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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이스라엘을 통일하고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모셔왔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흔히 ‘법궤’혹은 ‘언약궤’라고도 불리는데, 그 안에는 십계명과 만나 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들어 있습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율법이고, 만나 항아리에는 만나가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40년의 세월동안 만나로 먹이시면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단 하루도 빠짐없이 자기 백성과 함께 하셨고, 그들을 지키셨습니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다른 사람들이 그의 지도력(leadership)에 반기를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제사장으로서의 영적 리더십을 주셨다는 상징으로 그의 마른 막대기,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가 담긴 하나님의 궤는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쟁터에 갈 때도 이 법궤를 가지고 갔습니다. 이 여호와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있었는데, 다윗이 이스라엘을 통일하고 여호와의 궤를 다윗 성으로 모셔왔습니다. 여호와의 궤를 모셔오면서 다윗은 너무 기뻤습니다.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해 다윗은 그 언약궤 앞에서 춤을 덩실덩실 추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 같은 다윗의 마음을 보게 하는 모습입니다. 그 날 다윗은 백성들에게 떡과 고기, 그리고 건포도를 나누어 주면서 함께 기쁨을 누리게 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다윗의 바지가 내려가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상관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왕이라도 어린아이와 같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윗의 믿음이었고, 성품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없이는 못 사는 사람입니다. 그는 어려운 곤경 중에도 언제나 하나님만을 의지했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제 여호와의 궤를 다윗 성으로 모셔 오면서 다윗의 마음에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함께 나누기를 원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백성들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복과 은혜를 누릴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그가 노래를 하나 지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본문의 시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여호와의 궤 앞으로 나아갈 때, 즉 성전에 들어갈 때 이 노래를 부르게 했습니다. 한 소절을 제사장이 부르면, 받아서 백성들이 다음 절을 부르는 것입니다. 즉 1절을 제사장이 부릅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그러면 성전에 들어가던 백성들이 2절의 말씀으로 화답합니다.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2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의 인생은 영원히 요동치 않고, 흔들리지 않는 승리의 삶을 산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합니다. 견고한 삶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주의 성전에 들어올 때마다 이것을 제사장과 함께 화답하게 함으로써 백성들이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으로 서게 하려는 의도에서 이 노래를 지었습니다. 이 시에 나오는 권면은 총 11개가 나옵니다. 오늘 우리도 이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 영원히 요동치 않는 삶을 사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각 절에 따라 네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2절입니다.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정직, 공의, 진실을 말씀합니다. 리더십의 권위자인 스티븐 코비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그리고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는 책을 써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가 쓴 또 하나의 책이 있는데, ‘원칙 중심의 리더십’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그가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이것입니다. 한 사람의 성공여부는 성격이 아니라 성품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성품이 잘 개발되어 있고, 그 다음에 성격이 좋으면 그것은 금상첨화지만, 성격은 좋은데, 성품이 좋지 못하면 그것은 언젠가는 무너진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가 말하는 성품이란 바로 사람의 됨됨이입니다. 정직과 공의로운 마음입니다. 진실한 것입니다. 인내, 극기, 자기 훈련과 같은 것이 이런 사람의 됨됨이를 만들어간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에머슨(Emerson)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성품이 아주 크게 소리치기 때문에 당신의 말은 잘 들리지 않는다.”

지난 10일(월요일) 중국의 차관급 한 고위관리가 뇌물수수로 사형을 받았습니다. 그는 정 샤오위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매우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중국의 명문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제약사 사장으로 지내다가, 그의 능력이 매우 탁월함을 보고는 바로 중국 국가약품관리국장으로 특채되었습니다. 그는 중국의 엉망인 제약업계의 풍토를 개혁하기 위해 미국의 ‘식품의약국(FDA)'와 같은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개혁의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벽에 부딪혔습니다. 정부에서는 의약품 값을 올리지 못하게 하고, 약품관리국에서는 엄격한 약품심사를 하니까 의약업계에서는 살아갈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로비였습니다. 중국의 의약업계의 엄청난 개혁가였던 이 정 샤오위라는 사람을 뇌물로 녹여버렸습니다. 대학생 아들이 홍콩에서 12만 달려를 받고, 부인이 아우디 자동차와 고급 가구를 선물로 받으면서, 정 샤오위 자신도 제약업체 사장들과의 은밀한 만남을 즐겼고,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본래는 참 정직한 사람이었던 같습니다. 죽기 하루 전에 쓴 유서에 참회하는 그의 모습을 그려주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때늦은 참회는 그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탁월한 개혁의 능력을 그를 끝까지 성공적인 인생으로 이끌지 못했습니다. 수없이 몰아닥치는 뇌물과 타협, 술수와 음모의 유혹은 그를 결국 넘어뜨렸습니다.

그 기사를 보면서 제 마음이 참 아프고 놀랐습니다. (아니 더 정직하게 말하면 황당했습니다.) 어떻게 뇌물을 받았다고 사형을 시킬 수 있는가 하는 마음이 저에게 들었습니다. 일벌백계라고 하는데, 그 사람은 무슨 죄로 일벌백계의 대표가 되어야 합니까? 안타깝더라고요. 그 상황에서 정 샤오위보다 더 자신을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우리 가운데 몇 명이나 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솔직히 저는 자신 없었습니다. 주는 것을 안 받을 수 있을까? 한 번 혹은 두세 번 정도는 굳은 결심으로 거절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고 또 주고, 몰래 놓고 가고, 아들 통해 주고, 부인 통해 주면, 누가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일로 그는 생명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목사가 주일마다 강단에서 외쳐댑니다. ‘믿음으로 삽시다.’ ‘기도하며 삽시다.’ 오늘은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정직하게 삽시다.’ ‘공의롭게 삽시다.’ ‘진실한 사람이 됩시다.’고 합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의 시대에 그런 설교가 과연 사람들의 귀에 들어올까 자문해 보았습니다. 오늘 같은 설교는 정말 피해가고 싶었습니다. 아니 제 스스로 보기에도 수준 낮은 설교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포기하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피해가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다윗 시대에, 지금부터 3,000년 전 시대에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불과 6일 전에 그렇게 자신을 지키지 못함으로 중국이라는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정부의 판결에 의해 처형당했다는 것입니다.

참 재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그만큼 죄 안 지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런데 그가 유독 대표자로 죽으면서, 온 세상 신문이란 신문에는 다 떠들썩하게 나고, 얼굴 나고, 그렇게 죽어야 하다니 얼마나 재수 없는 사람일까요? 그런데 저는 그 기사를 보면서 하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구나. 라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자의 인생이 영영히 요동치 않는다고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십니다. 그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 영영히 요동치 않는 인생을 살기 위해 언어생활을 권면합니다. 혀로 참소(비방)하지 말고, 이웃을 훼방(비난/모욕)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이것이 요동치 않는 인생, 성공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길이라고 말씀합니다. 언어가 얼마나 강력한 힘이 있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선한 말을 하려고 해도, 일단 머리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면 혀는 자동으로 몸의 상태를 따라갑니다. 거기서 언어를 절제하라고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많이 참고 삽니다. 누구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고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또 대부분 사람들은 결국 다 말해 버리고 맙니다. 나쁜 소리, 싫은 소리 안 한다고 하지만, 어느 때인가 다 쏟아내게 됩니다. 두고두고 말하고, 간접적으로 말하고, 둘러서 말하고, 표정으로 말하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말합니다.

가끔 ‘내적 치유’라든가 그 비슷한 책들을 보면, 화가 날 때 그 화를 표현하라고 말합니다. 그 말이 일리는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음에 담아두고 살면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마음에 담아두다가 스트레스로 화병이 나는 것보다는 말해서 풀어버리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학교 다닐 때 그렇게 해 봤습니다. 화를 표현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얼마 안가서 친구들이 저를 가까이 안하더라고요. 옳지 않은 방법입니다.

성경은 나를 핍박하는 자에게 오히려 복을 빌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9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을 현대어 성경에서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번역했습니다. “손해를 입었다고 보복을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축복해 주십시오. 친절하지 못한 말을 들었다고 해서 보복을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축복해 주십시오. 친절하지 못한 말을 들었다고 해서 퉁명스럽게 쏘아붙이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와주기를 기도하십시오.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장수하며 복된 나날을 살고 싶으냐? 혀를 함부로 놀려 악을 짓지 말며, 입을 벌려 거짓을 꾸미지 말아라.’” 왜 그럴까요? 거기에 생명이 있고, 거기에 은혜와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곧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그렇게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의학자들의 발견에 의하면 우리 뇌 속의 언어중추신경이 다른 모든 신경을 지배한다고 합니다. 언어중추가 모든 신경계에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즉 말을 하는 대로 몸의 모든 신경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언어가 수동적으로 반응을 했습니다. 우리는 평생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언어가 우리의 몸과 신경과 마음과 운명을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아내나 남편이 자기 신경을 매우 곤두서게 하면,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을 잠시 참고 기다렸다가 스스로에게 이렇게 외치십시오. ‘내 모든 신경세포들아 들을지어다. 이제 내가 내 입으로 선포하는 대로 따를지어다.’하고 말하십시오. ‘여보! 사랑해.’ 그러면 마음의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실 것입니다. (저는 해 봤습니다.)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아 혈기로 대하려고 할 때,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친절하지 못한 말을 들었다고 해서 보복을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축복해 주십시오.” 그리고 한 숨 쉬고 ‘얘야! 하나님께서 너를 사랑한단다. 아빠도 너를 사랑한단다.’ 그러면 내가 복을 받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언어를 절제하는 것이 견고한 인생을 살아가는 두 번째 길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4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인생이 흔들리지 않고, 영영히 견고한 인생이 됩니다.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을 변치 아니한다.”고 말씀합니다. 스티븐 코비가 그의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원칙 중심의 리더가 돼서 성공하는 사람이 될려면 하루에 최소한 한 시간 정도는 성경을 보고 기도하고 운동으로 자신의 몸을 세우는데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신체적, 정신적, 관계적, 영적 건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성경을 완전히 copy했습니다. 그 책을 보면서 성경에서 인용했다고 생각되는 것을 기록했습니다. 거의 매 페이지마다 다 성경적 근거를 댈 수 있는 말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21세기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라고 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특징 중에 하나가 영성의 시대입니다. 사람들이 영적인 일에 관심을 많이 가집니다. 이런 영적 삶에 대한 관심은 하나님을 찾는 인간의 깊은 내면의 심리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가짜라도 잡고 있어야 된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능력을 공급받지 못하면 승리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규칙과 좋은 성품이 있어도 그 성품을 개발할 힘이 없고, 좋은 규칙을 따를 내적 힘이 나에게 없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영적 능력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음식을 먹어야 우리의 몸이 건강하고 날마다 새 힘을 얻는 것처럼, 영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주시는 생명의 힘을 공급받을 때만이 승리하는 견고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십시오. 그러므로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오늘 QT 자료를 보시면서 다시 한 번 기도하며 살 것을 다짐하십시오. 다시 한 번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 앞에 나아갈 것을 결단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삶을 세울 것입니다.


네 번째 영영히 요동치 않는 인생을 살기 위해 풍성한 삶을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5절을 보면 이자 놀이를 하는 것과 뇌물을 받으면서 불의를 행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자놀이와 뇌물을 멀리하는 사람이 견고한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이면에 깔려 있는 원리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풍성함입니다. 하나님은 부요하시고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남의 것을 착취하고 빼앗아서 부요해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본래부터 인간을 그렇게 살도록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가 아닙니다.

우리를 지배하는 세상의 논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엔트로피 법칙과 제로섬(zero sum)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이 법칙은 우리가 지구상에서 가지고 있는 기회 혹은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많이 가지면 나는 적게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기 구슬 10개가 있는데, 한 사람이 다섯 개를 가지면, 다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도 다섯 개가 됩니다. 하지만 한 쪽 사람이 아홉 개를 가지면 다른 사람은 하나 밖에 갖지 못합니다. 이것이 제로섬 법칙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런 법칙의 원리에 세뇌되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정된 에너지와 축복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내 주머니에 있는 돈을 보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얼마만큼 가지느냐에 따라 내 주머니에 돈이 들어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자신을 남과 비교합니다. 남이 잘되면 속이 쓰리고, 마음이 아픕니다. 상대적 빈곤감을 갖습니다. 그 이유는 마치 다른 사람이 내 것을 빼앗아서 잘 되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제로섬의 법칙에 지배받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부요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엔트로피 법칙과 제로섬 법칙에 지배받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얼마든지 주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스티븐 코비는 우리에게 풍요의 성품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이 세상에는 모든 사람들이 쓰기에 충분한 자원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 세상에는 한정된 자원밖에는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한정된 것입니다. 엔트로피 법칙은 사실입니다. 제로섬 원리도 우리는 날마다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풍성함이 있습니다. 그 분은 지금도 창조적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분께로 가면 그 분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십니다. 이 풍성한 은혜에 대한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영영히 요동치 않는 삶을 살게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다윗은 주의 장막에 들어갈 자가 누군지에 대해 질문합니다. 그리고 주의 장막에 들어갈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않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주의 장막에 들어갈 자는 1) 정직과 공의, 그리고 성실입니다. 사람의 됨됨이라고 스티븐 코비는 말했습니다. 이 성품이 개발되지 않으면 한 순간에 무너집니다. 중국의 전 식품약품감독관리국 국장이었던 정 샤오위씨는 자신의 성품을 지키지 못해서 결국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것은 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사건은 오늘 우리들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바른 성품으로 개발되어야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또한 언어의 변화입니다. 삶의 상황이 언어를 지배하게 하지 말고, 우리의 언어로 하여금 우리의 모든 신경 계통을 지배하게 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입술로 긍정적이고 믿음 있는 사랑의 언어를 고백하면, 우리의 모든 신경조직은 그렇게 따라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고백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결단하십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오늘날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영적인 영역을 위해 자신의 삶을 투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풍성하게 해야 합니다. 육체적, 정신적, 영적 삶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자기 삶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주님과의 구체적인 인격적 관계를 나눌 때, 우리의 삶이 더욱 풍성해 집니다.

마지막으로 풍요의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상대방이 잘되면 내가 손해 본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한하게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다른 사람이 많이 가졌다고 불만하거나 비교의식에 빠져서 불행한 삶을 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성도님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들에게 놀라운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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