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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은 놀라운 하나님이 사건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그의 아들을 한 아기로 보내셨다. surprise다. 놀라지 않게 가장 작은 모습으로 오셨다. 이보다 더 놀라운 방법이 있었을까? 충분히 감동적이고 아름답다. 기발하다.

그 못지 않게 놀라운 또 하나의 사건은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보내셨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하고 정식으로 결혼을 하여 함께 살지는 않고 있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정혼은 결혼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남자와 여자가 살을 맞대고 같이 살지는 않지만, 그들은 공식적으로 남편과 아내로 불려진다. 일 년 동안 정혼 기간을 보내는데, 이 때 남자가 죽으면 여자는 과부가 된다. 정혼 기간에 서로 갈라서는 것은 정식 법정의 절차를 밟아야 했다. 요셉과 마리아는 정혼한 사이였다.

만약 마리아가 정혼한 여자가 아니었다면 여자 혼자 살 수 없는 이 시대에 누가 수태한 이 여인과 아기를 돌보아 주겠는가? 만약 정식으로 결혼한 후에 아기 예수를 수태하였다면 이 마리아의 동정녀 탄생을 어떻게 보여주겠는가? 하나님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본다. 이런 놀라운 사회적, 문화적 채널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다.

아기 예수의 오심은 많은 사람들에게 놀랄만한 사건이었다. 충격과 놀라움, 두려움과 혼란을 가져오기에 충분했다. 헤롯의 충격, 목자들의 놀라움, 동방 박사들의 경배, 그리고 마리아와 요셉이 겪었을 당황함과 순종, 그리고 그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그들을 본다.


마리아는 이 사건을 받아들였다. 18절에서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라고 간단하게 말씀한다. 하지만 누가복음 1장에는 마리아가 어떻게 이 사건을 받아들이는지 상세히 나온다.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준비시키기 위해 얼마나 세심하게 마리아를 인도하셨다.

문제는 요셉이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아기 예수의 오심을 Surprise이고, 감동적이고 기발하고 아름답지만, 요셉에게 이 사건은 너무나 당황스럽고 황당한 사건이다. 사회적으로 스캔들이었고, 종교적으로 돌에 맞아 죽을 죄였다. 요셉과 마리아가 신실했던 사람들이었음을 생각해 볼 때 Tiger Woods의 스캔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충격을 당시 사회에 줄 수 있었다. 요셉은 이 일을 듣고는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만히 관계를 끊으려고 했다. 이것은 마리아가 수태했다는 말을 들은 요셉의 반응이었다. 그것은 마리아에 대한 요셉의 배려였다.

요셉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성경은 요셉의 개인적인 심경을 충분히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는 무척이나 힘든 과정을 겪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요셉은 지금 두 가지 상황 앞에서 복잡한 심경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배신감이었다. 자신과 상관 없이 아기를 가진 마리아에 대한 불신의 감정이었다. 그 충격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또 하나는 성령으로 인해 수태했다는 마리아의 말이다. 마리아는 아마도 자신의 수태가 성령으로 인한 것이라는 말도 했었을 것이다. 자신을 변명하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두 가지 상황은 요셉으로 하여금 마리아를 받아들일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상황으로 몰아간다. 마리아가 스캔들을 일으켰다면 당연히 결혼은 불가능한 일이며, 혹은 성령으로 인하여 잉태한 사건이라도 요셉은 마리아와 결혼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위해 마리아를 택하셨는데, 요셉이 어떻게 마리아와 결혼을 하겠는가? 이것이 요셉의 심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요셉은 가만히 관계를 끊기로 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떤 가능성에도 가장 잘 대처하는 것이었다. 또한 성경은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했다고 말씀한다. 이 말은 요셉의 결정이 최선이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여기서 나타난다. 의로운 요셉이 의로운 결정을 내렸지만, 그의 결정은 잘못되었다. 성경은 그가 의로운 사람이었다는 말을 덧붙인다. 이것은 매우 양면적인 의미를 시사한다. 의로운 요셉이 결정한 것이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였다. 인간적으로 요셉의 결정은 분명 최선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아니었다. 그것은 생명의 길이 아니었다. 사는 길이 아니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의로움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증명해 준다. 우리가 내린 옳은 결정, 선의의 의도로 내린 어떤 결정도 그 자체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없다. 이사야 선지자의 고백처럼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 간다.”(사64:6) 이점이 우리를 두렵게 한다.


20절에 “이 일을 생각할 때에”라고 말씀한다. 요셉은 얼마 동안 생각했을까? 마리아는 자신의 수태 사실을 안 후 바로 산골에 들어가 숨어 있는 엘리사벳에게 찾아갔다. 거기서 3개월 동안 머문다. 마리아가 후에 요셉과 정식으로 결혼하여 동거한 후에 아기 예수를 출생한 것을 보면, 마리아가 수태한 것은 정혼한 지 적어도 6개월이 지난 후였다. 그 정도의 관계였다면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 가기 전에 이미 요셉에게 자신의 수태 사실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만약 하지 않고 가면 3개월 동안 없는 기간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요셉은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가 있는 3개월 동안 혼자 고민하며 기도하고 생각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이 기간 몸부림치며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마리아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방안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그 기간에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아무튼 이런 시간이 요셉에게는 필요했다. 그런 시간을 통해 요셉은 정말 하나님 앞에 하소연했을 것이고, 답답한 마음을 토했을 것이다. 이것이 기도다. 어떤 형식을 굳이 갖추지 않았다고 해도, 그는 정말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이 때 요셉은 하나님의 음성을 꿈을 통해 천사로부터 들었다. 하나님은 요셉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이 반드시 우리의 귀를 울리는 진동을 통해 듣는 음성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말씀하신다. 성경을 읽으면서 들을 수도 있고, 기도하는 중에 들을 수도 있고, 감동으로 들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들을 수도 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할 때 들린다는 것이다. 들으려고 하지 않을 땐 절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일어난 사건이 무엇인가? 요셉은 정반대의 길을 찾는다. 마리아와 헤어지려고 했는데, 헤어질 필요가 없었다. 요셉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참여하게 된다. 길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바로 길이었다. 그것은 평범한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셉과 마리아를 위해 예비하신 놀라운 길이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어려운 일일까? 생각하는 것이 어렵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묵상이 더 어렵다. 기도가 어렵다. 내 소리, 내 소원을 아뢰는 것이 아니라, 기도 중에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고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어렵다.

오늘의 말씀은 요셉이라는 한 신실한 청년, 참으로 신실한 청년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순간 그가 자신의 의로움으로 결정한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는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놀라운 은혜와 복을 놓치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너무 성급하지 말라. 너무 빨리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려고 애쓰지 말라. 충분히 그분과 대화하라. 충분히 그분께서 말씀하시도록 자신의 귀를 열라. 충분히 그분의 마음이 느껴질 때까지 그분 앞에 엎드려라. 하나님의 뜻을 서둘러 속단하고 빨리 나가는 것은 실패의 길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절대 당신의 자녀를 버리시지 않으신다. 자신의 길이 막혀 있다고 생각될 때 요셉을 생각하라. 요셉을 묵상하라.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어떻게 일하셨는지, 마리아의 잉태 소식을 들었을 때 요셉의 마음이 어떠했었는지 묵상하라.

만약 요셉이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이 결정한 것을 추진하였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해 보자. 마리아와의 관계가 단절되고, 그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추문(scandal)들을 처리하고, 자신의 잃어버린 인생을 회복하느라 모진 애를 썼겠지만, 여전히 그의 마음의 상처는 치유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에 필연적인 일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결코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없다. 요셉의 생애를 생각해 보면 그것은 충분히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와 묵상을 너무 쉽게 무시한다. 그리고 성급하고 너무 쉽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면서 달려간다. 결국 넘어진다. 그리고 절망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불평한다. 하나님은 불공평하다고 외치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마치 하나님께서 자기 인생에 있어 폭군처럼 말하면서 자기 인생을 포기해 버린다. 성경을 자세히 보라. 누구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그냥 버려졌는가? 하나님의 손에 있는 어느 누가 그냥 세상에 내동댕이쳐졌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결코 당신의 자녀를 그냥 버려두시지 않는다.

요한복음 6:37, “어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게 결코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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