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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불행은 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말씀의 왜곡으로 인해 들어왔습니다. 창세기 2-3장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사건을 기록합니다. 그들의 죄는 뱀의 유혹으로 시작되었고, 그 유혹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일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뱀의 유혹을 통해 하와는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이 ‘죽을까 하노라’로 바뀌고, ‘먹지 말라’는 말씀이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바뀌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동산 중앙에 있는 실과’(동산 중앙에는 생명나무도 있었음)로 바뀌었습니다.

일단 하나님의 말씀이 왜곡되기 시작하면 사단은 매우 합리적으로 보이는 방법으로 다시 재공격을 합니다. 사단은 창세기 3장 5절에서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뱀을 통해 사단의 이 말은 상당히, 아니 어느 정도는 현실적으로 맞는 말이 되었습니다. 즉 ‘너희 눈이 밝아’라는 말은 실제로 아담과 하와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의 몸이 벗은 것을 알게 되었고, ‘선악을 알게 된다’는 말은 그들이 악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음을 볼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과 같이 되어’라는 말은 아담과 하와가 사랑으로 하나님과 맺었던 관계가 이제는 ‘경쟁관계’로 인식하게 된 것을 통해 보여줍니다. 그들은 뱀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말을 들으면서 하나님과 같아지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한 면이 맞는다고 다 맞는 것은 아닙니다. 일리가 있다는 말은 사실 매우 위험한 말일 수 있습니다. 절반의 진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합리적인 것이 진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실망해서 예루살렘으로부터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사건을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고,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여행길이 위험하였기 때문에 특별히 의심할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함께 동행해서 여행의 위험을 감소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동행하는 사람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알지 못해도 함께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 두 제자도 예수님을 그렇게 생각하고 동행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습니다. ‘당신들이 지금 주고받는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두 제자 중 글로바라는 제자가 그동안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나사렛 예수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분은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말과 일에 능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예수님께 사형 언도를 내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분이라고 소망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결국은 죽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들리는 소문에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갔었는데,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천사들을 통해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하시면서 그들에게 구약성경을 하나하나 설명하시면서 그리스도께서 이런 고난을 받고 그 후에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을 설명하셨습니다. 즉 주님께서 고난을 받아야 하는 것은 이미 성경에서 예언하고 있는 매우 분명한 진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살아계실 때 여러 번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제자는 십자가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이어져 오는 주님의 부활의 소식을 들으면서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모르고 있었던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왜곡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말씀을 모르고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의 위대한 기적과 능력 행하심과 병 고침,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놀라운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난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경험한 예수님 정도라면 굳이 고난이라는 터널을 지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죽지 않고 부활이 가능하겠습니까? 어떻게 고난 없이 영광을 맛보겠습니까? 어떻게 십자가 없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요한복음 12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씨를 뿌리지 않고, 그 씨가 죽지 않고 어떻게 열매는 맺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교회가 복음을 왜곡하는 자리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고난 없는 승리를 선포하고, 죽음 없는 부활을 외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지금 우리가 믿지 못하는 것은 부활이 아니라 고난이 아닐까요. 지금 우리에게 부담이 되고 믿기 힘들어 하는 것은 실존적인 부활이 아니라 고난이라는 사실을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도 ‘고난 받음’에 대한 이유를 모릅니다. 그 분이 메시야임을 믿었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라고 믿고 바랐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 결과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낙심 가운데 그냥 머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단순논리로 말해서 죽으면 천국 가는데,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비록 우리가 지금 고난을 받아도 주님께서 더 큰 것으로 갚아 주시고 채워주실 것을 믿는데,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욕을 좀 먹는다고 그것이 문제 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문제는 고난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주님의 고난을 보면서도 이해하지 못했고, 절망했던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처럼 우리는 고난 앞에서 어쩔 줄 몰라 당황하고 있습니다. 고난은 우리 안에 없을 것이라고, 없기를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말씀의 왜곡일까요? 그리고 이런 왜곡된 믿음의 결과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이번 한 주간은 고난주간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얼마나 큰 고난과 아픔이 있으셨는지에 대해 묵상하면 주님 앞에 새롭게 나가는 한 주간입니다. 이 기간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우리 앞에 다가오는 고난의 의미를 묵상하고, 주님 앞에 새롭게 서는 주의 신실한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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