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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가나안에 살면서 흉년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애급의 총리로 있는 요셉의 초청으로 75명의 가족들이 모두 애급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들은 애급에서 430년 동안 살았습니다. 그 오랜 기간들 중에 요셉이 그곳에서 30세에 총리가 되어 110세 죽었을 때까지 약 80년의 세월을 제외하고, 그들은 거의 350년 동안 노예의 신분으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애급에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상황은 악화되어 갔습니다. 하나 나아진 것이 있다면 인구가 엄청나게 불어났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로 내려갈 때 75명이었던 야곱의 자손은 430년 후에 약 200만의 엄청난 인구로 불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노예로 살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조상들이 섬겼던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셔서 애급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애급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 일을 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애급의 입장에서 볼 때 이스라엘 민족을 순수하게 보내줄 리는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10가지 재앙을 계속적으로 일으키게 했습니다. 재앙이 내릴 때마다 애급 왕 바로의 마음이 약해져서 이스라엘 민족을 보내겠다고 하지만, 재앙이 거두어지면 바로의 마음은 다시 굳어져서 약속을 취소하곤 했습니다.

결국 마지막 재앙이 남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마지막 재앙에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어 보내줄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 민족들로 하여금 구체적으로 나갈 준비를 명령하셨습니다. 이 마지막 재앙이란 바로 장자의 죽음입니다. 애급에 있는 모든 사람과 동물들의 처음 난 것은 다 죽게 하는 재앙이었습니다. 애급 왕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위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 그리고 모든 생축의 처음 난 모든 것들을 죽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마지막 재앙에서 유일하게 살아남는 이들은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명령을 하시면서 이 날이 이스라엘의 첫 달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살 대책을 마련해 줍니다. 그것은 바로 이 달 10일에 어린 양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 양을 14일까지 가지고 있다가 14일 저녁에 양을 잡아 그 피를 문 좌우 인방과 설주에 바르게 합니다. 그리고 양의 고기와 쓴 나물과 무교병을 그날 밤 먹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애급의 모든 사람들과 생축들의 장자를 죽이실 때, 양의 피가 발라져 있는 문의 집은 그냥 넘어가시는 것입니다.

그 날 밤 해가 지면서 애급은 여기저기서 자식을 잃고, 아끼는 짐승을 잃으면서 슬픔으로 울부짖는 통곡 소리가 온 땅에 울렸습니다. 출애굽기 12장 30절을 보면, “애급에 큰 호곡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사망치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애급의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날 밤으로 바로 애급 땅을 떠나도록 명령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원히 기념이 될 만한 구원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애급에서 해방되어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날을 길이길이 기념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날을 ‘유월절’이라고 합니다. ‘넘을 유, 넘을 월’ 자를 써서 여호와께서 문 인방과 설주에 양의 피를 바를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어감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죽음을 맛보지 않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만 되면 애급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면서 기쁨과 감격으로 하나님께 유월절 절기를 지켰습니다. 양을 잡고, 그 피를 문 인방과 설주에 바르고, 쓴 나물과 무교병과 함께 양 고기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조상들이 경험했던 출애굽의 그 엄청난 역사를 되새기도록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월절이 되면 사람들은 모두 예루살렘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무려 2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몰려왔다고 유다 사가 요세푸스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15만 마리나 되는 양을 제물로 바치면서, 성전으로부터 흐르는 강은 피로 물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천 년 이상 내려온 유월절 절기는 그들에게 단지 형식일 뿐, 더 이상 어떤 감격도 기쁨도 되지 못했습니다. 내용도 없고, 중심도 없고, 마음도 없었습니다. 수많은 짐승들이 도축되면서 이를 둘러싼 이권경쟁만이 판을 칠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당신의 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안타깝게 외쳤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외쳤습니다(사1:11-1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 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이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시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화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그렇게 형식만 남아있고 피 냄새만 진동하는 예수님 당시의 종교적 상황에서 바로 그 유월절 날 또 하나의 제물로 죽으신 분이 있으셨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시작되는 정월 14일 해질 때에 양을 잡도록 되어 있었는데, 예수님은 바로 그 날 오전 9시부터 십자가에 달리셔서 오후 3시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시신을 수습한 후 무덤에 안치하실 때가 바로 해가 질 때였습니다.

유대인들의 유월절은 예수님께서 죽으신 날이었는데, 예수님은 바로 하루 전날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유월절 만찬은 조금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떡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조금 후에 다시 포도주를 따라 주시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양 고기는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무슨 의미로 주시는지도 모른 채 제자들은 그 떡과 포도주를 받아 마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을 보면서 모두 몸을 숨기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자들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유월절 식사를 먼저 하시면서, 그 때 양을 잡아 제물로 하나님께 바치는 대신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제물로 드리셨던 것입니다. 떡을 주시면서 ‘이는 내 몸이라’고 하실 때, 그리고 잔을 주시면서 ‘이는 내 피니라’고 하실 때, 그것은 바로 그 분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처음부터 죽음을 알고 준비하셨습니다. 지극히 타락한 제사장들의 손에 자신의 생명을 맡기셨습니다. 그 분은 한 마리의 어린 양이 되셔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로부터 1400년 전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급에서 나올 때 어린 양을 잡아 문 인방과 설주에 바른 것도 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상징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 때 그곳에 계셨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된 제자들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깝고 얼마나 죄송하고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다시 돌아보니 그 때로부터 약 2000년 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자기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바쳐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의 그 모리아 산은 바로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그 장소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도록 하지 않으시고, 그 대신 한 양을 수풀에 걸리게 하셔서 준비해 놓으셨었습니다. 그리고 그 양을 대신 바치도록 했었습니다. 그 때 그 양도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러고 나니 성경 전체가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지는 것을 깨닫습니다. 성경 안에 도도히 흐르고 있는, 인간의 지혜로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수 십 만 마리나 되는 양들이 의미 없이 형식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피를 흘리고 강을 피로 물들게 했던 그 양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마음의 중심 없이 드려지는 그 제물들을 보면서 ‘너희의 번제에 이미 배불렀다’고 하셨던 그 양들은 실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이시고 인류를 구원하실 계획을 성취해 가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로서, 그 상징으로서 드려지는 양들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아무런 고백도 없이, 아무런 감사와 감격도 없이 드려지는 것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 아파하셨을까요? 수많은 양들이 피를 흘리면서 죽어 가는데, 아무런 감동도 없이 제물로 드릴 양을 파는 이권에 눈이 어두워, 물질적 탐욕으로 자신의 배만을 채우는 제사장들을 보면서 우리 주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주님께서 안타깝게 말씀하십니다.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오늘 우리는 우리를 위해 죽으신 주님, 살이 찢겨 나가고, 피를 흘리시면서, 마지막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내어주신 그 주님의 대속의 죽음을 기념하는 성찬식을 거행합니다. 만약 성찬의 떡과 포도주를 마시면서, 아무런 감동도 없고, 고백도 없고, 결단도 없으며, 다짐도 없다면, 오늘 우리들도 “내 마당만 밟을 뿐”이라고 하는 주님의 음성을 다시 들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계속해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적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화하라 하셨느니라(사1:15-17).”

만약 주의 성찬에 참여하면서 아무런 마음의 감동도 일어나지 않고, 삶의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의미 없이 뿌려지는 수많은 양들의 피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 성찬을 통해 우리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 아픔을 보아야 합니다. 이 작은 떡 조각 하나와 작은 포도즙 한 잔에 우리의 굳어진 마음을 깰 수 있어야 합니다.

일 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도 전혀 변화되지 않는 삶은 아무리 종교적 허울을 쓰고 설령 제사장의 가운을 입었다고 해도, 그는 피 냄새만 풍기는 거짓 제사장에 불과합니다. 예수 좀 믿은 지 얼마쯤 되었다고 마치 경지에 오른 양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주님께서 결코 기뻐하지 않으실 모습입니다. 진실하게 자신을 돌아보면 우리는 믿음이 무엇인지 압니다. 옷은 깨끗할수록 더러운 티가 묻으면 더 크게 드러나는 법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더 주님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마치 밝은 빛 앞에 작은 티가 잘 드러나듯이 더 자신을 잘 발견하는 법입니다. 죄에 대해 더 민감해집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 자신을 내세우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저는 사실 저 자신을 비롯해서 이 자리에 앉으신 성도님들 중에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보다 믿은 지 오래 된 사람들을 더 도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것이 또한 주님의 마음이라고 확신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먼저 내려앉아야 합니다. 우리가 변화되면 교회는 변화됩니다. 우리가 먼저 변화하면 사회도 변화됩니다. 우리가 먼저 주님 앞에 서면 세상이 우리를 보고 두려워할 것입니다.

오늘 이 성찬을 대하면서 진정으로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헛되어 주님께서 또 피를 흘리시게 하지 않고, 진정으로 주님 앞에 새롭게 서는 시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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