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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과 은혜를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또한 “사람들 마음 속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전3:11)”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누릴 진짜 풍성한 삶은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아직 천국에서 살지 않고 이 땅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천국의 영광스런 삶을 누리기 원하시는데, 하지만 그 때까지 이 땅에서 그냥 견디다가 천국에 오기를 기대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전인적인 회복을 이루기 원하십니다.

아빠가 며칠 동안 출장을 갔다고 돌아오게 되면 집에서 자녀가 아빠를 기다립니다. 정말 보고싶어 합니다. 그러면 그 자녀는 건강한 자녀입니다. 부부가 서로 떨어져 살 때 서로 보고 싶어하고 매일 통화를 하면서 삶의 세밀한 부분까지 나눈다면 그 가정은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일 것입니다.

필립 얀시는 “욕망은 하나님을 향한 깊은 갈증의 왜곡된 표현”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시카코 변두리에 살다가 시내로 거쳐를 옮기고 난 후 시내로 갈수록 성적인 열기가 강한데 놀랐다고 말합니다. 지식과 기술이 발달하고 진보한 문화일수록 동물적이고 원초적인 성적 욕구에 더 깊이 빠져든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일이 생길까요?

헨리 나우웬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에이즈 환자를 상대로 사역을 했습니다. 모든 에이즈 환자가 다 성적 문란으로 병이 든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헨리 나우웬은 자신이 돌보는 에이즈 환자들을 돌보면서 그들의 난잡한 성생활 이면에 숨겨져 있는 슬픈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가슴 아파합니다. “그들은 죽도록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말 그대로 죽고 있지요.”라고 그는 말합니다. 사랑에 목말라하는 그들의 내면 세계를 본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왜 그토록 성적인 문제에 노출되어 있을까요?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공급될 때 이길 수 있습니다.

필립 얀시는 이런 모습 이면에 하나님을 향한 갈증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왜곡되어 있는 하나님을 향한 갈증입니다. 현대 문명의 이기를 누리면서 내적으로는 더욱 더 공허함을 느끼는 것이지요. 인간관계의 친밀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찾으려고 몸부림치지만 잘못 착고 있습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 여인을 볼 수 있습니다. 다섯 명의 남편이 있었던 여인입니다. 지금 있는 남편도 자기 남편이 아닙니다. 그녀는 대낮에 물을 길르러 올 수밖에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우물물을 길르러 왔지만, 사실 내적인, 그리고 영적인 목마름이 있는 여인이었습니ㅏ. 그런데 그 여인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대화하는 중에 그 분이 선지자임을, 아니 메시야임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하며 동네에 들어가 외칩니다. 관계가 해결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 속에는 메시야에 대한,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그 목마름이 예수님을 만나면서 그 안에 숨겨진 목마름이 드러났습니다. 메시야에 대한 소식을 마을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프랑스 성직자 장 설리반이라는 사람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혹은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느라고 절대자 하나님에 대한 갈망을 억누르고 있어도 실상은 하나님을 찾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야단만 맞고 자라면 인격이 삐뚫어집니다. 거친 말을 하고 행동이 험해지며, 반항적인 성격을 갖게 됩니다. 그것은 부노의 사랑에 대한 갈증의 표현입니다. 부모의 사랑이 공급되어야만 회복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빼뚫어진 성품 자체가 곧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고 갈증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치료되어야 할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인간은 모두 다 삐뚫어졌습니다. 모두 다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결핍으로 성품이 왜곡되고 미움과 시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런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을 먼저 회복하시기 원하십니다. 출장가신 아빠를 만나기 전에 아이는 아빠를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고 기다리는 마음이 성도에게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내면에 회복되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그 일들을 위해 사역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면에서 주님의 사역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가버나움에서 처음으로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세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말씀을 전하셨고, 귀신을 쫓아내셨으며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이 세 가지는 주님께서 이 땅에서 행하신 중요한 사역의 중요한 중심 축을 이루는 것들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사역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 나라고 이끄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의 모습을 갖도록 인도하십니다.


첫째는 말씀 사역입니다. 말씀은 예수님의 사역에서 항상 첫번째 사역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고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 말씀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거울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려면 우리 자신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내 입장에서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빛으로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빛을 보는 것이 아니라 빛 앞에 서는 것입니다. 빛을 보는 사람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빛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자신을 보는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4장 13절에는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심으로 사람들을 그 분의 빛 앞에 세우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두번째 사역은 귀신을 쫓는 사역입니다. 귀신이 들렸다는 말은 정신분열이나 정신이상과는 다른 현상입니다. 귀신 들림은 다른 인격이 자신 속에 들어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자신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약해서 못하는 것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악한 영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목소리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말의 내용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끔직한 일이겠습니까?

누군가를 미워해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미움이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그 미움이 사로잡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미워할 이유는 사실 없습니다. 그런데 마음 대로 되지 않습니다. 결국 자신의 마음만 황폐하게 변해버립니다. 내 정신세계를 황폐하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미움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귀신 들림의 현상입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행하신 사역 중에 하나는 바로 우리를 악한 영으로부터 자유케 하시는 사역이었습니다.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사역은 치유 사역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에 가셔서 시몬의 장모의 중한 열병을 치유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시몬의 장모 가까이 다가가셔서 그 열병을 꾸짖으심으로 그를 치유하십니다. 능력은 강한 곳에서 약한 곳으로 흐릅니다. 주님의 다가오심으로 그 분의 능력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예배를 통해, 기도를 통해, 말씀 가운데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그 분의 능력으로 우리를 치료하십니다. 마음을 치료하시고, 몸이 치료하십니다. 그 분은 우리로 하여금 건강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건강한 몸과 정신, 건강한 가정과 건강한 교회로 세워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과정에서 먼저 이루시는 사역입니다.


출장을  가신 아빠를 기다리는 어린아이는 건강한 아이입니다. 아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아빠를 기다리는 마음의 정도와 비례합니다. 아빠를 기다리는 것은 사실 힘든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냥 잊어버리고 살다가 어느 날 아빠가 오셔서 좋아할 수도 있스니다. 그것은 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기다림이 없으면 사랑도 없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자녀가 건강한 자녀이듯이,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성도가 건강한 성도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더 건강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성적인 유혹을 비롯해서 물질과 명예 등의 유혹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천국에서 완전한 기쁨을 누리며 살 때까지 이 땅에서 하나님을 소망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만큼 건강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를 위해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세 가지 사역을 하셨습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를 빛으로 나가 빛 앞에 서게 하시고, 자신을 보게 하십니다. 자신을 억누르고 얽매여 있는 우리를 악한 영으로부터 자유케 하십니다. 또한 우리의 연약한 정신, 병든 육체를 건강케 하심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충분히 하도록 도우십니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천국을 부분적으로 맛보게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맛보는 것이 그것이 지극히 작은 부분이라고 진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천국의 그 풍성한 삶을 맛보면서 소망 중에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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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가버나움 사역(눅4:31-44) 2008.1. 13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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