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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강절 첫 번 주일입니다. 대강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기로 오신 성탄절을 준비하는 네 주간을 말합니다. 대강절에 우리는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고 기다리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강절 네 주간 동안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해 예언한 구약의 말씀들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본문 이사야 9장 1-7절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입니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과 요담, 아하스, 그리고 히스기야 왕이 있을 때 선지자로 사역한 선지자였습니다. 물론 그의 주된 사역은 히스기야 왕 시대라고 보여집니다. 그가 사역할 때는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매우 어렵고 힘든 시기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남 유다를 통치할 때 앗수르가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즉 히스기야 왕은 자기 동족인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것을 본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겠습니까?

본문의 말씀은 히스기야의 아버지인 아하스 왕이 통치할 때 선포된 말씀입니다. 이 때 히스기야는 왕이 되기 전, 그러니까 젊은 때였었고, 그러므로 이 말씀의 선포를 그도 역시 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은 크게 세 가지 초점을 가지고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초점은 6절에 나오는 한 아기의 출생 예언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여기서 한 아기는 연약한 인간으로 오시는 메시야를 나타내고 있고, 한 아들은 한 아기의 반복어법으로 앞의 아기를 강조하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들은 누구의 아들이냐에 따라 그 의미가 바뀌게 됩니다. 즉 왕의 아들은 왕이 될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은연중에 암시합니다.

그는 정사(정권, 권력)를 메었고, 기묘자(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며, 모사(지략가)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영원한 분이십니다. 또한 평강을 가져오시는 왕이십니다. 그분은 7절에 의하면 다윗의 왕조를 더 든든하게 지킬 영원한 왕이십니다.

위기 가운데 있는 남 유다에게 이러한 예언은 매우 용기를 주었습니다. 히스기야와 남 유다 백성들은 강력하고 확실한 성취를 약속하는 이 예언의 말씀을 통해 위기 가운데서도 일말의 소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초점입니다.


본문에 주는 두 번째 초점은 1절 말씀입니다.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기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은 ‘이방의 갈릴리’와 같은 지역을 말합니다. 즉 이방의 갈릴리가 전에는 멸시를 당하였는데, 후에는 영화롭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스불론과 납달리 땅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중에 있는 지파들의 땅입니다. 이들이 차지한 땅은 가나안 지역에서 제일 북쪽에 위치한 땅으로서, 주변의 강대국들의 빈번한 침략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지역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경계지역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건축을 도와준 두로 왕 히람에게 갈릴리에 있는 20개의 성읍을 대가로 주었습니다. 그런데 두로 왕 히람은 이 땅을 둘러보고는 맘에 들지 않아 다시 솔로몬에게 되돌려 주어버렸습니다. 솔로몬은 이 땅에 성읍을 건축하고 사람들을 이곳에 이주하여 살도록 이주정책을 폈습니다. 즉 이 땅은 그만큼 쓸모 없는 땅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은 멸시 받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실 것이라는 예언을 하는 것입니다. 메시야로 말미암아 이루신다는 약속을 주십니다. 당시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선포였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본문의 예언이 주는 세 번째 초점은 이 예언을 이사야 선지자가 했다는 점입니다. 이사야는 남 유다의 궁중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왕궁에서 왕의 통치 사역을 돕는 선지자입니다.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자기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묻고 찾는 것입니다. 그는 다른 나라를 축복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갈릴리를 영화롭게 한다는 예언이 바로 이사야를 통해 선포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예언을 듣고 마음이 어땠을까요? 이런 예언이 정치적으로, 상황적으로 가능했을까요? 그들이 이 예언을 수용할 수 있었을까요? 궁중 예언자가 이런 예언을 할 수 있겠습니까? 돌 맞을 일 아닌가요?

그런데 이 예언에 응답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히스기야 왕이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어떻게 ‘갈릴리’를 향한 예언에 반응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이 예언을 들으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이방의 갈릴리에 임할 메시야, 왜 메시야가 이방의 갈릴리에 빛을 비추신다고 할까? 가난하고 천대받는 땅 갈릴리, 수많은 나라에 복속되기도 하고, 팔려가기도 하는 땅, 그래서 정체성도 잃어버린 백성들, 의지할 곳이 없이 떠도는 사람들, 자신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모르는 백성들, 바로 이런 백성들을 위해 메시야는 왜 빛을 비추시는 것입니까?

이런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던 히스기야는 순간 자신을 바라보았습니다. 지금 자신이 그런 상황에 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의지할 곳이 없습ㄴ디ㅏ. 나라는 위기에 처해 있고, 자신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왕으로 서 있습니다. 백성들은 왕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자신은 무기력합니다. 이 나라가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 이 백성은 앞으로도 계속 백성으로 살 수 있을 것인가? 갈릴리 사람의 운명이 되는 것은 아닌가?

그러면서 히스기야는 자기 자신 안에서 갈릴리 백성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갈릴리 백성의 마음이 바로 그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갈릴리에 보내시는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갈릴리 백성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가난한 자의 마음, 과부의 마음, 고아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갈릴리 백성입니다. 나를 도와주소서.”

그는 실제로 이사야 37장 16-20절에서는 예루살렘을 쳐들어 오는 앗수르를 앞에 놓고 하나님께 처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눈을 뜨고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람을 보내어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한 모든 말을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앗수르 왕들이 과연 열국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나 그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일 뿐이요 나무와 돌이라 그러므로 멸망을 당하였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 만국이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하니라.”

이 기도가 끝나자 이사야 선지자가 한 사람을 보내서 히스기야에게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너의 간구를 들으셨느니라.” 그리고 그날 밤 여호와의 사자가 예루살렘 주변에 둘러 진친 앗수르 군사 185,000명의 군사를 일시에 쓸어버렸습니다. 이런 놀라운 일이 어떻게 가능한 것입니까?


이사야의 이 예언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그것은 이방의 갈릴리이기 이전에 히스기야였습니다. 이 예언의 1차적인 은혜를 입은 자는 히스기야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히스기야가 말씀에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주님 제가 갈릴리 백성입니다. 제가 바로 주님의 그 은혜가 필요한 자입니다.”라고 기도하는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반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없습니다.


700년 후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에서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사역하지 않으시고, 주로 갈릴리 지역에서 사역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반응에 있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에 반응했습니다. 사모했습니다. 갈급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했고, 잡고자 했고, 결국 그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은 갈릴리 백성들이 어떤 은혜를 누렸는지를 보여줍니다. 12절은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다고 예언합니다. 갈릴리는 버려진 땅이었고, 멸시를 당한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갈릴리는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제자들이 갈릴리 출신들이었습니다. 갈릴리는 예수께서 평생 활동하신 무대였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영광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2절,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눈 먼 자가 눈을 뜨고, 죽은 자가 살아났습니다. 무지한 갈릴리 백성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3절입니다.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이 있을 것을 예언합니다. 추수하는 즐거움이란 무엇입니까? 그들은 제대로 추수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었습니다. 추수 때만 되면 주변 족속들이 쳐들어 와서 빼앗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면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남자만 5천명이 먹고도 남았습니다. 그들은 한 번도 전쟁에서 승리하여 남의 것을 탈취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악한 마귀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의 탈취물을 얻곤 했습니다.


무엇이 이들에게 이런 은혜를 누리게 했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아기 예수의 오심을 맞이하며 이런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까? 두 가지 점을 기억합시다.

첫째, 갈릴리인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갈릴리 인은 고난과 아픔이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가난했고, 갈급했고, 굶주린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오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께 달려왔습니다. 그들은 뭔가에 항상 굶주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치유가 필요했고, 회복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항상 겸손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주님 앞에 갈릴리 인의 마음으로 섰을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행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갈릴리 인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낮아짐이 필요합니다.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 합니다. 히스기야를 보십시오. 그는 나라의 위기 속에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듣고 6-7절에 나오는 메시야에 대한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한 아기, 한 아들이 오시면 그는 정사를 메었고, 기묘자이며 모사이고,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께서 회복시키실 다윗 왕조를 바라보았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재림을 통해 이루어질 약속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을 줍니다. 히스기야는 그 나라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나라를 대망했고, 그 일을 이루신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그런 믿음이 그로 하여금 위기에 빠진 예루살렘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이런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겸손함과 낮아짐, 갈릴리인의 마음, 그리고 메시야의 오심을 대망하는 간절함이 필요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서 오신 계절, 대강절에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누리시는 주의 자녀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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