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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와 능력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열 가지 재앙을 통해 애굽의 바로를 완전히 무릎 꿇게 하고 애굽에서 탈출해서 가나안으로 출발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하나님의 약속의 땅, 조상들이 하나님을 만난 땅이었던 그곳을 바라보며 나갑니다. 기대와 소망이 그곳에 있습니다. 이 소망으로 모든 위험과 고통을 감수하고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엄청난 리더십을 부여하십니다.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을 바라보고 나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실 하나님을 어떤 분이신지도 잊은 백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를 통해 보여준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 홍해를 건너고 광야에서 만나를 주시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경험을 합니다. 시내산에서 십계명과 율법, 성막을 받고, 군대를 조직했습니다.

그런데 바란 광야 가데스에서 결정적인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로 시행된 가나안 정탐 사건이었습니다. 가나안 정탐을 한 후 부정적인 보고를 한 열 명의 정탐꾼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전히 사면초가의 상황을 맞게 되었고, 혼란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게 하는 징계를 주셨습니다.

40년의 광야 생활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으로 인해 받은 고난이지만, 그것은 꼭 불신앙으로 인한 징계의 목적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절망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을 들어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마치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즈를 휩쓸고 간 후 복구를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절망이 그들의 마음을 휩쓸고 지나간 후에는 긴 기다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40년을 지내야 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아마도 광야의 훈련이 필요했었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운 것입니다. 순간적인 기적과 능력만으로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지속적으로 긴 시간 하나님께서 마치 잠잠하신 것처럼 느낄 때조차 하나님과 함께 가는 인내와 믿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광야는 그들에게 참으로 적절한 훈련의 장소였습니다. 가나안만 들어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이 생각할 수 있찌만, 실제 가나안은 훨씬 더 많은 유혹과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나안에는 이미 강력한 국가들이 있었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은 좀 더 잘 훈련된 후에 가나안에 들어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에서 긴 고독과 두려움, 미래가 안보이는 암담함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광야 40년의 방랑 시절은 거의 성경에서 언급하지 않습니다. 출애굽 한 후 처음 약 2년 정도만 나오고, 40년 후에 가나안에 들어갈 때의 상황을 주로 말씀하시고 있을 뿐, 광야에 있었던 긴 시절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습니다.

그것은 광야의 삶이 어떠했을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마도 광야의 대부분의 시간들은 매우 지루하고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도 별로 없었고, 놀랄 만한 일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십시오. 40년을 광야에서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닙니다.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을 통해 가라 하시면 가고, 멈추라 하면 멈춥니다. 가야 할 이유도 모르고 서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하루 이틀은 자기들의 죄로 인해 그런 결과가 왔다는 것을 알고 갔지만, 세월이 일 년, 이 년 흐르면서 자신들의 죄는 잊어 버리고, 정처없이 떠다니는 그들의 신세는 말로 다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냥 가는 것입니다. 목적도 없고 방향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으니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고 하고, 그렇다고 무슨 소망을 가지고 나갈 만한 일은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도자의 리더십, 영향력이 힘을 잃어버립니다. 아무 것도 모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을 통해 탈출시키고, 홍해를 육지처럼 건널 때에는 아무런 조직도 없이 잘 인도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백성들의 조직도 질서도 나름대로 갖춘 상황이 되었고, 제법 나라의 틀을 갖추어 가고 있는데, 문제는 리더십이 발휘되기 어려운 실정이었습니다. 굳이 리더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모세의 지도력은 이름뿐인 것처럼 보입니다. 누구라도 그 자리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습니다. 거룩한 옷을 입고 제사장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아론과 그의 자녀들은 그냥 제사장의 권위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백성들은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레위 지파 고라와 르우벤 자손 다단과 이비람, 온이 당을 지어 모세와 아론을 대항했습니다. 고라가 속한 고핫 자손과 르우벤 지파는 같은 남쪽에 머물렀습니다. 그들은 늘 이웃해서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그래서 이들 간에 암묵적인 반역의 모의가 충분히 가능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레위 지파였던 고라는 제사장 직을 탐내었고, 르우벤 자손들은 모세의 자리를 탐내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250명의 지도자들을 포섭했습니다. 엄청난 힘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분수에 지나는구나! 온 백성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거룩하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데 어찌하여 너희는 스스로 높아져서 왕이 되려고 하느냐?’라고 대적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르우벤 지파 사람인 다단과 아비람 (온)은 모세가 자신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않고 있다고 불평하면서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감언이설로 백성들의 눈을 속이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 사람들의 나쁜 모습을 다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사실 지금 이스라엘 공동체는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사람들은 광야에서 상당히 여러 해를 보냈습니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이 시기가 거의 40년의 세월을 거의 다 차 갈 때쯤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그들은 지쳤고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이제는 좀 더 남은 광야의 삶을 채우기 위해 서로 격려하고 힘을 보태야 할 때였습니다.

더욱 어려운 것은 모세와 아론의 리더십이 가장 약해졌을 때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의 기적도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기적이나 능력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자신들의 죄로 인한 짐을 감당하며 남은 광야의 시간을 채우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긴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끝까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뭔가 빨리 움직이려고 하면 더 큰 사고를 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시간이 때때로 필요합니다. 긴 시간 주님과 묵묵히 동행하는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고, 말씀을 읽어도 감동이 없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고, 예배를 드려도 감격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성도들에게도 분명 이런 시간들이 지나갑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런 때조차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라와 다단, 아비람 일당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욕심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런 기다림에 지쳐있는 백성들의 눈을 어둡게 하고, 모세와 아론을 대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모세는 기도합니다.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4절)’ 모세는 이 고된 광야의 삶 속에서도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습니다. 아론과 미리암에게 리더십에 대한 도전을 받을 때도, 그리고 레위인과 르우벤 지파로부터 도전을 받을 때조차도 모세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일을 다른 어떤 일들보다 우선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승리의 비결이었습니다.

기도 후에 모세는 고라와 레위 지파, 그들 중에도 고핫 자손들을 책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구별하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셨고,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신 것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제사장 직분을 구하느냐고 책망합니다. 너희의 하는 일은 여호와를 거스리는 일이라고 책망합니다. 고라 일당이 모세와 아론의 자리를 탐내면서 반기를 든 결정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일들에 대해 감사하지 않고, 작은 일로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가장 알맞은 일을 맡기셨습니다. 그 일을 감사하고 잘 감당할 때 가장 아름다운 일입니다. 남의 것을 탐내는 모습만큼 추한 것은 없습니다. 자기 있는 자리를 깊이 감사할 때 그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자기 자리를 소중히 여기고 그 일에 충실할 때 진정한 성숙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자신이 현재 서 있는 자리에서 감사할 수 없는 사람은 그 이상의 것이 주어진다고 해도 결코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의 복을 누릴 수도 없고 누리게 하시지도 않습니다.

현대인들은 이런 일을 너무도 쉽게 ‘차별’이라는 개념으로 취급해 버립니다. 그러나 ‘차별’이라는 개념은 현대 타락한 시대의 산물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동일하게 모든 사람들이 그 있는 자리에서 충분히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레위인이 값어치 없는 일이었을까요? 레위인이 이런 직분은 쓸데 없는 일이라고, 우리에게 어떻게 이런 하찮은 일을 맡기시냐고 말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과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겠습니까? 하나님에게는 레위인도 필요했고, 제사장도 필요했고, 각 지파 백성들도 필요했습니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위인의 신분으로 제사장 직분을 탐내고 모세의 자리를 탐내는 것은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일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그 일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 일에 감사해야 하고, 감격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실패는 제사장이 되지 못한 것에 있지 않고, 또한 모세의 리더십을 얻지 못한데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실패는 그 일에 감사하지 못하고 섬긴데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상황이 주어집니다. 성도의 진정한 행복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돈벼락을 맞게 해 줘야 축복이 아닙니다. 축복은 이미 받았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감사와 감격을 회복하는 것만이 진정한 은혜의 길입니다. 이런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충만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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