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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 포로민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남 유다 민족은 바벨론에 멸망하기까지 세 번에 걸쳐 포로로 잡혀 바벨론으로 끌려 갔습니다. 본문은 유다가 완전히 멸망하기 전 두 번의 바벨론 유수로 잡혀간 포로민들에게 보낸 예레미야의 편지입니다. 바벨론은 두 번째 포로 유수 때 유다 왕 여호야긴을 함께 잡아 갔고, 그 대신 그의 삼촌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이런 상황이 예루살렘과 유다 민족들에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겠습니까? 뜻 있고 의식 있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바벨론에 그냥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고 생각하고, 민족을 살리려는 여러 가지 시도를 했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예루살렘과 성전이 무너지고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그리고 유다 민족의 왕까지 잡혀가게 되었을 때 바벨론과 예루살렘 양쪽에서는 늘 독립을 향한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바벨론에 반역을 계획하고 시도하곤 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예언자들의 사역에 익숙한 민족이었습니다. 민족적인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선지자가 나와서 그들의 갈 길을 외치고 선포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었고, 백성들도 또한 그런 선지자의 외침을 기다렸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우후죽순처럼 여기저기서 예언자라는 이름으로 일어나서 여호와의 이름을 빌어 민족의 앞날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들은 대개 민족적인 희망과 긍정적인 미래를 선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곧 다시 회복시키실 것을 선포했고, 바벨론은 곧 멸망할 것이고, 잡혀간 포로민들은 불과 2년 후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런 메시지는 당시 상황에서는 당연히 필요한 것이었고, 그런 메시지를 들으면서 유대 백성들은 용기와 소망을 가졌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전하지 않는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예레미야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선지자이면서도 남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포하였습니다. 속히 바벨론에 항복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포로민들에게 오늘 본문의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이 편지의 주된 내용이 바로 5-7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서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 마음 먹은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예루살렘과 성전을 완전히 우상숭배의 본거지처럼 만들어 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마땅한 책벌과 징계의 수단입니까? 물론 이스라엘의 바벨론 유배는 그런 의미가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징계하시면서도 그 안에 당신의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입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지만 그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시고, 우리가 계획하지 못하는 것을 계획하십니다. 이사야서 55장 8-9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그러면 하나님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이 독립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영적 실상을 보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완전히 영적 혼돈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왕으로부터 신하, 그리고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타락한 삶을 살았습니다.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부패는 회복불능의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의 이방 나라 한 가운데 넣어놓고 70년 동안 그들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율법을 연구하고 정리하며 가르치고 준행하도록 하여 그들의 깊은 영성을 회복하도록 계획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계획을 위해서 바벨론을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실제로 에스겔서(8:1, 14:1)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에서 어느 정도의 자치기구를 유지하면서 신앙교육과 공동체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준비하셨습니다. 물론 유배생활 자체를 편하거나 안락한 생활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주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놀라운 은혜의 기간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 70년이라는 기간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기간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성경도 이렇게 온전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 선포되고 전해져 오던 성경들이 대부분 이 기간 동안 성전을 잃어버리고, 고향을 떠나 바벨론에 포로로 살아가던 백성들에 의해서 정리되고 편집되고 가르쳐지고, 준행되어 왔었습니다.

이런 기간을 의도적으로 만들 수 없는 시간입니다. 어떻게 이런 시간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은 대부분 왕과 신하들, 제사장들, 그리고 기술자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고급인력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벨론에 몰아넣으시고 하나님, 당신께서 행하시려고 계획하신 일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계속해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바벨론은 곧 멸망할 것이고, 이스라엘은 이제 곧, 2년 후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이들이 선포하는 이 긍정적인 메시지가 왜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며 왜 그것이 나쁜 것인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전하는 2년 후의 포로 귀환의 메시지는 다음 몇 가지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이들의 메시지는 이스라엘 민족의 바벨론 정착을 방해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들이 바벨론에서 집을 짓고, 텃밭을 만들어 그 열매를 먹으면서 그곳에 살라고 선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아내를 얻어서 자녀를 낳고, 자녀들도 결혼을 시키도록 권면했습니다.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바벨론 백성들의 평안을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래야 너희들도 평안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이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의 위한 수양관쯤 정도로 여기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의 예루살렘 귀환에 대한 메시지는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정감을 줄 수 없었습니다. 이제 곧 돌아갈 것인데, 그곳에서 집을 지을 필요도 없고, 결혼과 모든 가정생활을 미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평안을 주시려고 하셨지만, 거짓 선지자들은 그 평안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삶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그 가운데 평안을 누리기 원하십니다. 평안은 결코 환경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할 때 진정으로 평안할 수 있습니다. 이런 평안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 거짓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말씀과 기도의 삶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그들은 늘 붕 떠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이제 곧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 일을 준비하느라고 정리된 마음으로 주님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매일 우리 삶의 일부를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묵상하는 일을 위해 떼어놓아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 없이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관계와 풍성함을 누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을 방해하는 일은 언제든지 사탄적이며, 반 성경적이고, 반 신앙적입니다. 교회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항상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전하는 일에 힘쓰는 곳이어야 합니다. 다른 어떤 일도 이 일보다 우선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거짓 선지자들의 예루살렘 귀환 메시지가 포로민들의 기도와 말씀묵상을 방해했습니다.


세 번째, 거짓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항상 불평과 불만을 갖게 하였고, 심지어 반란과 책동을 유발하게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예루살렘 귀환이 2년 안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선포를 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바베론에 대한 반란을 도모했습니다. 두 번째 바벨론 포로가 일어난 주전 597년이 지난 약 2년 후 실제로 바벨론에는 상당한 소요가 일어났었습니다. 바벨론에게 있어서 이것은 위기였고, 잡혀간 소수민족들에게는 해방의 기회로 여길만 했었습니다. 아마도 이 일은 잡혀간 소수 민족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반란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이 사건을 기회로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보내실 것이라고 예언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반란을 일으킴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을 해방하실 일들을 앞당길 수 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부정적인 동기와 참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도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이러저러한 일들을 모의하고 꾸미고, 작전을 세웁니다. 이렇게 하면 상황을 바꿀 수 있고, 저렇게 하면 저 사람이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모든 의도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능력도 권능도 없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상처와 아픔만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든지 목적과 의도, 주도권은 그분께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그분을 대신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즉 우리가 이러이러한 계획을 가지고 교회를 바르게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할 때 대부분은 더 어려움을 겪게 될 뿐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그분이 결정하고, 그분이 우리에게 맡겨주시고, 그분이 친히 일을 이끌어 가시도록 언제나 우리는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실질적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 중에는 이런 일을 주도하던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일을 주도적으로 행하다가 결국 죽음을 당했고, 그들 중 일부의 이름이 21-2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합과 시드기야) 그리고 1절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고 간 포로 중 남아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들을 보냈는데’라고 기록했는데, 여기서 ‘남아 있는 장로들’이라는 표현은 이미 그 전에 무슨 일인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바로 그 사건은 전체적인 흐름으로 보아 바벨론을 반역하다가 처형당한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다음 두 가지 중요한 교훈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1. 본문은 먼저 우리에게 순종에 대해 말씀합니다. 70년의 포로 생활은 순종을 요구합니다. 순종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순종의 이유는 70년의 포로 생활의 목적과 의미를 우리의 지혜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선포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바벨론에 항복하고, 그곳에서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며 그 열매를 먹으라는 명령은 확실히 반 민족적인 명령입니다. 심지어 그 나라와 나라의 평안을 위해 기도까지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명령은 순종으로밖에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순종의 의미를 모른다면, 순종의 중요성을 모른다면, 하나님 앞에 우리가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이런 말씀은 전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

우리는 우리의 지혜로 하나님을 다 알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물론 그것은 무조건 맹신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본적으로 무릎을 꿇고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신28:2)”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히11:8)”

본문 11절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졸업생들과 함께 특별히 이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졸업을 하고 이제 새로운 삶의 자리로 갈 것입니다. 그 자리는 그동안 공부하면서 흠모하고 바라고 기대하던 자리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졸업을 하고 나니 처음에 기대했던 것만큼 그렇게 화려하거나 멋진 삶이 당장 열려지지는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원하는대로 항상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 인생은 다 그렇고 그런 것이라고 말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당신의 자녀로 만드시기 위해 우리를 우리가 원하지 않는 자리로 몰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생각이 다르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보다 더 크게 보시고, 더 멀리 보시고, 더 확실하게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을 신뢰함으로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함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벨론 포로 생활을 기억하십시다. 그들은 그곳에서 엄청난 일을 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손으로 한 것이지만, 그러나 그들의 결정으로 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삶의 자리에 서 있던지, 또 어떤 위치, 어떤 지위, 어떤 종류의 일을 하든지,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세상적인 시선과 가치관이 어떠하든지 간에 우리가 기억할 것은 그 자리에 우리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남과 다르다는 것은 그리 중요한 점이 아닙니다. 때로는 남보다 더 낮아보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나를 움직이는 지렛대가 되게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항상 언제나 주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과 소망을 주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일과 그분의 계획은 모두가 우리를 복되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일이 우리의 삶을 복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순종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2. 본문은 두 번째로 우리에게 기도와 말씀의 훈련에 대해 말씀합니다. 바벨론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기도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장소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다른 것에 신경 쓸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에게 명예도, 재물도, 영화도 더 이상 구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전에 명예와 재물을 좇아 부지런히 달려갈 때도 사실 깊이 생각해 보면 자기 자신 안에는 언제나 목마르고 갈급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영적인 굶주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는 그것을 몰랐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막상 바벨론에 와서 보니 힘들고 두렵고 절망스러우리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 안에 무한한 평안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조용히 주님 앞에 나아가면 깊이 주님과 기도로 대화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쁜 일상에서 가족들과 말씀을 나눌 기회조차 없었는데, 이제는 말씀을 읽고 나누고 대화하고 기록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야말로 바벨론에서 놀라운 일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처참한 자리인줄 알았는데, 실은 가장 소중한 일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12-1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기도를 통해 주님을 만나는 기쁨을 맛봅니다. 기도와 말씀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됩니다.


오늘 이 아침 예배드리면서, 또 졸업을 하는 이 기념적인 날 주님께 예배드리면서 이 말씀을 깊이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순종입니다. 항상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보다 더 크시다는 사실이 얼마나 아름답고 놀라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두 번째는 말씀과 기도의 훈련입니다.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날마다 생명을 공급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은 바로 말씀과 기도의 훈련을 통해서입니다. 매일 일정한 시간 말씀과 기도를 통해 주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는 풍성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참된 성도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인생이 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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