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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설교] [오디오 찬양] [오디오 경배]

주일학교 한 어린아이가 주일 교회를 가는데, 엄마가 500원 짜리 동전 두 개를 주었습니다. 하나는 예배 드릴 때 헌금하고, 나머지 하나는 돌아오는 길에 떡 볶기를 사 먹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너무 좋아서 깡충깡충 춤을 추면서 교회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500원 짜리 동전 하나를 떨어뜨렸습니다. 동전은 떼구르르 굴러가더니 수채 구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아이는 난감하고 속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가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려던 동전이 수채 구멍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어린 아이의 애교쯤으로 봐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도 이런 습관은 여러 가지 명분으로 변형되어 계속 반복됩니다. 하나님과 흥정하고 거래하는 일에 익숙해져 가는 것이죠.

David Larson이라는 사람은 “성경의 가치를 좇는 사람일수록 더 오래, 더 즐겁게 건강하게 산다.”고 말했습니다. 위의 아이는 500원 짜리 동전이 수채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너무너무 안타까워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가슴 아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변질된 믿음의 한 단면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들을 많이 일어납니다.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을 위한 열정인 것 같고, 하나님을 위한 일인 것 같지만, 실상은 자신을 위한 것이고,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심리학자 칼 융은 많은 신앙인을 치료하면서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성경이 제시하는 바른 신앙관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적 신앙관을 회복할 때 진정한 치유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라슨은 가장 좋은 건강식품을 바로 바울이 처방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 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내 방식대로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풍성한 삶’(요10:10)을 누리기 위해 오늘 본문은 두 가지 권면을 우리에게 합니다. 그것은 바로 묵상과 순종입니다.

첫 번째 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생각하라는 말은 묵상하라는 뜻입니다. 묵상은 어떤 하나를 깊이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입니다. 묵상은 성경을 공부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성경공부는 논리적 이해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공부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이에 비해서 묵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를 봅니다. 말씀의 거울로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묵상은 긴 시간을 두고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읽고 또 읽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최근 성도님들의 마음에 최소 한 주간,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성도님들의 마음과 머리에 맴돌던 말씀은 무엇입니까? 저에게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기뻐해야지’ 라고 마음먹습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사건이 주변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면 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의 기쁨을 빼앗겨 버립니다. 조금 훈련되면서 그런 일을 만나도 조금은 정신을 차리고 기뻐하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도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도 참아야 되나요? 이런 상황에서도 기뻐해야 하나요? 이렇듯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성경의 객관적인 지식을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게 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8절은 우리에게 묵상의 방향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것은 무슨 일이든지 참된 것을, 경건한 것을, 옳은 것을, 정결한 것, 사랑할만한 것, 그리고 칭찬한 만한 것을 묵상하라고 권면하십니다. 우리가 만약 기도하며 시도하던 어떤 일에 실패를 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쉽게 ‘나는 되는 일이 없어!’라고 낙심하고 중단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이럴 때 다음과 같이 고백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더 큰 뜻이 있을 거야.” “더 좋은 길로 인도 하실거야.” 이런 반응은 자연스럽거나 본능적인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본능은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반응하도록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묵상의 힘입니다. 자신을 보게 하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세우는 힘입니다.

이어서 9절 말씀을 봅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평강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정말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마음에 평강이 없으면 기쁨도 누릴 수 없고, 감사도 없고, 소망도 없습니다. 어떤 일로 막 분노하다가도 조용히 마음에 찾아오는 평강을 느낄 때 우리는 기쁨을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천지가 개벽해도 엄마 품 속에 있는 아기는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성도는 주변의 환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품에서 평안을 누리며 잠을 잘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평안이 어디서 오는가를 9절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순종입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순종할 때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순종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평강과 위로와 능력을 맛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의 발걸음을 내딛을 때 하나님의 평강을 맛볼 수 있습니다. 순종은 완벽한 이해에서 오는 게 아니고 단순한 신뢰에서 오는 것입니다.

안토니라는 35세 된 트럭 운전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중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책을 읽어본 적은 평생에 거의 없었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믿고 난 후 일 년 안에 그는 성경을 세 번 통독하면서 묵상했습니다. 그의 아내 메리도 같이 교회를 나가 믿음을 갖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다소 혼란을 겪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메리가 성경을 읽다가 질문하면 안토니 남편이 대답을 해 주는데, 때때로 대답할 수 없을 때는 이웃에 사는 유진 피터슨이라는 유명한 기독교 전문 작가를 불러서 물어보곤 했습니다. 어느 날 안토니 부부의 초대를 받고 피터슨이 그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메리는 비유에 대한 말씀을 질문했습니다. 유진 피터슨은 비유에 대해 대답했습니다. 비유를 어떻게 읽고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비교적 잘 알아듣도록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메리는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 옆에 있던 안토니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메리, 그대로 살아야 돼. 그래야 이해할 수 있어. 밖에서는 도무지 알 수 없어. 그 안에 들어가야 돼.” 이 말에 유진 피터슨은 너무도 놀라운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레오나르도 보프라는 사람은 ‘복종은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내리는 가장 자유롭고 위대한 결정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순간 하나님의 무한한 축복의 세계를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그의 진솔한 고백을 합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통해 그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았다고 말합니다. 배부를 때나 배고플 때나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보면 그냥 슬쩍 피해가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왜냐하면 배고픔이 싫기 때문입니다. 비천에 처하는 것이 싫기 때문입니다. 그저 살아가는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부요를 누리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좀 더 넉넉하고 부요함이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실은 잘못된 기대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면 바울의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 고백인지 알게 됩니다. 우리가 아는 세계적인 부자도 우리보다 훨씬 더 큰 고통으로 아파하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자식을 지키지 못하고 죽음에 내몰아 버린 부모도 있습니다. 자신의 기념비적인 해를 맞아 수많은 업적을 내세우며 자랑스럽게 보내야 할 때임에도 오히려 부끄러운 마음으로 지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곤경은 물질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이것들을 생각하고 그대로 복종하라고 권면합니다.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을 붙드십시오. 단 하나의 말씀이라도 그 말씀을 평생 붙들고 씨름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을 통해 성경 전체가 열리고, 하나님을 이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십시오. 안토니의 말을 기억하십시오. “메리, 그대로 살아야 돼. 그래야 이해할 수 있어. 밖에서는 알 수 없어. 그 안에 들어가야 돼.” 주님으로 하여금 여러분들 안에 살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배하고 다스리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주신 수많은 약속들이 모두 사실임을 알게 될 것이고, 또한 그 은혜를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충만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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