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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펼쳐들면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신 사건이 나옵니다. 그 다음 창세기 3장에 가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계속해서 인간의 범죄와 이로 인한 고통, 그리고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를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창세기 3장의 인간 범죄의 사건을 보면서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만들어놔서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범죄 하게 했냐?’고 질문하지만, 성경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불행해진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죄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죄의 심각성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지만, 사람들은 죄에 대한 심각성을 외면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죄라는 말이 낯선 단어가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죄인(롬3:23)’이라는 말에 굳이 부정하려고 하지도 않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래서 어떻다는 건데!’라고 대답합니다. 즉 남들에게 죄인취급을 받고 욕을 좀 먹는다고 해도 돈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 오늘날 사람들의 심리적 현상이라고 느껴집니다. 패리스 힐튼이라는 모델이 음주운전으로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자랑스럽게 인터뷰를 하고 이에 대한 대가로 100만 불을 받는 현대사회의 현상은 분명 죄에 대한 불감증을 보여주는 단적인 실례입니다.

시편 32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의 마스길’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다윗의 교훈시라는 의미입니다. 배경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후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 회개한 후 지은 시입니다. 오늘날이 죄에 대해 무감각해진 시대이고, 그래서 죄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는 시대라면, 다윗 또한 왕정시대의 왕으로서 죄라는 말과는 상관없이 사는 사람입니다. 왕은 그의 말이 곧 법입니다. 왕은 백성을 심판하는 도구로서의 법을 논하지만, 자신이 법의 구속을 받지 않습니다. 그런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고백합니다. 그리고 죄 용서를 받고 1-2절에서 고백하기를 죄 용서를 받은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죄 용서에 대한 감격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이 암몬과의 전투가 벌어졌을 때 장수들을 전쟁터로 보내고 본인은 저녁에 왕궁에 있었습니다. 저녁에 지붕 위를 거닐다가 한 여자가 목욕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여인을 왕궁으로 들어오게 해서 범했습니다. 그 여인은 암몬과의 전투에 출정한 부하 장수 우리아의 아내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고 시도했고, 결국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자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의도적으로 죽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사람들은 그 일을 모릅니다. 왕이라면 그 정도는 괜찮다고 스스로 자위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루는 나단이라는 선지자가 왕에게 와서 백성들의 일을 하나 보고했습니다. 다윗 왕이시여 한 성에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부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부자는 양과 소가 많았지만, 가난한 사람은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밖에 없었는데, 그 사람은 그 암양을 어찌나 사랑했는지, 자기 딸처럼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자 집에 손님이 왔습니다.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그 부자는 자기 집에서 기르는 짐승을 잡지 않고, 가난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하나밖에 없는 암양을 빼앗아서 대접을 했습니다.

이 때 다윗은 노를 발했습니다. ‘그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바로 그 때 나단은 왕을 향해 말합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삼하 12장).’ 그 때 다윗의 마음에는 죄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죄로 인해 신음했습니다. 다윗의 표현대로 하면 진액이 변해서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마음 안에 죄에 대한 민감함이 살아났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회복되어야 할 성품 중에 하나는 바로 ‘죄에 대한 민감성’입니다. 죄가 낯선 단어처럼 느껴지고, 나와는 관계없는 말로 생각됩니다. ‘나만 죄를 짓는 게 아닌데 뭐’ 하면서 자위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이 깊어지면서 우리 안에 자기 죄로 인한 민감성이 살아납니다. 그래서 죄로 인해 괴롭게 힘들어합니다. 아프고 고통스럽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으로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문둥병 환자는 살이 썩어 들어가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문둥병 환자의 치명적인 문제는 통증을 느끼지 않는데 있습니다.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어도 마음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영적 문둥병의 징조입니다. 루터는 ‘율법의 방망이로 얻어맞은 자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랑과 사죄의 은총을 강도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랑을 강조하기 전에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역사가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예언이 없는 곳에 성취가 있을 수 없고, 율법이 없는 곳에 복음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회개가 없는 곳에 용서가 있을 수 없습니다.

성도들에겐 죄에 다한 민감성이 있고, 또 죄 용서에 대한 감격이 필요합니다. 5절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할 때 주께서 내 죄를 사하셨다.”고 했습니다. 죄 용서에 대한 감격을 고백합니다. 죄 용서에 대한 확신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여러분과 저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죄 용서에 대한 감격은 죄에 대한 민감성이 있는 자만이 누리는 은혜입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이처럼 죄에 대한 예민한 마음을 지녔습니다. 어거스틴이 그랬고,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존 웨슬 리가 그랬고, 바울과 이사야가 그랬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주를 만날 기회를 타야 합니다. 고난 받을 때, 답답할 때, 죄가 나를 누르고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가 회개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세상의 풍조를 따라 우리의 마음이 죄에 대해 무뎌지지 않도록 자신을 주님 앞에 세워야 합니다. 죄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죄 용서의 감격은 우리의 삶을 회복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누리게 합니다. 자신의 죄를 감추는 자가 아니라 주님 앞에 내어놓고 주님께서 주시는 죄 용서의 감격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일자 설교 제목 성경
728 청지기 왕 다윗(시 26:1-12) 2007. 7. 29 주일예배
» 내 허물을 자복하리라(시32:1-11), 2007. 8. 5 주일예배
726 주의 날개 아래 피한 인생(시36:1-12) 2007. 8. 12 주일예배
725 나의 소망이신 주님(시 39:1-13) 2007. 8. 19 주일예배
724 심판 뒤에 숨은 하나님의 사랑(습1:1-13) 2007. 8. 26 주일예배
723 너희를 위하는 내 몸(고전 11:23-26) 2007. 9. 2 주일예배
722 하나님의 사랑(롬8:35-39) 2007. 9. 23 주일예배
721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롬10:14-21) 2007. 9. 30 주일예배
720 세상 속에 교회(롬13:1-7) 2007. 10. 7 주일예배
719 침묵하시는 하나님(시44:9-26) 2007. 11. 4 주일예배
718 영생의 소망(시49:12-20) 2007. 11. 11 주일예배
717 다윗의 감사(시54:1-7) 2007. 11. 18 주일예배
716 곤경에 처한 다윗의 기도(시 60:1-12) 2007. 11. 18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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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 나를 수렁에서 건지소서(시29:13-28) 2007. 12. 9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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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 작은 도시 베들레헴(미 5:1-9) 2007. 12. 23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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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 평화의 왕 예수(눅2:1-2) 2008. 1. 6 주일예배
709 예수님의 가버나움 사역(눅4:31-44) 2008.1. 13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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