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샬롯츠빌한인교회

주일설교

조회 수 9193 추천 수 158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아가서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노래 중에 노래’라는 뜻이고, 그 의미는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는 노래라는 뜻입니다. 아가서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영화를 누린 솔로몬이라는 왕과 술람미라는 시골에서 자란 한 소녀와의 사랑을 노래한 이야기입니다. 솔로몬에 대한 평가는 비교적 부정적인 면이 많이 있지만, 이 이야기는 솔로몬이 왕이 되기 전부터 진행된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가 후에는 많은 부인과 후궁들을 두었지만, 아가서를 보면 그가 정말 사랑한 사람은 바로 술람미 여인 한 사람뿐이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합니다.

솔로몬은 왕이 되기 전에 양을 치는 일도 했었습니다. 그런 일은 당시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 하는 일이었고, 또한 다윗 왕의 자식인 왕자들도 백성들을 알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런 일들을 했습니다. 그것은 왕이 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술람미라는 여인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그가 들판에서 양을 칠 때였습니다. 술람미 여자는 포도원을 재배하는 농부의 딸이었고, 양을 치는 일도 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자기 몫의 일만 한 것이 아니라, 오빠들의 일까지 해야 했습니다. 아가서 1장 6절을 보면, 술람미 여인이 얼굴이 시커멓습니다. 그것은 내 어미의 아들들이 술람미 여인을 싫어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오빠들은 고약했습니다. 더욱이 오빠들을 ‘내 어미의 아들들’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오빠들은 어쩌면 아버지가 다른 오빠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술람미 여인의 삶은 어려서부터 많은 고난과 아픔을 지닌 여자였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늘 밖에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의 얼굴은 검었습니다. 한 번도 얼굴에 무엇을 바르거나 화장을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자신의 얼굴을 ‘게달의 장막’같다고 표현했습니다. 게달이라는 말은 ‘검은 장막’이라는 ‘카타르’에서 파생한 말로서, 아라비아 사막의 유목민, 즉 베두인 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유목민들이 늘 장소를 옮겨가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안정된 가옥을 가질 수 없었고, 늘 임시로 치는 천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그 장막이란 늘 더럽고 때 묻은 것입니다. 이 장막은 한 번도 씻거나 빨지 않는 물건입니다. 성경은 술람미 여인의 얼굴이 바로 게달의 장막과 같았다고 말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볼품없고 못생긴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삶을 살던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이라는 당시 가장 부강한 이스라엘의 왕자를 만났습니다. 솔로몬과 사랑을 나누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아름답게 서로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당시 왕자의 신분이었던 솔로몬과 시골에서 포도원을 재배하며 살던 농부의 딸이 만나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위기가 그들에게 찾아왔습니다. 신분상의 차이로 인한 절망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로 인해 술람미 여인은 의기소침하여 자신을 감추고 숨어있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는 서로 사랑에 빠져 있는데, 그만 포도원에 작은 여우가 들어와서 포도원을 몽땅 망쳐놓는 일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가족들에게 정신을 딴 곳에 팔고 다닌다고 야단을 맞습니다. 제 주제도 모르면서 무슨 왕자와 연애를 하냐고 멸시와 핍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의 사랑으로 술람미 여인은 그 모든 상처를 치유 받습니다. 점점 더 자신 있어지고, 아름다워집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신비이고 비밀입니다. 사랑하면 고난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면 아픔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면 더불어 더 자신 있어 집니다. 사랑하면 더 당당해집니다. 신앙도 마찮가지입니다. 신앙을 오래 하다보면 교회생활이 몸에 배고, 봉사도 하고, 책임도 주어집니다. 그러면 때때로 상처도 입기도 합니다. 아픔이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피해갈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수록 예수 안에서 더 강해지고 아름다워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다 상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본래 왕궁에서 자란 사람이기 때문에 여인들의 향수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만약 술람미 여인이 자기가 구할 수 있는 싸구려 향수로 솔로몬의 마음을 사려고 했다면 술람미 여인은 결코 솔로몬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많은 여인들은 솔로몬에게 사랑을 구걸 했습니다. 솔로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썼습니다. 몸에 향수를 뿌리고 솔로몬의 마음을 구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런 것에 감동을 받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그가 사용하는 모든 그릇이 다 금으로 되어 있고, 왕을 호위하는 군사들의 방패까지도 금으로 도금을 입혔을 정도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하나님을 사랑을 구걸할 때가 있습니다. 얼굴에 화장을 하고, 진한 향수를 뿌리고 보석으로 몸을 치장합니다. 이런 봉사, 저런 봉사 열심히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알아주기를 기다립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수고를 알아주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상처만 깊어집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의 사랑을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사랑을 누렸을 뿐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정말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놀라운 복음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것을 믿지 못하고 자꾸 사랑을 구걸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을 믿어보십시오. 그러면 술람미 여인처럼 자신이 변화되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자신감이 생기고 점점 더 당당해질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질투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솔로몬 왕의 사랑을 받는 여인이 누구를 부러워하고, 누구를 질투하겠습니까?

본래 인간은 모두가 죄 가운데 빠졌습니다. 냄새나는 삶을 살아갑니다. 욕심과 시기심, 질투, 자기중심적인 태도, 음란한 마음, 서로 조화롭게 살지 못하고 나누고, 파당을 만들고, 내 편 네 편을 만들어갑니다.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추하고 더러운 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야말로 게달의 장막과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지 모릅니다. 그 사랑은 온 인류를 회복하시는 일을 합니다. 우리는 그 분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 사랑이 인간을 회복시키십니다. 우리 안에 있는 욕심과 탐욕을 없애십니다. 시기심과 추하고 더러운 자아를 내려놓게 하십니다. 자기 자신보다 남을 더 세워주는 일을 기뻐하는 일을 하게 하십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일하지 않고, 진심으로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헌신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이 모든 위기를 극복하고 솔로몬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아3장). 오늘 아가서 4장에서는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과 결혼을 한 후 첫날 밤 신방에서 너울을 쓰고 있는 신부를 보면서 신랑 솔로몬이 예찬하는 내용입니다. 솔로몬은 신방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한 말이 이것입니다(1절).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입니까? 이것이 솔로몬이 첫날 밤 자기의 아내가 된 술람미 여인을 보고 한 말입니다. 시골에서 양이나 치고, 포도원에서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 까지 일하면서 얼굴은 검게 타서 볼품없던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만나면서 그의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아름다워지고, 예뻐지기 시작했습니다. 당당해지고 자신감이 넘치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겸손하고 혀 밑에 꿀과 젖이 있어서(11절) 술람미가 말을 할 때마다 상대방을 기쁘게 합니다. 결코 아부를 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을 늘 격려하고 세워주는 입을 가졌습니다. 이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서 솔로몬은 탄성을 지릅니다.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주님 안에서 변화된 우리의 인격을 보시면서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참 좋구나.’ ‘어쩌면 이렇게 예쁠 수가 있을까!’ ‘내가 어떻게 이렇게 예쁜 여인을 만날 수 있었을까!’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향해 하시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은 계속해서 그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첫 번째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은 비둘기 같고’라고 말합니다. 비둘기는 순결함을 상징합니다. 몸이 피곤하면 가장 먼저 그 피곤을 나타내는 지체가 바로 눈입니다. 또한 눈은 우리의 마음을 보여주는 창입니다. 눈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눈이 맑은 사람은 마음이 맑은 사람입니다. 마음이 불안한 사람은 그 눈에서 불안을 드러냅니다. 악한 마음을 품으면 눈빛이 달라집니다.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합니다. 눈은 확실히 마음의 창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의 눈을 보면서 그의 눈이 꼭 비둘기 같다고 말합니다.

이에서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구나.’라고 말합니다. 길르앗 산기슭에 많은 염소 떼들이 무리지어 누어있습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보면 까맣게 무리지어 있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은 금발 머리를 아름답다고 하지만, 당시는 머리숱이 많고 까만 머리가 아름다웠습니다. 그것은 건강미가 넘치는 모습입니다. 인위적으로 만든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이어서 술람미 여인의 ‘이’를 보고 칭찬합니다(2절).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온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구나.’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과 첫날 밤을 보내면서 살짝 살짝 웃을 때마다 입술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이가 마치 털 깎인 암양, 곧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다고 묘사합니다. 두 마리의 새끼 양이 함께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처럼 그렇게 윗니와 아랫니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빨간 입술은 그녀의 건강함을 보여줍니다.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너울 속의 뺨은 석류같이 붉었습니다. 부끄러워하며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고, 열정이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4절입니다. '네 목은 군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일천 방패,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고‘ 예루살렘에 있는 여인들 중에는 솔로몬을 사랑하는 여인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 여인들의 사랑은 왠지 당당하지 못했습니다. 솔로몬이 왕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그들은 솔로몬 앞에 비굴했습니다. 하지만 술람미 여인은 조금도 비굴하지 않았고, 오히려 당당했습니다. 얼마나 당당한지 일천 대의 방패를 달아 놓은 다윗의 망대와 같았습니다. 그녀는 솔로몬의 사랑에 정말 감사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늘 자신 있었습니다.

5절입니다.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노루 새끼 같구나.” 솔로몬은 이제 술람미 여인의 가슴을 봅니다. 그녀의 가슴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둥이 노루 새끼 같다고 말합니다. 노루 새끼가 얼마나 예쁜지 아십니까? 생명력을 말합니다. 어린 노루 새끼의 생명력을 그는 보았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생명력을 지닌 여인이었습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열매를 맺는 성도입니다.

그리고 7절의 결론입니다.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 성도 여러분! 이 아름다운 고백들이 과연 술람미 여인의 외모에서 나온 아름다움이었을까요? 그냥 태어나면서부터 만들어진 것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받은 술람미 여인의 겸손과 자신감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움입니다.

이어지는 13-15절에서는 술람미 여인을 한 낙원에 비유합니다. “이 낙원에서는 석류 같은 맛있는 열매가 나고, 나르드, 사프란, 창포, 계수나무 같은 온갖 향나무도 나고, 몰약과 침향 같은 온갖 그윽한 향료가 나는구나. 그대는 동산의 샘 생수가 솟는 우물, 레바논에서 흘러 내리는 시냇물이어라.” 얼마나 풍성한 모습인지 모릅니다. 이 낙원에서 나는 온갖 과일과 향료, 그리고 생수는 모든 사람들의 목을 축이고 생명을 구원합니다. 이 과실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을 치료하는 약으로 쓰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치유합니다. 새롭게 합니다. 소망을 줍니다. 낙심 중에 있는 이들을 새롭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낙원에 있는 과실들의 생명력입니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이러한 낙원에 비유합니다. 그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놀라운 힘입니다. 솔로몬과의 사랑을 통해 그녀가 가지고 있는 힘을 보여줍니다.

이런 역사가 오늘날 교회 가운데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교회가 바로 그런 역사를 이루어가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옵니다. 그 사랑은 겉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사랑을 누리고, 그 사랑 안에 들어가 보면 그 안에 얼마나 아름답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것을 12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자기 신부를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이라고 묘사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신비한 표현입니다. 자기 신부는 분명 동산과 같이 아름답습니다. 우물과 같이 마실 것을 줍니다. 샘처럼 끊임없이 쏟아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잠근 것이고, 덮여 있습니다. 봉해져 있습니다.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그녀에게서 그렇게 놀라운 생명력과 힘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보통 사람들을 알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에게는 사랑의 비밀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비밀입니다. 겉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안보일지 모르나, 그 안에 엄청난 생명과 힘이 있습니다. 솔로몬의 사랑을 받은 술람미에게 나타난 사랑의 능력처럼 하나님은 오늘 성도들의 삶 가운데서 이런 놀라운 비밀의 능력이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이 비밀을 지닌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16절에서 신부는 이렇게 힘차게 외치고 있습니다.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북풍과 남풍은 술람미 여인에게 닥쳐오는 환난과 어려움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환난의 바람이 불어오면 이 바람은 동산에 있는 모든 과일과 몰약과 향품의 향기를 날립니다. 놀랍게도 고난의 바람은 낙원의 많은 과실로 비유되는 술람미 여인의 향기를 날려서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고 즐겁게 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이제 당당합니다. 어떤 고난에서도 조금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이제 낙원의 수많은 과실처럼 그렇게 영글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불어오는 고난은 그를 더욱 더 빛나게 합니다. 그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나게 합니다. 성도에게 오는 고난은 결코 성도를 넘어지게 하지 못합니다. 성도는 어려움을 당하면 당할수록 더욱 더 빛나게 되어 있습니다. 고난과 어려움은 성도를 더욱 세상에 드러나게 합니다.

성도는 교회와 교회 밖에서 환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환난이 온다고 칭얼대지 마십시오. 그런 환난이 온다고 사랑을 구걸하지 마십시오. 나를 사랑해 줄 사람 없냐고 찾아다니지 마십시오.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그런 모든 것들은 다 성도에게서 나는 향기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싸구려 가게에서나 구입할 수 있는 향수입니다. 그런 것들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향기가 아니라 역겹고 구토 나게 하는 것들입니다. 당당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을 존귀하게 하십니다. 그 사랑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나의 사랑하는 자, 곧 하나님께서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를 먹기 원합니다. 우리가 고난과 환난의 바람 가운데서 아름답게 영글어져 맺은 실과를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이 성도님들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노래인지 모릅니다. 솔로몬의 사랑을 입은 술람미 여인처럼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주님의 사랑을 받고 아름다운 과실을 맺어 다시 주님께 영광의 열매를 드리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일자 설교 제목 성경
749 인자를 파는 사람(마26:14-29) 2007. 3. 11 주일예배
748 죽음을 통과한 승리(마27:45-61) 2007. 3. 18 주일예배
» 사랑의 비밀(아4:1-16) 2007. 3. 25 주일예배
746 나귀 타고 입성하신 주님(눅19:28-44) 2007. 4. 1 종려주일설교
745 부활 신앙(고전15:12-20) 2007. 4. 8 부활주일예배
744 열 두 돌의 기념비(수4:1-9) 2007. 4. 15 주일예배
743 징계를 통한 강한 믿음(히12:5-8) 2007. 4. 22 북한선교후원예배
742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수10:1-11) 2007. 4. 29 주일예배
741 은총을 받은 자녀(삼상2:26) 2007. 5. 6 어린이주일 예배
740 온전한 가정(엡5:22-33) 2007. 5. 13 주일예배
739 도피성으로 가라(수20:1-9) 2007. 5. 20 주일예배
738 여호와만 섬기라(수24:14-18) 2007. 5. 27 주일예배
737 하나님의 은혜(엡2:1-10) 2007. 6. 3 주일예배
736 반응하는 신앙(엡4:25-32) 2007. 6. 10 주일예배
735 말씀묵상과 기도(엡6:10-17) 2007. 6. 17 주일예배
734 회복의 하나님(욜3:13-21) 2007. 6. 24 주일예배
733 시냇가에 심은 나무(시1:1-6) 2007. 7. 1 주일예배
732 다윗을 세우시는 하나님(시8:1-9) 2007. 7. 8 주일예배
731 주의 장막에 거할 자(시15:1-5) 2007. 7. 15 주일예배
730 여호와여 구원하소서(시20:1-9) 2007. 7. 22 주일예배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1 Next
/ 41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