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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하고 있습니다. 실망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고 오늘까지 따라왔는데, 예수님께서는 자꾸 어디론가 가신다고 하니 이해할 수도 없거니와 마음의 근심을 떨쳐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근심하게 된 이유는 주님의 떠나심에 대한 오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주님의 떠나심에 대한 말씀만 생각하여 근심한 것입니다.

이렇게 근심하는 제자들을 향해 주님은 당신 자신이 떠나시고, 오실 보혜사 성령께서 어떤 사역을 하실 것인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8절입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여기서 ‘책망하다’는 말은 ‘책망하다’는 의미와 ‘확신시키다. 격려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오셔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행하신 세 가지 사역을 정리하면, 첫 번째는 죄에 대한 책망이고, 두 번째는 의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고, 세 번째는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증시켜 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시는 첫 번째 사역은 죄를 책망하는 일입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9절)”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죄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그들은 사도들이 선포하는 말씀을 들으면서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임재하시는 사건을 경험합니다. 그들은 마음의 찔림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 37절을 보면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했다고 말씀합니다. 사도들의 말씀을 들을 때 그들은 갑자기 무서운 죄를 선고받은 것입니다. 십자가는 그들이 행한 일이 역사상 최대의 죄악이며, 그들의 죄가 십자가 사건의 원인이었음을 선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인도에 있는 어떤 마을에 한 선교사가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한 집의 횟칠한 벽에 환등기 슬라이드를 비치면서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십자가 장면이 비쳐나오는 때였습니다. 그 때 한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듯이 앞으로 걸어 나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려 오십시오. 당신이 아니라 제가 그곳에 달려야만 합니다.” 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인간은 죄의식 없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올 수 없습니다. 자신을 죄인으로 보지 않는데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2,000년 전 팔레스틴에서 범죄자로서 십자가에 못박힌 한 사람의 모습이 어떻게 여러 세기를 통하여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마음에 죄가 있음을 드러내며 그들의 무릎을 예수 그리스도께 꿇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행하시는 두 번째 사역은 의를 확신케 하는 일입니다.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10절).” 예수 그리스도는 유죄로 판결되었고, 유대인에게는 사악한 이단자로, 로마인에게는 위험 인물로 간주되었습니다. 예수라는 한 젊은이가 극악무도한 죄인이 받아야할 형벌을 받고 흉악범과 하나님의 적으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것이 어느 순간 뒤바뀌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죄 없음을 드러내셨습니다. 그 첫번째 고백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형 집행관이었던 백부장의 입을 통해서였습니다. 백부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27:54).” 그의 의를 예수의 사형집행관이었던 백부장의 입을 통해 고백된 것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생각해 보면 십자가에 못박힌 한 사람의 유대인인 죄인을 사람들이 영원히 구주로 고백하고 신뢰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같이 십자가에 못 박힌 유대인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확신시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의에 대하여라 함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분의 완전한 의와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놀라운 역사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것는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행하시는 세 번째 사역은 세상 임금을 심판하는 일입니다. 빌라도는 로마 황제가 위임한 권한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하고, 십자가형을 선언했습니다. 그들의 판결로 예수님은 결국 십자가에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세상의 권력과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의 끈질긴 추적과 예수를 잡으려는 노력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십자가 형의 심판 사건은 역설적이게도 그 반대를 보여줍니다. 세상의 임금은 그들의 권세를 사용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으나 실상은 이 일로 인해 그들의 불의가 얼마나 컸고, 분명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그들의 죄를 숨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그들이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시도했던 것들은 모두 음모단계였고, 결정적인 상황까지 가지 않았음으로 피해갈 여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완전히 올무에 걸린 것입니다.

이 십자가 사건이 보여주는 분명한 것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하였듯이 그들에게도 분명한 심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심판으로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무죄한 예수를 십자가에 죽임으로 그들이 얼마나 악했고, 불의했는지를 만천하에 공포한 셈이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의 십자가는 심판이 반드시 있다는 점을 증거해 줍니다.

심판이 반드시 있다고 하는 것을 사람들 앞에 보여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찌하여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까? 장차 심판이 있다고 사람들에게 확신시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내적이고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주는 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여전히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성령께서 방법론적으로 어떻게 제자들 가운데 역사하시는지를 말씀하십니다.

1. 성령은 점진적으로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진리는 한 순간 깨달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우리가 주님 나라에 갈 때까지 깨달아야 하는 것이고, 역사의 종말까지 계속 점진적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지혜로 다 깨달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불가지론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는 깊이 알수록 그 신비로움이 싸일 수밖에 없습니다.

2. 성령은 들은 것을 말씀합니다. 성령께서는 그동안 주님께서 말씀하신 구원의 역사를 밝히 깨닫도록 우리를 깨우쳐 주십니다. 성령은 전혀 새로운, 혹은 전혀 다른 말씀을 전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것은 모두 이미 말씀하신 성경의 기초 위에 주시는 지혜의 깨달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깨달음은 언제나 성경에 기초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이 성령의 역사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주신 말씀으로서의 성경은 이미 우리가 다 깨닫기에는 너무나 깊은 진리가 그 안에 담겨져 있다.

3. 성령은 장래의 일을 우리에게 알리십니다.
주의 말씀과 역사는 궁극적으로 종말에 초점을 둡니다. 마지막 궁극적인, 완성된 하나님의 역사를 향해 가는 것입니다. 우린느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종말을 성령 안에서 알게 됩니다. 생의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언제나 선하게 인도하실 것을 믿고 아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4. 성령은 성자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성령은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성령의 사역은 언제나 그림자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역사하십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성도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드러내도록 돕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충만 할수록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습에 더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겸손과 섬김을 더 닮아갑니다. 십자가의 진리를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는 모두 그리스도에게로 집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우리가 영적으로 방황하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분명한 주님을 뜻을 잘 깨닫지 못하고, 또 영적 무기력함에 빠진다면 그 주된 이유는 바로 주님의 뜻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자들의 근심과 근심의 이유를 잘 생각해 보십시오. 제자들은 주님을 강하게 신뢰했었는데, 그 신뢰의 대상인 예수님이 자기들이 생각하던 바로 그 예수가 아니었다는데 있습니다. 이런 오해가 우리를 낙심시킵니다.

우리도 예수님에 대해 많이 오해합니다. 우리 나름대로의 예수님에 대한 형상을 그려놓고 그 예수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신앙은 주님께서 우리가 기대하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나실 때마다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면 금방 설교자에게 주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달라고 요청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께서 주님의 뜻을 드러내지 않으셔서 제자들이 오해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의 예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해한 것입니다. 결국 이 문제는 우리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묵상의 문제며, 우리가 그분을 얼마나 진지하게 묵상하고 연구하고 그분께 다가가느냐의 문제입니다.

2. 십자가를 묵상하십시오. 십자가는 참으로 신비로운 사건입니다. 이 십자가를 우리가 이해하는 수준에서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십자가는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십자가에는 우리 삶을 해석하는 우리 식의 대부분의 사고 방식과 가치관에 대한 역설과 역전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삶을 모든 면에서 다시 보게 합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결국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도록 몰아가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의 참된 용서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줍니다. 이 십자가의 진리를 바르게 깨달을 때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깨달아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3.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십시오. 위에서 말씀드린 모든 것들은 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한 사랑과 구원의 신비를 깨닫지 못합니다. 이것은 결코 책으로만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냥 기도만 하면 하늘에서 어떤 깨달음을 준다는 뜻은 아니다.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십시오. 성령에 민감하라는 말 자체가 대부분 우리들에게 낯선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기억하고 성령에 민감하기를 구하십시오. 그러면 십자가의 신비를 깨달아갈 것이고, 그 안에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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