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샬롯츠빌한인교회

주일설교

조회 수 7973 추천 수 175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왕이었던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에게 왕권을 빼앗긴 적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의 신하들과 함께 도망을 갔습니다. 그 때 피난을 가는 다윗 일행을 보며 저주를 퍼붓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시므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다윗을 보고 ‘이 살인자야 꺼져라. 악한 자야. 영원히 망해 버려라(사무엘하 16장 9절, 현대어성경).’라고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다윗의 신하들이 분노하며 시므이를 죽이려고 했지만, 다윗은 죽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나에게 말씀하실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 압살롬은 죽고 다윗 왕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시므이는 이제 정말 죽었구나 생각하고 다윗 앞에 엎드려 목숨을 구걸합니다. 역시 아비새라는 장군이 그를 죽이려고 했으나 다윗은 ‘오늘 같은 날 왜 사람을 죽여야 하냐’고 하면서 그를 살려주었습니다.

얼마의 세월이 지난 후 다윗이 죽기 전 솔로몬에게 왕권을 물려주면서 그에게 시므이에 대해 지혜롭게 처리하라고 유언했습니다. 저는 나에게 용서를 구해서 용서하긴 했으나 여전히 악한 자이고 반골기질이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시므이를 불러서 예루살렘 안에서 집을 짓고 살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예루살렘 안에만 있으면 문제없습니다. 그런데 삼 년 정도 지나 그의 종 둘이 도망을 가자 그를 잡으러 예루살렘을 떠났다가 그만 솔로몬에게 알려져서 죽게 됩니다. 시므이는 처음부터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안에만 머문다면 살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시므이에게 생명의 장소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시므이처럼 죄로 인해 다 죽을 운명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도피성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인구는 남자만 60만 명 정도였고,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치면 약 200만 명 정도 되었습니다. 그들은 상당기간동안 중앙집권정치가 아니고 지파별로 다스리는 체제를 유지했습니다. 갑자기 가나안으로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족속을 물리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바로 그들 안의 치안문제였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 때로는 목숨을 잃게 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습니다. 치안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던 시대, 하나님은 그들에게 도피성을 만들도록 지시합니다. 도피성은 요단 강 동편으로 세 개, 서편으로 세 개를 세우도록 했습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어서 어디서 어려운 일을 만나도 쉽게 갈 수 있도록 했고, 도피성 앞에는 길을 잘 닦아 놓았습니다.

도피성으로 들어가는 경우는 이런 상황입니다. 어떤 사람이 도끼를 나무를 하다가 의도치 않게 도끼가 빠져서 날아가서 옆에 있는 사람의 머리를 쳐서 죽게 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죽은 자의 가족들은 뜻하지 않은 재앙에 슬픔과 분노가 쌓일 것입니다. 하지만 가해자는 의도치 않았기에 죽게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죽은 자의 친척들은 그에 대한 분노의 마음으로 그를 죽이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경우 가해자는 도피성으로 달아나야 합니다. 그러면 도피성에 있는 성읍 장로들이 그를 심문하고 확인한 후 그를 도피성에서 보호합니다. 도피성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곳입니다. 사람들 간의 갈등과 분노로 필요 이상의 분쟁과 보복 살해와 같은 상황을 막는 역할을 합니다.

여러 해 전에 Midwest 병원 응급실에서 응급환자 5명이 급하게 후송되어 왔습니다. 그들은 건물이 붕괴되어 죽은 것도 아니고, 버스가 충돌해서 죽은 것도 아니며 총격사건이나 화재로 인해 죽은 것도 아닙니다. 시골길을 가던 차 한 대가 앞 차를 추월하려고 했는데, 그만 앞차는 양보하려하지 않았습니다. 두 대의 차는 서로 추월하고 추월당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그만 앞에서 오는 다른 차에 의해 충돌해서 5명이 죽은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에서 일어나는 자동차 사고의 가장 큰 원인들 중 하나가 바로 화라고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분노가 교통사고로 이어집니다.

화를 내는 것은 인간에게 자연스런 감정표현입니다. 화가 나는데 표현하지 않으면 오히려 마음 안에 쌓여서 더 큰 문제를 발생하게 하비다. 그리고 화를 억압할 때 어느 순간 화산처럼 폭발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적 치유를 하는 상담학자들은 화가 날 때 화를 표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내적 치유를 위해 욕을 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욕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어이 욕을 하게 해서 자기 안에 있는 분노를 끌어내게 합니다. 그리고 자기 안에 있는 분노를 보게 합니다.

그래서 내적 치유에 관한 책이나 세미나에서는 감정표현을 솔직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감정표현을 솔직하게 하는 것은 어느 선에서는 맞습니다. 그러나 항상 맞지는 않습니다. 제한된 범위 안에서 맞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도피성으로 가야 합니다. 상대방과의 대화를 중단하고 우리의 도피성인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문제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감정의 남은 찌꺼기들을 모두 남김없이 쏟아내야 합니다.

시므이는 예루살렘 안에 있어야 삽니다. 부지 중 살인한 자는 도피성 안에 있을 때 그의 생명이 온전할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다른 모든 것들을 누릴 수 있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방주 안에 있을 때 자유합니다. 성경을 보면 인간의 자유는 항상 제한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자유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 마음 안에는 경계선에 머무르려는 심리가 있습니다. 도피성 안에 살아야 하지만 도피성을 벗어나 바깥세상도 궁금한 것입니다. 시므이는 예루살렘 안에 머물러야 했지만 때로는 예루살렘을 벗어나고픈, 또 그런 필연적인 이유가 그에게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생명을 잃게 했습니다. 성도들 중엔 가끔 이런 질문을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술 먹는 것은 정말 죄인가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하나님을 뜻대로 살고, 어떻게 하면 좀 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을까요?” 첫 번째 질문은 경계선을 찾는 질문입니다. ‘어디까지가 예루살렘인가’ ‘어디까지가 도피성의 경계선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은 어떻게 하는 것이 도피성에서 얻을 수 있는 풍성한 삶의 방법을 구하는 질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도피성인 주님의 품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세상에서 바쁘고 지친 우리의 영혼을 치유하시고 회복하시길 원하십니다. 삶의 문제가 있습니까? 우리의 도피성인 주님께서 나아오십시오. 도피성인 주님의 품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십시오. 어디가 경계선이냐고 묻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이냐고 묻지 마십시오. 경계선을 묻는 질문은 바람직한 질문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누릴 수 있는지를 물으십시오. 경계선에서 머뭇머뭇하지 마시고 도피성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도피성의 안전을 의지하고, 예루살렘의 화려함을 즐기시고,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경험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List of Articles
번호 일자 설교 제목 성경
749 인자를 파는 사람(마26:14-29) 2007. 3. 11 주일예배
748 죽음을 통과한 승리(마27:45-61) 2007. 3. 18 주일예배
747 사랑의 비밀(아4:1-16) 2007. 3. 25 주일예배
746 나귀 타고 입성하신 주님(눅19:28-44) 2007. 4. 1 종려주일설교
745 부활 신앙(고전15:12-20) 2007. 4. 8 부활주일예배
744 열 두 돌의 기념비(수4:1-9) 2007. 4. 15 주일예배
743 징계를 통한 강한 믿음(히12:5-8) 2007. 4. 22 북한선교후원예배
742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수10:1-11) 2007. 4. 29 주일예배
741 은총을 받은 자녀(삼상2:26) 2007. 5. 6 어린이주일 예배
740 온전한 가정(엡5:22-33) 2007. 5. 13 주일예배
» 도피성으로 가라(수20:1-9) 2007. 5. 20 주일예배
738 여호와만 섬기라(수24:14-18) 2007. 5. 27 주일예배
737 하나님의 은혜(엡2:1-10) 2007. 6. 3 주일예배
736 반응하는 신앙(엡4:25-32) 2007. 6. 10 주일예배
735 말씀묵상과 기도(엡6:10-17) 2007. 6. 17 주일예배
734 회복의 하나님(욜3:13-21) 2007. 6. 24 주일예배
733 시냇가에 심은 나무(시1:1-6) 2007. 7. 1 주일예배
732 다윗을 세우시는 하나님(시8:1-9) 2007. 7. 8 주일예배
731 주의 장막에 거할 자(시15:1-5) 2007. 7. 15 주일예배
730 여호와여 구원하소서(시20:1-9) 2007. 7. 22 주일예배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1 Next
/ 41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