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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성금요일 십자가에 달리시고 오후 3시경 운명하셨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과 다른 죄수들의 죽음을 확인하고 해지기 전에 급히 십자가에서 내려서 시신을 수습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라는 부자가 빌라도에게 와서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하여 자기의 빈 무덤에 장례 지냈고,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가 함께 와서 몰약과 향품을 예수님의 몸에 바르고 갔습니다. 이 때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또 한 사람의 마리아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금요일 저녁이 되면서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모두 자기 집으로 돌아갔고,안식일이 끝난 후 주일(일요일) 새벽 동트기 전에 이 두 여인은 다시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이 여인들이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였는지 보여줍니다. 이것이 진짜 사랑이었습니다. 그들은 산 예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죽은 예수님을 찾아간 것입니다. 예수님께 무엇인가 얻을 게 있어서 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고 보고 싶고 그래서 그의 몸에 향유와 향품을 부으므로 그의 장례를 준비하고 싶어 갔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무덤에 갔을 때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큰 지진이 일어나고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아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보초를 서던 군사들은 무서워 겁에 질려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천사가 두 여인에게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전합니다. 얼마나 감격스럽고 놀라운 사건이었겠습니까?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갑작스럽고 놀라운 이 사건으로 인해 죽은 자처럼 되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보니 문제가 심각해져 있었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심히 염려하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몇 명을 대제사장들에게 보내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하다가 군병들에게 돈을 주면서 제자들이 밤에 예수님의 시신을 도적질해 갔다고 소문을 내도록 했습니다.

15절을 보면,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오늘날까지’라는 말은 마태가 마태복음을 기록할 당시를 말합니다. 마태복음은 주후 60년대 중반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지 무려 30년 이상 지난 후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까지도 그 소문이 유대 사회에 계속 퍼져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거짓이라고 소문을 내고 주장한 사람들은 바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그리고 그들의 사주를 받은 군병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16-17절을 보면 제자들 중에도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제자가 꼭 도마만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의심하던 자들 중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도 믿지 못한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17절에 표현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기록의 솔직함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당시 상황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기대하기는 ‘처음에는 군사들과 대제사장들의 악의적인 소문으로 인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은 그러한 소문들이 다 사라지고 예수님의 부활은 의심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고 기록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더욱이 오늘날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는 더 많은 이론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제사장들이 꾸민 이야기를 ‘시체 도난설’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기절설도 있습니다. 기절설은 예수님께서 완전히 죽지 않고 기절했다가 깨어나서 무덤에서 탈출했다는 설입니다. 무덤 오인설도 있습니다. 두 여인들이 동트기 전에 무덤을 찾아갔지만,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예수님의 무덤을 잘못 찾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환각설도 있습니다. 이것은 여인들과 제자들이 예수님을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예수님의 환상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화설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실재의 인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의 상황에서 볼 때 예수님의 역사적 실재를 가늠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면에서 나온 설입니다.

이렇게 수없이 나오는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이론들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고 대답하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 대답을 찾으려고 시도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다는 것과 부활을 목도한 증인들이 수 백 명에 이른다는 점, 초대교회가 탄생한 점은 예수님의 부활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또한 사도들의 놀라운 변화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그들은 정반대의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의지적인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그 이상으로 변했습니다. 또한 초대교회의 중심 메시지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정말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사실 이러한 논증들은 예수를 믿고 난 후에 가질 수 있는 증거들입니다. 믿고 보니 정말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는 점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음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해 준다고 말하지만, 사실 2000년 전의 빈 무덤이 오늘까지 여전히 예수님의 부활을 증명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뭐라고 논증합니까? 놀랍게도 성경은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습니다. 본문 15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그리고 16-17절입니다.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마태복음 제일 마지막 부분에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자들이 여전히 있었음을 말하면서 마태복음을 마무리하고, 예수님께서 마지막 지상대사명으로 주신 말씀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습니다. 독자들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의문과 의심은 그 때도 있었고, 30년이 지나 마태복음이 쓰여진 때도 있었고,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있습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사실 딜레마입니다. 믿을 수도 없고 믿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에 대한 확신과 고백은 우리의 삶의 모양은 많이 바꾸도록 할 것입니다. 또한 부활을 부인하게 되면, 부활이 주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에서 빗겨가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이 정말 사실인데, 부활을 믿지 못함으로 그 놀라운 역사에서 빗겨가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운명이겠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부활은 설득의 문제가 아닙니다. 부활은 이해하거나 논증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부활의 증거는 많이 있습니다. 빈 무덤도 있고, 증인들도 있었고, 초대교회의 탄생과 사도들의 변화, 그리고 초대교회의 중심 메시지가 예수님의 부활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에게 그런 논증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공부로 부활이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훨씬 더 많은 면에서 결단입니다.

우리가 부활을 진실로 믿는다면 삶의 많은 문제들은 더 이상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부활은 지적인 동의가 아닙니다. 부활은 설득하거나 설득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부활신앙에 설득 당한 분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부활에 대해 듣고 또 들었습니다. 목사가 부활을 믿으라고 말하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부활을 믿는다고 말하니 그냥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설득당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설득당한 부활신앙은 참된 부활신앙이 아닙니다. 부활신앙은 죽어도 산다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죽어도 된다는 고백입니다. 죽음의 자리에서도 부활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흔들림 없이 나가는 것입니다. 즉 부활신앙이란 그렇게 살아야만 부활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부활신앙은 죽어도 천국 간다는 말로 마음의 위로를 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부활할 것입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고전15:13).”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태16:25).” 부활신앙으로 삽시다. 부활은 모든 장애물을 넘는 능력이 있습니다. 부활은 죽음의 세력을 이깁니다. 이 부활신앙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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