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샬롯츠빌한인교회

주일설교

조회 수 4778 추천 수 493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은 나치 정권에 반대하는 이들이 모여 결성한 고백교회에 참여했고, 또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1943년 4월 체포되어 1945년 4월 9일에 39세의 나이로 교수형에 처형되었습니다. 그가 2년 동안 감옥에서 숱한 고문과 고통을 받으면서 남긴 시가 있습니다. 제목은 ‘나는 누구인가?’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은 때로 말하기를,
나는 감옥의 갇힌 공간을 나설 때에
침착하고, 활기차며, 당당하다고 한다.
마치 자기 집 문을 나서는 유력자처럼.

나는 누구인가?  그들은 또한 말하기를,
나는 간수들과 이야기할 때에
자유롭고, 다정하며, 분명하다고 한다.
마치 내 자신이 지시를 내리는 사람인 것처럼.

나는 누구인가?  그들은 또한 말하기를,
나는 어려운 시간들을 견뎌내는 가운데에도
한결같고, 웃음을 잃지 않으며, 기품이 있다고 한다.
마치 늘 승리하는 자의 모습처럼.  

그럼 나는 정말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그런 사람인가?
아니면 단지 내가 알고 있는 나 자신일 뿐인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피곤하고 갈망하며 병들어있는,
누군가가 목을 조르는 듯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아름다운 색채와 꽃과 새들의 지저귐을 그리워하는,
친절한 한마디 말과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목말라하는,
가혹함과 모멸감에 대한 분노에 어쩔줄 몰라 떨고있는,
대단한 일들이 일어날 거라는 기대감을 점차 잃어가는,
머나먼 곳의 친구들 걱정에 무력하게 떨고있기만 한,
기도에, 생각에, 무언가 만들어내기에 지치고 공허해진,
기진맥진하여 이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버릴 준비가 되어있는, 그런...

나는 누구인가?  이 사람인가 저 사람인가?
오늘은 이 사람이었다가 내일이면 저 사람이 되는 것인가?
동시에 둘 다인가?  다른 이들 앞에서는 위선자요,
내 스스로는 비겁하고 수심에 가득찬 나약한 사람인가?
아니면, 아직도 내 안에는 패잔병의 모습이 남아있어서
이미 얻은 승리를 앞에 두고도 뿔뿔이 도망치고 있는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의 이 외로운 질문들이 나를 비웃고 있구나...  

내가 누구이든, 그분은 아시리라.  
오, 하나님,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본회퍼의 이 시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봅니다. 내적으로는 피곤하고 지쳐있지만,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당당하고 침착하며 승리자처럼 기품 있어 보이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 나오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와 성도에게서는 얼마나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목소리는 높이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은 듣지 않습니다. 교회는 미등ㅁ에 대해 말하지만,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영향력에 대해서는 별로 자신하지 못합니다.

영국의 한 대학에서 봄과 가을 학기의 중간방학을 Easter & Christmas Break라는 이름을 사용했었는데, 앞으로는 End of Term Break로 사용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믿는 학생들을 고쳐한 조치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기독교인인 한 의원이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소수 종교인을 존중하는 것으로 다수 종교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너무 궁색해보입니다. 참착함과 당당함을 잃어버리고 천박해져가는 교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 40년을 거의 마쳐가면서 여전히 실수와 헛점이 있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광야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의 훈련을 받아 점점 더 강한 민족으로 세워져 갔습니다. 그래서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점령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옆의 나라 모암이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아모리 왕은 얼마 전 모압의 여러 도시들을 점령한 강력한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압은 멀리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있는 발람이라는 선지자를 불러와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의 위험을 극복하려고 시도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상황을 좀 더 잘 알게 되면 모압의 처사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에돔 족속과 모압을 이미 지나왔습니다. 그들 나라 한 가운데로 나 있는 ‘왕의 대로’라는 큰 길을 통해 지나가려고 했지만, 그들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동쪽 사막 지역을 통과해서 그 윗지역인 아모리까지 온 것입니다. 그들이 모압과 에돔을 공격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형제국가이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공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모압과 이스라엘은 매우 힘든 고난을 겪었습니다. 모압은 10대 후손까지, 아니 영원히 이스라엘의 총회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 당했고, 이스라엘은 민수기 25장에 나오는 고난으로 겪어야 했습니다.

문제는 모압의 왕 발락이 자기 적을 잘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모압의 대적이 아니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이스라엘은 모압을 공격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사실 모압 왕 발락의 그런 악한 처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여전히 모압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잘못된 적을 선정해 놓고 고난과 어려움에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우리 안에 있는 적들은 누구입니까? 우리가 미워하고 증오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우리가 정말 적으로 공격할 대상이냐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에 땀을 흘리고 에너지를 쏟고 생명을 걸고 있는 것입니까? 어리석은 일입니다. 스스로 멸망에 이르는 길입니다. 왜 그러는 것일까요?

디트리히 본회퍼는 적의 정체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자신을 고문하고 학대하는 간수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본회퍼의 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자신을 힘들께 고문할 때조차도 본회퍼는 여전히 그들 앞에서 당당했고 마치 지시를 내리는 상관과 같은 품위와 기품이 있었음을 사람들은 보았습니다. 그가 알고 있는 그의 적은 그 안에 있는 두려움과 염려였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는 불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끝까지 자신 안에 있는 두려움과 싸웠던 것입니다.


더불어 발람 선지자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선지자였습니다.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성경 학자들은 발람을 ‘영매’, 즉 죽은 자의 혼을 불러 산 자와 대화를 하게 하는 무당과 같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발람 선지자의 모습을 보면 그가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비교적 정확하게 듣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하는 선지자가 나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잘못된 것임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지만 잘못된 선지자였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해서 우리가 곧 바른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가요? 우리가 교회에서 직분을 가지고 섬긴다고 해서 그것이 곧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교회에서 이것 저것 분주하게 섬기면서 수고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우리의 옳음을 증명하는 것일까요?

오늘의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혹시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것은 아닌가? 모압 백성처럼 사는 것은 아닌가?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모압은 400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곳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선지자 발람을 불러와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게 할만큼 수고를 아끼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고,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너는 정말 그리스도인인가?’ 혹시 ……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세워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일자 설교 제목 성경
689 기도하는 히스기야(사37:1-13) 2008. 6. 8 주일예배
688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딤전2:1-15) 2008. 6. 15 주일예배
687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딤전6:11-21) 2008. 6. 22 주일예배
686 선한 싸움을 싸우라(딤후 4:1-8) 2008. 6. 29 주일예배
685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암5:1-13) 2008. 7. 6 주일예배
684 은혜의 감격이 있습니까?(암 9:7-15) 2008. 7. 13 주일예배
683 성령을 기다리며(행1:12-26) 2008. 7. 20 주일예배(박진석목사)
682 항상 생각해야 할 일(벧후 1:12-21) 2008. 7. 27 주일예배
681 하나님을 경외하라(민1:47-54) 2008. 8. 3 주일예배
680 그리스도인의 길(민1:47-54) 2008. 8. 10 주일예배
679 단의 봉헌 예물(민수기 7장 84-89절) 2008. 8. 17 주일예배
678 여호와여 돌아오소서(민10:29-36) 2008. 8. 24 주일예배
677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민13:25-33) 2008. 8. 31 주일예배
676 작은 일이 아니거늘 (민16:1-14) 2008. 9. 7 주일예배
675 자신을 정결하게 하라(민19:1-10) 2008. 9. 14 주일예배
» 당신은 그리스도인인가?(민22:1-14) 2008. 9. 21 주일예배
673 비느하스의 거룩한 분노(민25:1-18) 2008. 9. 28 주일예배
672 인생의 목적(민29:1-11) 2008. 10. 5 주일예배
671 건강한 교회(민32:16-27) 2008. 10. 12 주일예배
670 각자 자기 기업을 지키라(민36:1-13) 2008. 10. 19 주일예배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41 Next
/ 41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