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선포는 참으로 세상을 뒤흔드는 놀라운 선포입니다. 천둥 번개가 치고 옆에 있던 큰 나무가 쓰러지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며 신적 존재를 경험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동일한 모습으로 오신 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예수님에 대해 두 가지로 반응했습니다. 한 부류는 예수님께 하나님의 아들로서 더 크고 더 많은 증거들을 보여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들은 주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제사장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그럴 때마다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셨습니다. 두 번째 부류는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늘 너무 적은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인간적인 한계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한정시켰습니다.

제자들은 얼마 전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먹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동일한 상황에서 그들은 주님을 향해 이전과 같은 더 큰 기대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우리가 어떻게 ‘이 광야에서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하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또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하나님이 인간이 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신은 인간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논리적 모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말씀(하나님)이 육신이 되셨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신비이며 기적입니다. 우리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단 한 가지 이유는 그 분이 인간을 사랑하셨다는 사실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는 동일한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무리들이 사흘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굶주리고 있는 모습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수 있었던 제일 첫 번째 요인은 바로 그 분의 사랑이었습니다. 즉 사랑이 기적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기적의 출발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본문은 6장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과 다른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예수님께서 두 번 기도하셨다는 점입니다. 한 번은 떡 7개를 위해서, 또 한 번은 물고기 두 어 마리를 위해서였습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고기는 감췄을런지도 모릅니다. 굳이 그것까지 내놓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두 번 기도하게 됩니다.

주님 앞에 내 놓지 않은 떡과 고기를 무리들을 먹일 수 있도록 기적이 행해질 수 없습니다. 무리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먹을 것을 주님께 내놓을 수 없었고, 또한 기적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가능성과 당위성에 있어서 늘 고민을 합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 것은 마땅한 당위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시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라고 질문하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당위성이 가능성의 벽을 뚫고 넘어 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메세지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자주 가능성의 벽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보고 그 안에서 우리 삶의 목적을 찾고, 부르심의 목적을 확인할 때 우리는 가능성이 없는 한계 상황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무리를 긍휼히 여기신 예수님, 그 분의 사랑은 그들을 위해 먹을 것을 줘야겠다고 생각하게 하셨고, 그 주님의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주님께서 누구를 통해 어떻게 일하실까요? 그 분은 바로 오늘도 동일하게 영혼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긍휼히 여기는 사람들을 통해 일하실 것입니다.

교회의 건축을 하면서, 혹은 학생이 진로를 고민하면서, 혹은 교회를 섬기면서 우리는 자주 ‘내가 저 일을 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저 일 하는 것을 원하시는가?’ 만약 하나님께서 그 일 하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그 일을 하도록 힘을 주실 것입니다. 가능성의 장벽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사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일자 설교 제목 성경
669 우리의 신실하신 주님(빌1:6) 2008. 10. 26 주일예배(김익준전도사)
668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2-20) 2008. 11. 2 주일예배
667 부득불 할 일(고전9:13-18) 2008. 11. 9 주일예배
666 말 못하는 우상(고전 12:1-11) 2008. 11. 16 주일예배
665 감사를 표현하자(살전5:18) 2008. 11. 23 주일예배(박진석목사)
664 사랑으로 행하라(고전16:13-24) 2008. 11. 30 주일예배
663 질그릇에 담은 보배(고후4:1-12) 2008. 12. 7 주일예배
662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고후7:8-16) 2008. 12. 14 주일예배
661 친히 주신 징조 - 임마누엘(사7:1-17) 2008. 12. 21 성탄주일예배
660 그리스도의 일꾼(고후11:22-33) 2008. 12. 28 주일예배
659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출20:1-17) 2009. 1. 4 주일예배
658 제자로 부르시는 예수님(막3:7-19) 2009. 1. 11 주일예배
657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막5:35-6:6) 2009. 1. 18 주일예배
» 무리를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막7:31-8:10) 2009. 1. 25 주일예배
655 태초부터 주신 규범(막10:1-16) 2009. 2. 1 주일예배
654 하나님을 믿으라(막11:20-33) 2009. 2. 8 주일예배
653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막13:14-27) 2009. 2. 15 주일예배
652 베드로의 고백(막14:66-72) 2009. 2. 22 주일예배
651 너희 하나님을 보라(사40:1-11) 2009. 3. 1 주일예배
650 새 노래로 노래하자(사42:10-17) 2009. 3. 8 주일예배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41 Next
/ 41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