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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안식일 논쟁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제자들과 함께 밀밭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는데, 그 길에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시비를 붙었습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한다’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을 따라 함께 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의 그런 행위를 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어느 시장이나 회당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평소에는 사람들이 없는 밀밭 사이에서 있었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 중에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도 평소에는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고, 동의하는 것처럼 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을 위장한 것이지요. 하지만 어느 결정적인 순간이 왔을 때 그들은 예수님을 힐난하고 비난하고 질책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했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예수님을 향한 날카로운 비수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14절의 말씀에서 보듯이, 바리새인들은 이미 어떤 방법으로라도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유대인들이 왜 이렇게 안식일에 대해 민감했을까요?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 안식일에 대해서만 시비를 건 것은 아니지만, 안식일에 대해 유대인들은 유달리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사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매우 중요한 날입니다. 유대인들이 지키는 많은 절기와 규례들이 실은 유대인들만 지키던 것이 아니라 당시 고대 근동 지방, 즉 팔레스타인 지역에 널리 퍼져있는 관습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방인들도 할례를 행하는 족속들이 있었고, 자기들의 신전을 가지고 있었으며, 각자의 방법으로 번제를 드리고 계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만 가지고 있는 독특한 것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든 규례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 중에도 특별히 안식일에 대한 집착은 컸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안식일을 좀 더 잘 지켜보겠다는 의지로 안식일에 대한 세부 조항들을 만들어 지키기까지 했습니다. 이를 테면 안식일에는 불을 켜거나 꺼서는 안 되고, 걷는 것도 1.2킬로미터 이상 걸어서는 안 되도록 되어 있고, 무화과 두 개 이상의 짐을 드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잘 지키기 위한 세칙들이었습니다. 또한 안식일에는 어떤 노동도 하지 말 것을 율법은 분명하게 명령합니다. 심지어 안식일에 나무를 하게 되면 즉시 사형을 당하도록 하는 율법도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 제자들의 행동은 눈에 거슬리고 매우 분개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에 대해 예수님께서 이들의 도전에 대해 두 가지의 예를 들어 대답하십니다. 첫 번째는 3-4절입니다. 다윗의 사건을 소개합니다. 다윗이 비밀스럽게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울 왕의 눈에 들어 예루살렘 왕궁으로 가서 왕의 일을 도왔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을 도와 열심히 나라의 일을 하고, 전쟁이 일어나는 곳마다 가서 승리를 얻어왔습니다. 백성들은 점차로 다윗의 존재를 알게 되고, 다윗을 존경하고 칭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울 왕의 심기가 불편해졌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사울 왕을 위해 음악을 연주하고 있을 때 사울 왕이 단창을 던져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 일이 일어난 후 다윗은 도망을 갑니다. 가다가 놉이라는 땅에 이르렀습니다. 아직까지는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지기 전이었습니다. 놉이라는 땅에 아히멜렉이라는 제사장이 있었고 그가 섬기던 성막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그곳에서 아히멜렉 제사장에게 먹을 것을 요청합니다. 그 때 아히멜렉 제사장이 일반적인 떡은 없고 다만 여호와께 드렸던 거룩한 떡은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다윗에게 줍니다. 물론 다윗과 그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지난 며칠 동안 부녀를 가까이 하지 않고 성결하다는 전제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성경은 문제 삼지 않습니다. 다윗이 이 일로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었다는 것도 없습니다. 다윗의 이 사건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집니다. 오히려 다윗은 사울 왕으로부터 도망을 치는 과정에서 제사장만 먹을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는 거룩한 떡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고 더 먼 거리까지 도망갈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 상황에서 다윗과 함께 하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과연 율법의 중심 진리가 무엇인데, 그리고 그렇게 철저하게 율법대로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윗은 메시야의 그림자와 같은 역할을 한 사람인데, 성경은 다윗의 이런 모습은 아무런 문제없이 보여주고 있냐는 것입니다. 이어 나오는 또 하나의 답변이 있습니다. 무화과 두 개 이상의 무게 이상의 짐을 드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라고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안식일 하루 종일 성전에서 떡을 만들어 제단에 올려놓고, 1년 된 흠 없는 짐승을 잡아 각을 뜨고, 피를 제단에 뿌리고, 번제로 태워 하나님께 제사로 드리는 일을 매 안식일마다 행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7절에 보면,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말씀합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여기서 자비는 율법의 정신이며 목적입니다. 제사라는 말은 율법에서 보여주는 제사 규정이며 제사법입니다.


자! 여기서 우리는 안식일의 목적을 살펴봐야 합니다. 안식일이란 하나님께서 세상을 6일 동안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 쉬신 일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여섯 째날 사람을 만드시고, 마지막 날 쉬셨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0장에 십계명을 주시면서 네 번째 계명에서 안식일을 지키도록 명령합니다. 그 때 안식일을 지켜야 할 이유를 밝히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창조의 역사를 마친 후 하나님께서 쉬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창조를 기념하는 날에 하나님의 창조를 맛보고 감탄하고 찬양하는 날입니다.

신명기 5장에 가면, 다시 십계명이 나옵니다. 여기에 나오는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에 역시 안식일을 지키도록 명령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애급에서의 해방에 두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의 노예 생활과 고된 노역으로부터 구원하셨기 때문에 안식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즉 애급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안식일은 범죄 한 인간들을 재창조하는 사건, 즉 구속 사건을 성취하기 위한 날입니다. 애급에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재창조하는 사건이 바로 안식일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처음 하나님의 창조 후 쉬신 일곱째 날을 하나님과의 관계를 누리기 위해 세운 안식일의 의미의 연장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은 바로 안식일 다음 날입니다. 그리고 그 날이 바로 지금의 주일입니다. 주일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 날은 죄로 인해 사단의 종이 되었던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로 말미암아 구원받음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의 의미가 주일로 오기까지 조금씩 의미의 전환은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그 중심 진리는 동일하게 내려오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주일을 지키면서 생각할 것은 주일은 한 주의 마지막 날이 아니라 한 주간의 첫 날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일을 지킬 때 한 주간 열심히 살다가 지친 몸을 가지고 주일날 주님 앞에 나와서 쉬고 가는 날이 아닙니다. 한 주간의 첫날을 주님께 예배하고, 주님과 교제하면서 충분한 영적 육적 정신적 힘을 공급받은 후 세상에 나가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적극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주일을 잘 보낸다면 우리는 한 주간을 지치지 않고 능력 있게 살아갈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께 기쁨으로 찬송하고, 주님께 우리의 삶의 구체적인 것들을 기도로 아뢰고, 그렇게 은혜를 경험한 후 세상으로 나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주일이 얼마나 힘차고 아름다운 날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주일은 우리에게 창조적 능력을 공급받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만드실 때 설계하셨던 그 인간의 능력을 회복시키시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삶이 주일 교회에서만 거룩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우리의 세속적인 직업 현장에서 뛰는 것도 여전히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일에 하나님 앞에 나아와 힘을 공급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 우리 스스로 연마하고 닦는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사는 것을 경허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안식일도 사실은 인간에게 있어서 첫날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6일 간 세상을 창조하시는 일을 하시고 쉬신 날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입장에서는 여섯 째날 창조된 인간에게 제 칠일은 첫날이 됩니다. 그 첫날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하나님과 대화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갑니다.

안식일은 우리를 영적으로 재충전하는 날이었습니다. 주일도 역시 주님 앞에서 새 힘을 얻는 시간입니다. 주일날 주님 앞에 나와 충분히 하나님을 경험하십시오. 주일 주님 앞에 나와 새 힘을 공급받으십시오. 한 주간 살아갈 영적 에너지를 주일 온전히 받고 누리십시오. 그 일을 위해 결사적으로 준비하고 기도하십시오.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오십시오. 주님 앞에 여러분들의 삶을 맡기고 걸어보십시오.

하나님! 제가 오늘 이 하루를 주님께 드립니다. 오늘 하루 주님을 충만하게 경험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한 주간 살아갈 때 주님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공부하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사업의 지혜를 주시옵소서. 직장에서 나의 업무를 탁월하게 감당할 수 있게 하옵소서. 나의 지혜에 의지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경험하게 하소서. 이렇게 도전해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기 위해 우리는 주일만큼은 세상과 어느 정도 단절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율법에서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 하루라도 세상과의 단절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세상과의 단절을 통해 우리의 영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세상과의 단절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신을 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이 악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하는 일이 나쁘거나 악한 일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풍성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율법은 아직 하나님을 잘 모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합당하게 인도하시기 위해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 수칙을 주신 것입니다. 물론 그 율법 안에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그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목적을 알려고 하지 않고 율법 자체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율법의 본래 목적과는 전혀 상관없이 율법을 지키는 자리에 서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키는 율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을 얽어매는 악한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으로 예수님도 동일하게 잡아들이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14절의 말씀처럼, 유대인들은 할 수 있으면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했습니다.

9절 이하에 나오는 한쪽 손 마른 사람을 치유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정황으로 봐서 이 손 마른 사람은 아마도 유대인들이 의도적으로 회당에 있게 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셔서 손 마른 사람을 보았을 때 유대인들은 먼저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양이 구덩이에 빠졌다면 건지지 않겠느냐? 하물며 사람이 양보다 얼마다 더 귀하냐고 반문하십니다. 그리고 손 마른 사람을 치유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승리는 주일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주일에 우리를 창조하신 주님으로부터 은혜와 능력을 충만히 받고 세상에 나가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주일을 제정하신 주님의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주일 교회에 나와서 스트레스를 받고 가는 것은 정말 나쁜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을 위해서 받은 스트레스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주일 하루 예배와 더불어 있는 모든 섬김과 수고하는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충만히 받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교회 대청소를 합니다. 대청소를 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원합니다. 친교봉사를 하면서도 기쁨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성가대를 하면서도 기쁨이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새벽부터 나와서 기도하고, 온종일 현장에서 일하고, 그러고도 주님의 은혜가 놀라워서 다시 주님 앞에 나와 섬김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능력을 경험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주일의 기쁨, 주일에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충만하게 누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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